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이 개편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남은 임기(2011년 2월까지)를 채우겠다는 뜻이다.
이로써 분명해졌다. 방문진이 손 안 대고 코 푸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MBC 경영진을 자연스레 물갈이하는 일도, 이를 통해 MBC 조직을 조기에 개편하는 일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속단하지는 말자. 이 같은 상황이 방문진과 엄기영 체제의 공존을 기정사실화 하는 건 아니다.
▲ 엄기영 MBC 사장 ⓒMBC |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일부 방문진 이사들은 엄기영 사장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수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방문진에는 그런 권한이 있다. 방송문화진흥회법에 MBC의 공적책임과 기본운영계획, 경영평가에 대한 심의·의결권이 명시돼 있다. 관행상 방문진은 MBC 경영에 대한 관리감독을, MBC 경영진은 인사와 제작을 책임져 왔다고 하지만 그건 관행이다. 방문진이 법을 내세워 책임을 물으려 하면 못할 일도 아니다. 이미 KBS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기영 사장의 입장 표명이 의미를 갖는 건 '과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엄기영 사장이 방문진의 공적책임과 경영평가 심의에 불복하면 판이 달라진다. 방문진의 규정은 논란거리가 되고, 방문진의 가치는 쟁점거리가 된다. 특히 '공적 책임' 부분, 즉 방송 프로그램의 공정성·객관성·중립성을 둘러싼 시각의 차이가 MBC 사내를 넘어 국민 전체의 화두가 될 공산이 크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나쁘지 않은 현상이다. 그런 논란은 MBC 체제 존속을 전제로 한 것이다. 공영방송 체제를 전제로 공정성 강화를 둘러싼 논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논란이 격화될수록 공정성의 가치가 중시되고 공영방송의 존재이유가 부각된다.
더불어 약화된다. 격한 논란과정을 거쳐 공정성에 대한 공통분모를 만들면 일부 이사의 '편향된' 시각이 관철될 여지가 줄어들고, 행여 일부 이사들이 막무가내로 조직과 프로그램 개편을 밀어붙이려 해도 그 정당성이 약화된다.
물론 이같은 전망엔 전제가 있다. 엄기영 사장의 행보가 오락가락 하지 않는다는 전제다. 지난 봄 개편 때와 같은 행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다. 그렇게 자중지란의 여지를 만들지 않는다는 전제다.
이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MBC 구성원이 고립된다. 그리고 각개격파 당한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