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권 의원은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호소로 정치권 중재단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심지어는 어떤 언론보다 가까이서 노조와 회사, 정부의 입장과 태도를 피부로 느꼈다.
쌍용자동차 노사의 최종 합의안도 사실상 중재단이 마련한 중재안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합의안은 976명의 정리해고자 가운데 300여 명만을 살려 놓았다.
권 의원의 첫 마디가 "참담하다"였던 것은 그런 이유였다. "노동조합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너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고 평가한 권 의원은 이번 사태를 통해 정부도, 기업도, 노동계도 제대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럴 수 있을까? 권 의원 역시 회의적이었다.
▲ 권영길 의원은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호소로 정치권 중재단을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 누구보다, 심지어는 어떤 언론보다 가까이서 노조와 회사, 정부의 입장과 태도를 피부로 느꼈다.ⓒ프레시안 |
이유는 많았다. '노사자율의 원칙'을 반복했던 정부는 사실 "처음부터 노동운동을 완전히 궤멸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무관여의 관여'로 이번 사태에 개입했다." 어렵게 마련한 노사 대화의 자리는 사 측이 나서 훼방을 놓기 일쑤였다. 쌍용차 사태를 놓고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쳤던 노동계는 "정권이나 총자본과의 투쟁 이전에 한 자본을 바꿔낼 힘도 없어진 지" 오래다.
지난 10일 권영길 의원으로부터 쌍용차 막판 협상 과정의 속 얘기를 들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가 아닌 제대로 된 교훈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는 "교훈을 얻지 못하면 앞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할 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쌍용차 사태, 참담하다"
프레시안 : 쌍용차 사태가 드디어 마무리됐다.
권영길 : 결과에 대해서는 참담한 심정이다. 노동조합으로도, 국가적으로도 너무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는데, 수업을 제대로 했는지 의문이다. 별로 교훈을 얻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참담하다는 것은 개인적인 얘기가 아니다. 쌍용차지부나 금속노조, 민주노총 등 전체 노동진영에게도 그렇다. 또 그것은 노동계만의 결과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국가의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사회적 비용이 엄청나게 지불됐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할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쌍용차 사태가 악화되면서 한나라당 원유철, 민주당 정장선 의원과 함께 중재단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안다. 중재의 필요성은 느낀 이유가 있었나?
권영길 : 쌍용차지부가 옥쇄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금속노조에서 중재 창구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물론 내 뜻이기도 했다.
대정부 교섭을 끌어내는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고 봤다. 보통 우리가 '노사관계'라고 하지만 사실은 대부분이 '노정관계'다. 큰 갈등일수록 대정부 교섭이 아니면 풀리지 않는다. 쌍용차도 마찬가지였다.
프레시안 : 중재단의 활동에서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
권영길 : 틀을 구성하는 것부터 만만치 않았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여러 의원들을 만나 중재단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진통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괜찮은 모양새가 됐다.
원유철 의원과 정장선 의원은 평택이 지역구다. 나는 쌍용차의 또 다른 공장이 있는 창원이 지역구다. 여기에 송명호 평택시장이 함께 들어갔다. 또 정장선 의원은 해당 상임위원회인 지식경제위원회 위원장이고, 원유철 의원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경기도당 위원장이다. 나는 민주노총 위원을 지냈다. 어떻게 보면 정부와 사 측, 노 측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두 들어간 것이다.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이런 틀을 만들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사 측과 정부, 중재단에 종종 불만 토로했다"
▲ "사 측과 정부는 중재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는 '중재단이 활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프레시안 |
권영길 : 내부보다 외부가 문제였다. 사 측과 정부는 중재단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심지어는 '중재단이 활동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직접은 아니어도 우회적으로 수차례 전달해 왔다. 7월 25일 사 측이 일방적으로 교섭에 불참한 뒤부터 더 노골적으로 그런 압력이 강해졌다.
중재단 내부에서도 '너무 많이 개입하지 말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그것은 중재가 아니다. 사 측과 정부의 일방적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 아닌가? 중재란 것은 양 측의 입장을 모두 반영해야 한다. 그렇게 정리하는데 역시 또 시간이 오래 걸렸다.
프레시안 : 어렵게 7월 24일 노사정 간담회가 열리고 25일 다시 교섭을 하기로 했는데 결국 회사가 나오지 않았다.
권영길 : 24일 간담회도 참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당초 중재단 4명, 금속노조 위원장, 박영태 공동관리인이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사 측이 한상균 쌍용차 지부장의 참석을 자꾸 요구했다. 하지만 신변 문제가 있지 않나. 사 측이 약속한다 해도 정부가 명확하게 보장하지 않으면 참석이 어렵다.
어렵게 모였는데, 모이고 보니 박영태 사장이 안 왔다. 사장 대신 전무와 부장 8명이 왔다. 사실 노조 입장에서는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노측 대표가 금속노조 위원장인데 사 측은 격이 안 맞다. 결국 노조가 양해를 했다. 형식에 구애 받지 않겠다는 것은 그만큼 노조는 대화를 갈망했던 것이다.
