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4일 평택 대추리에 경찰 1만3000여 명, 용역 1200여 명, 군인 2000여 명이 들이닥쳐서 집과 땅이 미군 기지로 강제 수용되는 것에 반대하던 주민들을 쫓아냈다.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이상희 국방부장관은 무장병력을 투입해서 반대하는 주민들을 진압하자고 제안했다. <신동아> 2008년 10월호는 "대추리 시위 사건 때 윤광웅 국방부 장관에게 군 병력을 무장시켜 시위 현장에 투입하는 진압 작전 계획을 보고하자 국방부 관계자들은 뒤로 자빠질 정도로 놀랐다"고 전했다. 이상희 장관은 이 보도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신동아>의 보도가 사실로 믿을만하다고 판결했다. 이상희 장관은 참 무서운 사람이다.
'질긴 놈이 이긴다'는 글귀를 천막에 붙여 놓고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지키기 위해 애쓰던 대추리 주민들은 결국 이곳저곳으로 모두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평택의 고통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쌍용차를 둘러싸고 더 큰 갈등이 빚어진 것이다. 쌍용차 사측에서는 쌍용차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2600여 명이 정리 해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테면 열심히 일하던 노동자들이 어느날 갑자기 쓰레기 신세가 되어 버려지게 된 것이다. 100년쯤 전에 미국의 업튼 싱클레어라는 소설가는 <정글>이라는 소설에서 '너무나 열심히 일해서 일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노동자'에 관해 썼다. 졸지에 쓰레기 신세가 된 노동자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쌍용차 노동자들은 느닷없는 정리 해고 조치에 의해 두 패로 갈리고 말았다. 하나는 거대한 쌍용차 공장의 한 건물을 점거하고 끝없는 농성에 들어간 해고 대상 노동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공장의 대부분을 장악해서 농성 노동자들을 포위하고 항복을 요구하는 비해고 대상 노동자들이다. 참으로 끔찍하고 안타까운 현장이 아닐 수 없다. 동료이자 친구로서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사람들이 졸지에 '적'으로 갈리어 생사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비해고 대상 노동자들은 농성에 들어간 해고 대상 노동자들을 공공연히 '적'으로 부르고 있다. 그들은 심지어 해고 대상 노동자들의 가족들과도 욕설을 퍼붓는 험난한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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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0일 오후에 쌍용차 정문 앞에서 교수·학술단체의 대표단이 모여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나는 두 시간을 넘게 전철을 타고 평택역으로 가서, 다시 평택역 앞에서 농성하고 있는 시민단체의 차를 얻어 타고 쌍용차 정문 앞으로 갔다. 거기서는 무장한 경찰들이 삼엄하게 차량의 통행을 통제하고 있었다. 보도에는 시민단체,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천막을 치고 농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교수·학술단체의 기자회견에 앞서서 인도주의의사협의회의 의사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의사들은 800명에 이르는 농성자들의 건강에 대한 여러 우려를 전하면서 약품과 물의 제공을 간절히 호소했다.
그러나 정문을 봉쇄한 이른바 '사측 노동자들'의 반응은 끔찍했다. 그들은 어떤 약과 물의 제공도 허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커다란 스피커들이 여러 개 장착된 방송차를 동원해서 의사들의 기자회견마저 격렬히 방해했다. 주변의 경찰들도 기자회견을 좋아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순찰차에서는 의사들의 기자회견이 차량의 통행을 가로막는 집회라며 강제해산하기 전에 길에서 물러나라고 연신 외쳐댔다. 그것은 기자회견을 중단하라는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농성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사람이다. 그들도 당연히 인권의 주체이다. 그러나 '사측 노동자들'과 경찰들에게 그들은, 그리고 그들에게 약과 물을 제공해야 한다고 호소하는 의사들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농성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건물의 옥상에 쓰여 있는 '대화를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우리를 죽여라'는 처절한 글귀가 보였다. 날이 몹시 덥기도 했지만 참으로 가슴이 답답했다. 갑자기 노동자를 노예로 여기던 박정희의 유신독재나 전두환의 5공독재로 돌아간 것 같았다. 800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의 한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극히 문제적인 것이지만, 그들에 대한 '사측 노동자들'과 경찰들의 태도는 더욱 더 문제적인 것으로 보였다. 주변에서 날아다니는 잠자리들마저 한가로워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숲 속에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마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쌍용차는 거대한 반인권의 현장이었다.
