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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가 경쟁을 만났을 때…"

[복지국가SOCIETY] 사회서비스 시장화, 무너지는 지역 NGO

참여정부 집권 후반기인 2006년 9월 이후에 추진된 사회서비스 확충 전략은 비교적 선명한 설계도를 갖고 출발했다. 기초생활보장이나 사회보험과 같은 소득보장제도의 개선으로 사회복지 지출을 늘려가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존재하였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취약한 사회서비스 부문을 성장시키는 것이 한국의 복지를 진일보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제조업에서 줄어드는 고용을 대신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사회서비스의 확충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실제로 참여정부 당시에 사회서비스 부문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였다. 2002년과 2006년 사이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분야의 재정지출은 1700억 원에서 1조 3000억 원으로, 일자리는 6만9000개에서 12만9000개로 급증하여 정책이 추진된 전후 4년 사이에 재정 지출은 7.6배, 일자리 수는 1.9배나 증가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설계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꽤 설득력 있게 다가갔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추진할 것인가에 있었다. 참여정부는 여기서 시장을 택했다.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매우 제한적으로 제공되고 있던 기존의 사회서비스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단기간에 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많은 공급자들이 필요하였다. 정부는 사회서비스 분야에 민간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함으로써 사회서비스 시장을 형성시키는 쪽으로 정책의 가닥을 잡았던 것이다.

또 '바우처'라고 불리는 서비스 이용권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것은 한국 사회복지의 발달 경로를 가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택이었다. 복지 공급을 위한 공적 인프라가 매우 부족한 기존의 조건을 감안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2030년이면 OECD 국가 평균 수준의 복지에 도달해 보자는 참여정부의 '야심'을 밝힌 상황에서, 이는 다수의 전문가들과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는 판단이었다.

사회서비스의 확충에 관한 한, 서구 복지국가의 경험은 '공공 부문에서 보편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진보적이냐 아니냐를 가릴 것 없이, 당시 사회서비스의 확충에 관한 주장들 역시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제공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사실, 그런 주장들에서 이들 사회서비스의 공급을 '공공이 하느냐 시장이 하느냐' 하는 논의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사회서비스는 그런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영리공급자에 의해서 한정된 대상에게만 제공되던 것이다 보니, 시장을 통해서 더구나 '바우처'라는 낯선 방식으로 사회서비스가 제공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하물며 지역사회복지관, 지역자활센터(구 자활후견기관), 국공립보육시설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NGO와 장애인단체와 같은 당사자 단체들이 사회서비스의 '독점 공급자'라는 이름표를 받았을 때에도 경쟁이나 실적이라는 단어는 자신들과는 거리가 먼 얘기인 듯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이들 비영리 공급자는 말로만 듣던 사회서비스의 공공부문이 자신들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시장이 민간영리업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리고 있다. 서비스 대상자를 확보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와 영리업체 사이에 경쟁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바우처 방식의 도입은 서비스 공급 계약 체결의 주도권을 공급자에서 수요자로 이동시켰다. 그래서 비영리단체도 수요자를 모집하지 못하면 단체의 운영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사회서비스의 시장화는 비영리단체의 영리업체화를 자각하게 하는 과정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첫 단계가 바우처 방식의 도입을 둘러싼 것이었다면, 두 번째 단계는 비영리단체와 영리업체 사이의 경쟁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거칠게 예측하자면, 세 번째 단계는 시장 질서를 주도하는 조직연합과 정부 간의 가격(단가) 협상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전 단계가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느냐에 따라 그리고 민주화 정도에 따라 그 양상은 다를 것이다.

비영리단체와 영리업체 사이의 경쟁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이를 한 지역의 '산모 신생아 도우미 지원서비스'가 제공되는 과정을 통해 비영리공급자가 어떻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지를 살펴보자.

▲ 한국에서 보육 시설이 절대 부족하다는 목소리에는 진보, 보수의 구별이 없다. "엄마, 아빠가 되는 게 두려운 사회"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프레시안
첫째,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보 제공자와 관련 규제의 존재 여부다. 모집 경쟁의 첫 출발은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서비스 공급자에 관한 정보를 어떻게 획득하느냐 하는 것이다. 여러 조사를 통해서도 나타난 것처럼, 이 서비스를 알게 된 경로는 '주위 분들이 알려 주어서'가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은 홍보물을 통해서, 그리고 지자체 또는 주민 센터(구 동사무소), 보건소 등의 공공기관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공공기관의 역할이다. 사람들은 공공기관 담당자들이 알려주는 정보에 대해선 비교적 신뢰한다.

