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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타계…자택서 쓰러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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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타계…자택서 쓰러져

심장마비 증세…내년 2차 대한해협 횡단 도전 준비 중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57) 씨가 4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이날 오전 11시 32분께 전라남도 해남군 계곡면 법곡리 조 씨의 집 현관에서 조 씨가 쓰러져 있는 것을 부인 이성란(44) 씨가 발견, 119에 신고했다. 이 씨는 "주변 산을 둘러보고 왔더니 남편이 현관 앞에 쓰러져 있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구급대원 도착 당시 심장마비 증세를 보여 해남종합병원으로 옮겨져 심폐소생술을 받았으나 낮 12시 45분께 끝내 숨을 거뒀다.

조 씨는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인 내년 8월 15일께 대한해협 횡단에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놓고 준비하다가 1주일 전부터 자택에 머물며 부인과 함께 지내왔다고 주변 사람들은 전했다.

조씨의 친구 김용철 씨는 "호적과 달리 내년이면 실제 나이로 환갑이 되는 해여서 '환갑의 힘'을 과시해 국민에게 용기와 힘을 주겠다고 의욕을 불태웠었다"며 "최근 함께 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특별한 이상 없이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씨는 1970년과 1974년 아시안게임 수영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으며 선수 시절 한국신기록 50번을 세우는 등 '아시아의 물개'로 명성을 떨쳤다.

1980년과 1982년 대한해협과 도버해협을 각각 횡단하고, 2005년에는 두 아들과 울릉도~독도를 헤엄쳐 건너기도 했으며 대한수영연맹 상임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조오련, 그는?

4일 심장마비로 숨진 조오련 씨는 '아시아의 물개'로 불리던 한국 수영의 영웅이다.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양정고, 고려대를 졸업한 고인은 고교 2학년 때인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미터, 1500미터에서 우승 2관왕에 오르며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 수영의 새 역사를 썼다.

4년 뒤인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서도 남자 자유형 400미터, 1500미터 금메달을 목에 걸며 대회 2회 연속 2관왕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었던 고인은 선수 생활을 접고 나서인 1980년 8월 11일 부산 다대포 앞 방파제를 출발해 13시간 16분 만에 일본 쓰시마섬(대마도)까지 헤엄쳐 대한해협을 횡단하며 한국인의 기개를 세계에 과시했다. 1982년에는 9시간 35분 만에 도버해협을 횡단됐다.

1989년부터는 '조오련 수영 교실'을 운영하며 꿈나무 육성에 힘을 쏟았고, 2003년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위원을 역임했다. 고인은 광복 60주년인 2005년, 두 아들 성웅·성모 씨와 함께 울릉도, 독도를 횡단했다. 차남 성모 씨는 대(代)를 이어 수영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지난해에는 독도 33바퀴 헤엄쳐 돌기 프로젝트에 성공하는 등 잠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고인은 내년에 2차 대한해협 횡단에 도전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캠프를 차려 준비하다 사망 일주 전부터 자택에 머물러 왔다. 1970년 대한민국 체육상, 1980년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2001년 전처와 사별하고 고향 해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으며 지난 4월 이성란 씨와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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