여러 방해 속에서 의사들이 기자회견을 마치고 우리의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경찰의 방해를 피해서 정문 건너편 보도 위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사측 노동자들'의 방해는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문 바로 안에 있던 방송차를 우리와 가까운 담 쪽으로 옮겨서 방송을 해댔다. 그 내용은 민주노총에 대한 일방적인 음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들은 우리를 민주노총의 지원 세력으로 여기고 민주노총에 대해 욕을 퍼붓는 방송을 고래고래 틀어댔던 것이다. 사실 전날 민주노총에서 7000명의 조합원들이 농성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찾아와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고 했다. 경찰은 4대의 헬리콥터를 동원해서 발암성 최루액을 뿌렸고, 그 흔적은 쌍용차로 들어가는 길목의 여기저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측 노동자들'의 치졸한 방해 속에서 어렵게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분노와 우려가 함께 어우러진 발언들이 이어졌다. 민교협 상임의장인 서울대 우희종 교수는 쌍용차 사태가 '제2의 용산 참사'를 넘어서 '제2의 광주 학살'이 될 가능성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교수노조의 위원장인 연세대 김한성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합법을 외치는 '불법 정부'이자 전직 대통령마저 자살하게 한 '살인 정부'라고 성토했다. 학단협 대표인 호원대 서유석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반인권성을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했다. 끝으로 교수노조 국공립대위원장인 인천대 김철홍 교수는 약자들의 연대를 통한 개혁의 중요성을 강력히 설파했다.
의사들과 교수들이 지적한 것은 하나였다. 그것은 진정한 대화와 타협은 농성자들의 건강과 생명을 존중하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밥과 약과 물의 공급을 끊고 무조건 항복할 것을 요구하면서 대화와 협상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을 가질 수 없지 않은가? '사측 노동자들'은 윤도현의 노래들을 틀어대며 기자회견을 방해했다. 이거야말로 윤도현의 정신을 깡그리 무시한 일방적 처사가 아닌가? 그들은 이런 일방적 태도로 농성자들의 항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무모한 진압으로 말미암아 화재가 발생해서 수백명의 농성자들이 타죽는 불상사가 벌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농성자들을 죽여서라도 정리해고를 달성해야 하는 것인가?
아마도 '사측 노동자들'도 농성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약자의 연대를 결코 추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모든 노동자들이 힘을 모을 수 있었다면, 사태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문제의 원천은 경영진과 정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대화와 회생을 위한 어떤 적극적 조치도 거부하고 오로지 경찰력만을 사용하고자 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책임은 너무나 크다. 그들은 정녕 노동자를 양방향의 소통 주체가 아니라 일방적인 홍보 대상으로만 보는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서민'을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노동자는 '서민'이 아니라 '노예'인가? 하늘의 해는 밝지만 이 나라는 갈수록 어두워지는 것 같다.
지구화에 따라 경쟁이 계속 격렬해지면서 종신고용은 이미 오래 전에 옛이야기가 되었다. 노동자들에게 정리 해고는 언제나 나의 일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고용 안정과 임금 인상을 위한 노력만으로는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도 해고자, 실업자, 비정규직의 증가는 엄청난 불안의 증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을 주체로서 존중하는 기업과 사회 개혁을 위해 헌신하는 노동운동이 갈수록 절실해지고 있다.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어설픈 '기업 프렌들리'로 더 이상 나라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지 말라. 쌍용차는 우리에게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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