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과 아프리카 경계지역을 탐방한 영상을 봤습니다. 우리네 휴전선을 방불케 하는 철조망이 유럽과 아프리카의 벽을 실감하게 했습니다. 그 철조망도 부족해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지키는 국경을 넘기 위해 수많은 아프리카인들이 목숨을 걸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통계에 잡힌 것만 한해에 수백여 명이 국경을 넘다가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또 운이 좋아 국경을 넘어도 점점 심해지는 각국의 단속에 걸려 내쫓기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지난 연말에는 인권선진국으로 불리는 EU가 '이민과 난민에 관한 유럽협정'을 채택하면서 '우수인재 적극 유치, 불법이민 강력차단'이라는 기조를 선포해 우리나라 출입국정책 담당자들로 하여금 '거 봐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지요. 수요를 이미 넘어서 이민노동자들(단기 노동자들이 아님)의 역사가 50년이 넘어가는 나라의 고뇌를 고용허가제 시행 5년을 맞이하는 곳에서, 한 번도 '일하는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이해하고 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한 나라에서 이해한다고, 그래서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서둘러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 서글퍼집니다.
국경을 넘어야 하는 현실과 짓밟혀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
고민입니다. 이렇게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 세계 각국을 떠돌며 노동하는 것이 어렵게 고향을 지키는 것보다 과연 행복할까? 한 가족의, 본인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국가의 경제를 책임진다는 막중한 임무는 이들을 계속 떠돌게 하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헐벗은 고향땅보다 낯설고 대접받지는 못하지만 번화한 세상이 더 편해졌을지도 모릅니다. 한번 고향을 떠난 이들은 쉽게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이렇게 지구 위를 떠돌곤 할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이주민이 2억 1천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이렇게 계속 떠돌게 하는 것이 개인의 욕망이 결부된 자발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연 행복을 꿈꾸는 인간들의 행위인지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국경을 더 통제해야 한다는 엉뚱한 대답이 나옵니다. 지금껏 그래왔는데도 전체 체류이주민의 20% 가까이가 미등록인 나라, 그 비율을 줄이기 위해 인간사냥이라는 행정행위를 십년 넘게 하면서 당국이 잡은 것이라고는 인간의 존엄과 인권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다른 곳에 있겠지요.
과연 어떻게 하는 게 좀 더 인간답게 살아가는 이 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생각이 많습니다. 국경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세계화의 광풍을 타고 흘러 다니는 초국적 자본은 이미 오래전에 국경을 허물고 한 나라의 경제를 초토화 시키기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 땅을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가족을 잃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 놓았던 것을 우리는 분명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촛불을 들고 광장을 채우며 먹거리를 지켜보자는 사람들의 꿈이 공권력에 짓밟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니 오늘 아침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국경을 쉽게 허물어집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과연 지금의 국경이, 국익을 보호한다는 국경이 과연 누구의 이익을 위한 보호막인지 헛갈리는 이유입니다. 2003년에는 명분도 없는 이라크전쟁에 우리네 국경을 지켜야할 군인들이 미국에 멱살 잡혀 국경을 넘는 일도 있었습니다.
정말, 이주노동자 때문에 한국인의 노동환경이 나빠지는가
얘기하다보니 범위가 너무 넓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노동자 수가 대략 67만 명이라고 합니다. 이 중 절반이 재외동포들입니다. 일제 시대 독립운동을 위해, 혹은 핍박을 피해 중국으로 떠났던 사람들의 후손인 중국동포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잘 사는 나라에 사는 해외동포들에게 주어지는 자유왕래마저 할 수가 없습니다. 편법적으로 방문취업제(H-2)를 운영하지만 여전히 많은 동포들이 미등록노동자로 건설현장과 음식점들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대한국민의 일자리와 가장 많이 부딪히고 있습니다. 역사를 조금만 거슬러 오르면 이들도 우리 속에 포함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을 어떻게 할지 에 대해서는 정부에서도 고민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낮은 임금의 이주노동자 때문에 한국인 노동자 환경이 더욱 나빠진다는 말은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물론 일정 정도 그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요. 앞서도 언급했듯이 중국동포들이 대거 진출해 있는 건설현장과 음식점 등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영세제조업체에서 한국인 구직자들과 경쟁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인 노동자들의 현실을 잘 말해주는 비정규직 지표가 있습니다. 노동부가 발표한 '2005년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노동인구의 55.9%인 858만명이 비정규직과 취약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수준은 월평균 117만 원으로 정규직 181만 원의 64.8%로 집계돼 2004년 65%보다 다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보다 3년이 지난 지금은 훨씬 더 그 상황이 극단으로 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한국의 노동현실은 노동유연화 정책으로 대거 발생한 비정규직 노동자로 대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한국인이 찾지 않는 영세제조업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말이지 어불성설입니다.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서는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의 원칙이 이주노동자나 한국인노동자 너나없이 모든 사업장에서 관철되어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독일에서는 혹시라도 이주노동자들이 저임금으로 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국사무소에서 단속 시에 세무서 직원들과 동행한다고 합니다. 조사 시에 그동안 독일 내의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에 비해 현저히 적은 금액으로 일했다는 것이 밝혀졌을 경우 사업주는 세금탈루 혐의로 처벌받게 됩니다. 이렇듯 문제의 원인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고, 쫓아낸다면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을 다 쫓아내도 똑같은 문제로 머리가 아플 것이 분명합니다.