"정부와 사 측은 이미 대화 아닌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
프레시안 : 24일 박영태 법정관리인이 나오지 않은 것도 어찌 보면 중재단에 대한 사 측과 정부의 불만을 드러내는 것인가?
권영길 :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사 측의 태도는 대화를 하겠다는 것보다는 대화 테이블을 엎으려는 듯 보였다. 참석한 부장들이 서로 노조 비난에 바빴다. 꼭 '시장통' 같았다.
24일에 '결렬만은 막자'고 의견이 좁혀졌는데 사 측 대표로 앉은 전무는 '내가 결정할 수 없다'며 '얘기해보고 오겠다'고 했다. 막판 한 시간은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왜 그렇게 오래 기다려야 했을까? 추측하건데,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은 사장과의 협의가 아니었다. 사장보다 윗선, 즉 정부와 협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어렵게 만들어진 대화의 자리가 25일 사 측의 불참 통보로 깨져버렸다.
권영길 : 언론에는 한 시간 전에 통보가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밤새도록 '안 나온다'는 얘기가 계속 들렸다. 합의하고 돌아가자마자 '내일 못 나간다'고 한 것이다. 밤새 조율을 한 끝에 다시 만나기로 해놓고는 오전 9시 일방적으로 '교섭 불참'을 발표하더라.
그때부터 중재단의 역할이 벽에 부딪혔다. 정말 화가 났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부터 수없는 협상을 했고, 당에 온 뒤에도 직간접적으로 교섭에 참여한 적이 많은데 이번처럼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 정도로 북 받치는 걸 참았다.
회사는 비공식적으로 불참 이유에 대해 '노조에 그 어떤 희망도 주고 싶지 않다'고 설명했다. '대화 파기는 노조에 절망을 던져주고 싶은 전술'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박영태 사장은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대화를 파기했다'고 말했다. 비난받을 짓이라는 것을 자인한 것이면서 동시에 중재단에게 '제발 빠져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회사에 맡겨달라는 것인데 그 말은 공권력을 동원해 노조를 옥죄고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얘기였다. 결과적으로 회사는 정말 그렇게 나갔다. 정부와 사측은 이미 시나리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엉뚱한 중재단이 끼어들어 그 시나리오대로 추진하는 데 차질이 생겼던 것이다. 이런 내 판단이 정확하다는 것은 이후에도 여러 길목 길목에서 확인됐다.
"정부에겐 쌍용차는 거대 노조 궤멸을 위한 꽃놀이패였다"
프레시안 : 과거의 여러 경험과 비교해 볼 때 쌍용차 사태의 차이점은 뭐가 있을까? 이렇게까지 사태가 장기화됐던 이유를 찾아본다면?
권영길 : 정부로 볼 때는 처음부터 '꽃놀이패'였다. 정부의 기조는 노동운동을 궤멸시키는 것이었다. 정부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민주노조를 완전히 정리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쌍용차가 파산을 하든 말든 잃을 것이 없었다.
만약 파산한다면 '노조의 파업 때문에 국가 기간산업이 무너졌다'는 공격이 가능하다. 파산하지 않는 상황이 온다는 것은 힘을 통해 진압하는 등 내용적으로 노조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정부로서는 답답하고 아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사 측도 그런 정부와 똑같았다고 볼 수 있다. 교섭 과정에서 사 측은 '이건 우리 의지가 아니라 다른 쪽의 뜻'이라고 얘기도 했다. 다른 쪽이란 뻔한 것이다. 정부다. 정부의 뜻이란 청와대의 뜻이다. 물론 어느 정부에서든 노조의 강고한 투쟁이 벌어지면 청와대 의지가 작용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 "'노사 자율로 풀어야 한다'고 밖으로는 얘기하는데, 오히려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가 협상을 이끌고 방침을 정하고 진행방법, 속도, 내용까지도 조절했다. '무관여의 관여'였다."ⓒ프레시안 |
프레시안 : 과거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좀 대응이 다른 것 같다.
권영길 : 방관자였다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쌍용차 대응의 기조였던 것이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 묵묵부답이다'라고 하지만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정부의 전략이었다.
그런데 실제 내용이 방관자였나?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방관자였지만, 내용적으로는 침묵하지 않았다. '노사 자율로 풀어야 한다'고 밖으로는 얘기하는데, 오히려 깊이 개입하고 있었다. 심지어 정부가 협상을 이끌고 방침을 정하고 진행방법, 속도, 내용까지도 조절했다. '무관여의 관여'였다.
특히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긴급구제에도 불구하고 사 측이 물과 가스, 전기를 끊는 것도 방치했다. 의약품마저 차단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노동관이다. 정부가 아무리 제대로 된 노동운동, 즉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를 못 마땅하게 여긴다 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냐.
