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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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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

[김성욱의 상상의 영화관] 씨네큐브 광화문 사태에 부쳐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테오 앙겔로풀로스, 타비아니, 쿠스트리차, 고다르, 트뤼포... 영화의 역사를 장식한 이런 작가들을 만나는 일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일이다. 실제 이들 중 몇 명을 국제영화제를 통해 만나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작가를 만나는 일은 이후의 일이다. 내가 이들 작가를 실제로 만났던 곳은 어두운 영화관의 한 구석에서였다. 90년대 중반에 대학로의 동숭씨네마텍에서 처음 타르코프스키의 <향수>를 만났다. 그 이전에 나는 이 영화를 비디오테크에서 보았고 수차례 비디오테이프를 돌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타르코프스키와 만난 곳은 동숭씨네마텍에서였다. 거기서 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빛과 만났다. 91년 신사동의 한 극장에서 키에슬로스키의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 담긴 이상한 빛과 우연히 조우했던 것과는 다른 사건이었다. 내가 알고 있다고 여겼던 작가를 사실은 제대로 만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고다르가 무르나우의 <일출>을 보았던 것을 두고 '진정 내가 보았던 것은 부재의 빛'이었다 말한 것처럼, 동숭씨네마텍에서 나는 타르코프스키가 남긴 부재의 빛과 만났다.

사람들은 종종 영화작가를 만나는 장소가 영화제이거나 그들의 강연, 토크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우리가 작가를 만나는 곳은 영화관이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감독을 만나거나 배우를 만나는 일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의 영화를 접하면서 작가를 만나는 일은 더욱 기쁜 일이다. 그림을 보지 않고 작가를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연주를 듣지 않고 음악가와 만나는 일도 불가능하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접하지 않고 작가를 만나는 일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작가가 있고 작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가 이전에 작품이 있고, 작가 이후에 작품이 또한 존속한다. 이걸 일깨워준 곳은 영화관이었다. 고다르도 트뤼포도 그들이 '작가정책'을 말할 때 내세우고 싶었던 것이 이러한 정황이다. 들라크루아를 만난 곳이 루브르였고, 세잔과 반 고흐를 만난 곳이 오르세이 미술관이었듯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만난 곳은 90년대 중반의 대학로에 있던 동숭씨네마텍이었다.

조르조 아감벤은 인간이 영화관에 가는 동물이라 말한다. 우리는 모두 영화관에 가고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 영화관은 영화의 관객, 감독, 영화인들이 그러하듯 영화가 낳은 자식들이다. 영화는 19세기에 탄생했지만 영화관객들, 영화관은 20세기적 산물이었다. 여전히 영화가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전통적인 관객들, 영화관들은 20세기를 넘기면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물리적인 사라짐이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그것을 상영해 줄 극장이라는 물리적 장소를 갖지 못한다면 존재할 수 없다. 영화의 기원에는 빛을 투사하는 어둠의 장소가 필요했다. 그 어둠의 장소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빛이란 사실 부재, 덧없음, 사라짐의 흔적들이다. 영화관, 그곳은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인간의 사고와 감정이 응축된 곳이며, 사교생활이 부재한 이들이 만나는 곳이며, 자세의 함몰을 동반하는 곳이다. 달리 말하면 자유로움이 허용되는 장소이다. 도시의 어둠에서 몸의 자유가 허용되고 정신의 자유로움이 발휘되는 장소인 곳이다.
▲ 사진제공_씨네큐브광화문

영화관에 대해 이렇게 길게 말을 꺼낸 것은 최근 기사에 나온 것처럼 광화문에 있던 명화의 극장인 씨네큐브가 사라진다는 보도를 접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씨네큐브를 운영하던 백두대간이 광화문에 있는 두 개관의 극장운영에서 물러나 경영권을 건물의 소유주인 태광측에 넘겨주기로 했다고 한다. 기사에 따르면 예술영화 수입, 배급과 극장 운영에서 발생한 적자가 큰 원인중의 하나라고 한다. 씨네큐브가 광화문에 처음 개관한 것이 2000년 11월이었으니 10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다. 동숭씨네마텍에서 시작해 광화문의 씨네큐브로 이어진 예술영화관의 역사의 흐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타르코프스키, 앙겔로플로스, 트뤼포, 루이 말, 타비아니, 쿠스트리차들을 만났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광화문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일순위에 떠오르던 만남의 장소가 사라지는 것이다. 광화문에 분수대가 세워지고 수십만의 인파가 광화문을 오가는 가운데 위대한 밤의 역사를 간직했던 명화의 장소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백두대간이 아니라 다른 운영자가 극장을 운영할 수도 있다고 하니 극장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누군가 말한다. 내 소견으로는 이건 틀린 말이다. 이런 말은 감독이 바뀌어도 영화가 그대로일 수 있다고 하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작품을 말하면서 작가를 말하듯이 극장에 대해서도 말해야만 한다. 아니 극장의 운영자는 또 한 명의 영화감독이다. 씨네큐브를 운영했던 이광모 대표가 실제로 한 명의 영화감독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는 영화를 만들었고, 또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영화를 존재하게 만들었다. 그가 비록 새로운 영화를 아직 만들지 않았지만 영화를 상영하는 것으로 더 많은 영화들을 만들었다. 죄송한 말이지만 나는 이광모 대표를 영화감독으로서보다 영화관을 운영한 대표로서 더 존경한다. 시시한 감독보다 그는 더 위대한 감독이었고 더 많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었다.

고다르는 파리의 라탱거리에 있는 '생 앙드레 데 자르'라는 예술영화관의 대표인 로제 디아만티스에게 보내는 헌사에서 '그는 영화의 마술사이다'라고 말했다. 1971년에 개관한 이 극장은 파리의 영화관객들에게 알랭 타네, 켄 로치를 처음 만나게 했던 곳이다. 나는 이런 극장이 3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면서 여전히 영화관객들을 불러 모으는 장소로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몹시 부럽다. 씨네큐브를 운영했던 백두대간이 그러했듯이 이 극장도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이런 극장들이 존속한다면 우리가 존경하는 영화작가도 영화도 쉽게 기억에서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씨네큐브가 사라지는 일은 좋은 영화잡기가 폐간되는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고민해야만 하는 영화적 '정황'이다. 좋은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고 좋은 작가들이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없는 환경들도 안타깝다. 하지만 그런 영화들을 만나게 하는 장소가 사라지는 일도 끔찍한 일이다. 씨네큐브는 진정한 영화가 아직 우리가 보지 못한 영화들, 볼 수 없었던 영화였음을 알려 주었다. 씨네큐브가 사라지는 것은 그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 각자의 영화관이, 우리들 각자의 영화적 기억이 소멸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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