한 나라의 사회유지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이 노동인구입니다. 이미 언론에서 우려를 표했듯이 한국의 노동인구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최저의 출산율과 고령화는 이미 심각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여성에 대한 복지 정책 없이 아이 안 낳는 여성들을 비난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부족한 노동인구를 대체하기 위해 들어와 땀 흘리는 이주노동자들을 비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과 미국, 일본, 대만, 말레이시아까지 모든 나라에서 부족한 노동인구를 대체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쓰고, 이민 정책을 적극 장려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 생산해 내는 부가가치는 그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작은 금액에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가 커서 일할 수 있는 노동인력이 되는 데까지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들어가는 교육비 이상으로 우리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당연히 부담해야 하고, 아직 턱 없이 부족하지만) 사회적 비용이 많습니다. 이민국가인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비용에 대한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사회적 부담이 없는 성인 노동인력을 들여오는 것입니다. 싸게 노동인력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3년간 그것도 산재와 의료보험 정도의 사회안전망의 보장을 받는 것이 한국의 이주노동자 현실입니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우리 세금이 아깝다고 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독하게 이기적인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사는 곳에 발생하는 범죄는 세계 어디든 비슷할 것입니다. 피해자로서 경찰서에 가도 미등록자이면 무조건 강제추방 되는 게 지금의 한국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수의 이주노동자들은 분노가 쌓여도 그것을 표출하지 않고 혼자 삭히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상황에 있는 이들이 범죄의 온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용허가제, 무얼 할 수 있는가
마지막으로 고용허가제(2009년 6월 말 현재 고용허가제로 약 15만 5000여 명, 방문취업제를 통한 동포가 31만 명, 미등록취업 18만 7000여 명)에 대한 답입니다. 오는 8월 17일이 되면 고용허가제 시행 5년을 맞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형 인력제도라며, 고용허가제 이탈율 (사업장을 벗어나 미등록체류자가 됨)이 그 전 제도인 산업연수제에 비해서 낮아진 것을 근거로 이야기 합니다. 노동자를 노동자로 보지 않았던 산업연수제에 비한다면 좋아진 제도가 분명합니다. 최소한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나름 노력한 제도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3+3년의 단기 로테이션과 사업장이동 금지, 가족동반 금지라는 대전제를 보면 인간을 인간이 아닌 노동하는 기계로 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복조건을 모두 거세한 제도입니다. 이탈율이 낮은 것도 시행 3년이 만기한 시점에서 시행한 3년 연장한 제도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행 5년이 지나 6년이 도래하는 내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외국인정책위원회 자료를 보면 숙련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 기준을 보면 관련 자격증과 한국인에게도 버거운 높은 임금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쳐다보고 침이나 흘리라는 말처럼 들리는 제도입니다. 왜 좀 더 솔직하고 인간적인 제도를 만들어 내지 못할까요? 저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세대들이 이룩한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너무 무섭게 들립니다. 전 세계 자원의 20%를 소비하면서도 더 많은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온갖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이라크를 무참히 침공한 부시를 떠올리게 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의 것은 더 이상 우리들 스스로의 땀과 힘만으로는 만들어졌다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쓰는 물건 중의 많은 것들이 하루 1달러로 살아가는 제3세계 민중들의 땀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한국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느새 한국은 아시아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받는 나라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나누어야 하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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