"2일 교섭이 깨지고 나서는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게 목표가 됐다"
프레시안 : 25일 교섭이 깨지고 다시 노사가 마주 앉아 나흘에 걸쳐 교섭을 벌였는데 다시 결렬됐다. 회사가 결렬 선언을 했다. 그리고 5일 경찰이 대대적인 진압 작전을 벌였고, 6일 합의문이 마련됐다.
권영길 : 나흘 동안 이뤄진 교섭이 8월 2일 깨지면서는 참 어려웠다. 그 전까지는 어떻게든 괜찮은 안을 만들어 타결을 짓는 것이 중재단의 목표였다면, 그 시점부터는 사람 목숨을 구하는 것이 목표가 됐다. 끔찍한 대형 참사가 일어질 가능성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합의안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라 타결 자체가 목표가 됐다는 얘긴데, 그렇다면 최종 합의안은 어떻게 평가하나? 마지막 합의안은 사실상 중재단이 마련한 안을 노사가 받아들인 것이었다.
권영길 : 이미 그때는 정상적인 노사 교섭을 통한 타결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노조의 항복이었다. 내용도 그렇지만 형식적으로도 그랬다. 굉장히 안타깝다.
2일 기준의 농성자 640명 가운데 48%를 살리고 52%를 분사 및 희망퇴직하는 안은 정리해고를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안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이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안을 가지고 중재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참담하겠나.
더한 모욕과 모멸감은 교섭 타결 이후에도 느꼈다. 언론에 대고 내가 '가능하면 정리해고라는 용어를 안 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미 7월 24일 간담회에서 사 측은 '정리해고'라는 표현을, 노조는 '총고용 보장'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기로 했다. 참 구차스러웠지만, 합의문에 결국 '정리해고'라는 표현은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한 기자가 '희망퇴직이 정리해고지 않냐'고 핀잔을 주더라. 그때 정말 내 인생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 "2일 기준의 농성자 640명 가운데 48%를 살리고 52%를 분사 및 희망퇴직하는 안은 정리해고를 막아내는 것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안이었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이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안을 가지고 중재를 하게 된 것이 얼마나 참담하겠나."ⓒ프레시안 |
"민주노총, 총자본·정권과의 투쟁 이전에 한 자본 바꿔낼 힘도 없었다"
프레시안 : 쌍용차는 정리가 됐지만 앞으로 곳곳에서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 금속노조 뿐 아니라 민주노총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전망이 대세다.
권영길 : 감리교 창설자인 존 웨슬리가 한 말이 있다. '나는 감리교가 사라지는 걸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감리교 정신이 없는 껍데기 감리교가 있는 것이 두렵다.' 그 글이 내 가슴을 쳤다. 이 말은 내가 해야 할 얘기고, 나에게 하는 말이다.
바꿔 얘기하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 없어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의 정신이 사라진 껍데기 민주노총이 있는 것이 두렵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됐다. 결론은 아직 내리지 못했다.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이미 쌍용차 이전에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이명박 정권 퇴진'을 외친다면 그에 걸맞는 투쟁을 했던가. 총자본과의 투쟁 이전에 한 자본을 바꿔낼 힘이라도 있었던가? 투쟁의 총체적 승리는 고사하고, 부분적 승리라도 얻어낼 수 있었던가? 아니었다. 금속노조 뿐 아니라 다 마찬가지다.
이랜드 투쟁 때 다 실체를 드러냈다. 이랜드노조는 불만이 있었을 수 있지만 민주노총 결성 이후에 그만큼 전력을 쏟아 부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다.
"기업 울타리에 갇혀서는 어느 것도 안 된다"
프레시안 : 민주노총의 실력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반복되는 얘기다. 문제는 해법이라고 보는데.
권영길 :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한다. 사실 노동자에게 생명은 연대다. 연대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니다. 연대의 표현이 단결이고 연대의 표현이 투쟁이다. 연대하지 않으면서 노동해방? 정권과 싸운다? 빈 말이다.
연대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감정의 교류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지 않는데 단결이 될 리가 없다. 그래서 단기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사라진 연대의 회복이다. 현재의 집행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가 풀어가야 할 문제다. 길게는 긴 호흡으로 틀을 다시 짜야한다.
또 노사관계란 기본적으로 청와대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1990년 KBS투쟁이 끝나고 그때 노태우 정부 핵심 인사가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정권은 정권의 운명을 걸고 대응했는데 노조는 좁은 테두리 안에서만 싸우고 있더라. 말로는 정부 비난도 하고 공격도 하지만 노조의 투쟁은 대정부 투쟁이 아니었다. 승패는 거기서 갈렸다."
기업 울타리에만 갇혀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아무런 장치가 없어 해고가 살인이 되는 나라에서 정부를 향해 '너희 살인자 아니냐. 해고가 살인이 되지 않기 위한 장치를 내놓아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최근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말한 사회연대노총도 그런 것이다. 구체화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 긴 시간 얘기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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