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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한 지식인의 고군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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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가는 대한민국, 한 지식인의 고군분투기

[화제의 책] <후진 기어 넣고 앞으로 가자고?>

가끔 고 정운영의 칼럼을 찾아 읽는다. 그의 칼럼을 묶은 첫 책 <광대의 경제학>이 1989년에 나왔으니, 칼럼에서 다루는 일은 대부분 10~20년이 지난 것이다. 그러나 글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칠 때가 많다. 한국의 정치, 경제의 큰 틀이 그 때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정운영의 칼럼을 모은 책들을 늘 눈에 띄는 곳에 두는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칼럼을 모은 <광대의 경제학>부터 <심장은 왼쪽에 있음을 기억하라>까지 아홉 권의 책은 1987년부터 2005년까지 이른바 '87년 체제'의 역사를 기록한 소중한 사료이다. 그는 매번 원래 칼럼이 실렸던 날짜는 물론이고 간단한 후기를 덧붙여 책의 가치를 더욱더 높였다.

그렇다면, 한 20년쯤 후에 오늘날을 돌아보고자 하는 독자들이 손에 들 만한 책은 무엇일까? 최근 홍성태가 펴낸 <후진 기어 넣고 앞으로 가자고?>(한울 펴냄)는 바로 그런 책을 기다리던 독자를 위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전후의 시점부터 취임 1주년이 되는 즈음까지를 기록한다.

홍성태는 정운영이 그랬듯이 칼럼이 실린 날짜를 꼼꼼히 기록해뒀을 뿐만 아니라, 매 글마다 뒷얘기를 덧붙여 책의 가치를 높였다. 상당수 지식인이 신문, 잡지에 실린 (철 지난) 칼럼을 그대로 묶으면서 마치 새로 쓴 것처럼 원 출처를 언급하지 않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충분하다.

대한민국 후진화의 기록

▲ <후진 기어 넣고 앞으로 가자고?>(홍성태 지음, 한울 펴냄). ⓒ프레시안
이 책은 출범한 지 2년도 안 된 이명박 정부가 그간 해온 온갖 실정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소영' 인사, 부자 감세, 한반도 대운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촛불 집회, 언론 장악, 공안 통치, 역사 왜곡, 용사 참사 등. 만약 한국이 의원 내각제를 채택한 나라라면 이 중 한 가지만으로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을 것이다.

홍성태는 이런 온갖 사건을 꿰뚫는 열쇳말로 '후진화'를 꼽는다. 이 책의 부제가 '대한민국 후진화의 기록'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를 공공연히 자신의 지향으로 내세워온 점을 염두에 두면 여러모로 되씹어볼 만한 제목이다. 그가 보기에는, 이명박 정부가 선진화하고자 추진하는 정책이야말로 후진화의 증거이다.

그렇다면, 홍성태가 생각하는 선진화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는 이 책에 앞서 낸 <민주화의 민주화 : 노무현과 이명박을 넘어서>(현실문화 펴냄)에서 좀 더 치밀하게 그 조건의 내용을 전한다. 그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국이 선진화하려면 '정치적 민주화', '사회적 민주화', '생태적 민주화'를 이뤄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는 단순히 1987년에 마련된 헌법으로 보장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지역주의와 같은 '만들어진 신화'에 넘어가지 않는 의식 있는 시민, 이런 시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당, 그런 정당과 상호 견제하면서 권위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정부 등이 등장할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공고해진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부가 재벌과 같은 시장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상적이지 못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사회는 그 자체로 바람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고자 노력하는 무한 경쟁으로 몰아넣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 위기를 낳는다.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사회적 민주화'야말로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홍성태는 더 나아가 '생태적 민주화'를 강조한다. 그가 대형 개발 사업으로 상징되는 개발주의의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른바 '토건국가'를 가장 앞장서 비판해온 지식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런 강조는 당연하다. 그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일련의 지식인과 가장 또렸하게 갈라지는 지점도 이 부분이다.

불확실한 세상…지식인의 역할은?

▲ <민주화의 민주화 : 노무현과 이명박을 넘어서>(홍성태 지음, 현실문화 펴냄). ⓒ프레시안
홍성태는 <프레시안>에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꼬박꼬박 기고했다. 이 책에 실린 칼럼은 1년 6개월간에 걸쳐 쓴 그 많은 글들 중에서 60편만 추린 것이다. 이런 그의 행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다. 그들의 비판은 이렇다. "자기가 사회운동가냐. 교수가 강의나 하고 논문이나 쓸 것이지…."

가끔 이런 비판을 들을 때마다 21세기 지식인의 역할을 생각한다. 굳이 현대 사회의 특징으로 '높은 불확실성'과 '큰 위험'을 강조한 제롬 라베츠와 같은 지식인의 경고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극히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특정 정책이 추진되었을 때, 그것의 결과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예를 들면, 홍성태가 목소리를 높여서 경고하는 한반도 대운하와 그 뒤를 이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장밋빛 전망과 달리 심각한 생태, 경제적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가 역시 칼럼에서 수차례 지적한 광우병 쇠고기의 위험이나 인터넷 통제·감시 정책이 가져올 부작용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학자는 좀 더 엄밀한 증거와 논의가 축적될 때까지 발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지식인의 책임 있는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이 시기에 필요한 지식인의 역할은 바로 '탄광 속의 카나리아'처럼 사회의 변화를 좀 더 빨리 포착해 경고를 하는 것이다. 설사 시간이 지난 후 그런 경고가 과한 것으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말이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책에 실린 홍성태의 칼럼은 '지식인이 지금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범 사례다. 극소수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논문을 쓰는 데 주력했던 지식인과 자신의 연구와 더불어 당대의 문제와 씨름하며 실시간으로 수많은 독자와 같이 호흡하는 칼럼을 썼던 홍성태, 역사는 둘 중 누구를 더 높이 평가할까?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간 단편적으로 홍성태의 칼럼을 접했던 독자들은 이 책을 천천히 읽어봄으로써 이명박 시대의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또 덤으로 이 시대 시민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는 지식인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는 이 책에 실린 홍성태의 칼럼 대부분의 첫 독자였다. 연구, 강의, 온갖 활동 중간에 자는 시간을 쪼개 가면서 쓴 칼럼을 아침에 받을 때마다 기자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많이 부끄러웠다. 그는 때로는 바로 새벽에 일어난 일이라서 기자도 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한 일을 놓고도 엄밀한 논평을 보내올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고마운 마음과 함께 연대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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