그런데 이들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보 제공자 역할을 해 주느냐가 문제이다. 공공기관이 비영리단체에게 유리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요자들의 질문은 단지 어떤 공급자가 있는지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항들(사은품, 유축기 이용 등)에 대해 알고 싶어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보 제공자의 역할은 담당 공무원 개인의 판단에 맡겨진다. 홍보물은 공공기관이 제작·배포한 것일 수도 있고 서비스 공급자가 한 것일 수도 있다. 홍보 측면에서만 본다면, 비영리단체는 수요자를 꼬드길 만한 것들이 부족하다. 이에 관한 규제가 없는 것 자체가 수요자 모집 경쟁에서 영리업체가 우위에 있을 가능성을 더 높이게 된다.

둘째, 지자체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서비스 공급자에게 단가 외의 간접비를 제공하느냐 여부이다. 수요자 모집 이후 도우미는 서비스 공급 계약이 체결된 산모의 거주지로 찾아간다. 거주지가 도심에 있느냐 도심지 밖에 있느냐에 따라 서비스 공급 단가에 포함되지 않는 간접비가 발생할 수도 있게 된다. 이 지점에서 비영리단체와 영리업체 간의 경쟁은 그 비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다.

영리업체는 확률적으로 산모가 덜 발생할 농어촌 지역을 아예 포기하는 반면에 비영리단체는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장거리 교통비 등)을 단체가 떠안거나 도우미가 부담하면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다보니 비영리단체에 소속된 산모들이 영리업체로 옮겨가게 된다. 결국, 영리업체는 도시지역을, 비영리단체는 농어촌지역의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공급하는 양극화를 초래한다. 이는 민영의료보험 회사가 가입자를 선별하는 크림떠먹기(cream skimming)와 비슷한 상황이다.

셋째, 적절한 서비스 공급기관 수에 관한 규제의 존재 여부이다. 앞서 언급한 경쟁 과정은 영리업체의 실적(공급계약 건수) 증가와 비영리업체의 실적 하락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이루어진 지역의 경우, 영리단체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 비영리단체의 실적은 거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한된 지역에서 제한된 대상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이다 보니 시장의 규모 또한 제한되어 있다. 사회서비스 시장 진입에 대한 규제가 없으면, 이러한 결과는 훨씬 치열한 과정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영리업체의 서비스 공급이 수요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것이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비영리단체의 역할을 수행할 수는 없다. 영리업체는 일단 경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는 '수익을 높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이 합리적 기준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경쟁은 비영리단체들을 무력화시킬 것이다.

사회서비스 공급체계에서 지역 NGO는 국가가 마련하지 못했던 공적영역의 보루다. 사회서비스가 최소한으로 제공되었던 조건에서 그들은 공공기관을 대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에 의해 지켜지고 있던 공공성 또한 그들이 견지하고 있는 가치 덕분이다. 사회서비스를 절대적으로 성장시켜야 할 상황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할 목표는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의 양극화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납득할만한 수준의 질을 가진 사회서비스를 얼마나 보편적이고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서비스 시장화에 무너지는 비영리공급자의 생존과 활성화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장 진입에 관한 규제를 두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현재는 지자체가 조정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수요가 많고 수익이 발생할 수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서비스 공급자 수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서비스 공급에 참여하지 않는 다른 NGO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사회서비스를 공급하는 NGO에게 수요자를 의뢰해 줌으로써 안정적인 수요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된 시장영역'을 구축하는 것에서부터 공공부문에 의해 보편적인 사회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까지 우리 시민사회가 사회서비스 시장의 관리자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 동안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복지국가 운동 세력들이 주장해온 '역동적 복지국가'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시민사회, 특히 지역에 근거를 둔 모든 NGO들의 능동적인 참여로 달성이 가능하며, 그 시기가 앞당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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