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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세대' 뒤따르는 '이명박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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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세대' 뒤따르는 '이명박 세대'

[기자의 눈] 입학사정관제로 교육 개혁 이루겠다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7일 라디오 연설에서 "대학들이 내년 입학 시험부터 논술 없이 입학 사정을 통해 뽑고 농어촌 지역 분담을 해서 뽑을 것"이라며 "임기 말쯤 가면 상당한 대학들이 거의 100%에 가까운 입학 사정을 그렇게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을 그대로 해석하자면, 3년 뒤인 2013학년도 대학 입시에서는 현행과 완전히 다르게 입학사정관제를 전국 대학에서 전면 시행하겠다는 것.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가장 예민한 문제인 대입 전형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시기까지 못박으며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러자 교육과학기술부 이주호 제1차관이 진화에 나섰다. 이 차관은 연설이 끝난 뒤 곧바로 기자들에게 "입학사정관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며 "모든 수험생이 입학사정관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인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당장 보수·진보 언론을 가릴 것 없이 우려가 터져나왔다. 28일 <조선일보>는 기사 제목에서 "너무 나간 이(李) 대통령"이라며 꾸짖었고, <동아일보>는 '미션 임파서블', '부적절' 등의 표현을 써가며 "교육계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올해 들어 교육 당국은 입학사정관제 확대를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2010학년도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을 통해 선발하는 인원은 4년제 대학 전체 정원의 6% 정도로 획기적으로 늘었다.

이를 3년 안에 100%로 늘리겠다는 이 대통령의 말은 <동아일보>의 표현대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럼, 이 대통령의 발언의 진위는 무엇일까?

보수 단체의 호소 "그저 100년이 갈 수 있는 교육 정책 만들어 달라"

28일 보수 교육단체 '학교를사랑하는학부모모임'에서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해찬 교육부총리가 한 과목만 잘해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과연 한 과목 잘해서 우리 아이들이 대학에 갔는가"라며 "학생, 학부모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장관이 바뀔 때마다 개혁이라는 교육 정책에 이미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다"고 밝혔다.

학사모는 "하지만 대통령 한 사람, 장밋빛 말 한 마디에 대학 입시가 바뀌는 것은 학생, 학부모에게 혼란과 고통을 줄 가능성이 크다"며 "우리 학부모들은 그저 임기 내에 무리하게 추진 하실 생각 마시고 5년, 10년, 그리고 100년이 갈 수 있는 교육 정책을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학사모는 평소 일제고사(학업 성취도 평가) 실시를 적극 지지하고 시국 선언을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엄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단체다. 실망감과 혼란이 고스란히 담긴 성명서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준다.

일명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던 김대중 정부의 교육 정책의 목표는 암기식 입시 교육에서 벗어나 청소년의 창의성을 살리고 입시 경쟁을 완화시켜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은 의도'였다고 해도 성급한 정책 추진은 역풍을 불렀다.

당시 보수 언론은 교육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될 것이라며 이해찬 장관을 맹비난했다. 사실 그 언론의 비판은 적중했다. 살인적인 대입 경쟁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수능, 논술, 내신이라는 대입 전형은 '지옥의 트라이앵글'로 불렸다. 대학에서 세 전형을 다 다루니, 학생들은 하나만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세 전형에 모두 대비해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점수 위주의 입시에서 벗어나 수험생의 다양한 자질을 검토해 선발하겠다는 입학사정관제의 취지는 거의 모든 교육 관계자들이 공감한다. 그러나 정부가 주도하면서 성급히 밀어붙이는 입학사정관제이 부작용만 낳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실제로 포털사이트에서 '입학사정관'을 검색해보면 정부의 '이상적인 목표'와는 달리 컨설팅을 자처하는 사교육기관 홈페이지 링크만 쏟아져나오는 상황이다.

앞뒤가 안 맞기도 하다. '대학 자율화'를 내걸고 당선된 정부가 입학사정관제 전면 도입을 강요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에 대학들은 언짢다는 기색이다. 정부가 현재 입학사정관제를 지원금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점도 '자율화'라는 본래 교육 정책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교육비 줄여 친서민 정부 되겠다면 '현실'을 외면하지 마라

이같은 불만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서민을 위한 정책을 펴겠다고 자처하는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를 줄인답시고 입학사정관제를 대폭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초·중·고 학생들은 지난해부터 부활한 일제고사, 학교 자율화 등으로 늘어난 사교육에 찌들고 있다.

여기다 대학마저 내켜하지 않는 입학사정관제를 대통령이 2013학년도까지 100% 도입하겠다며 직접 나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 교육문제의 핵심은 어떤 대입 제도를 도입해도 남아 있는, 불안정한 생존 경쟁 속에서 더 강화하는 대학의 서열 구조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무리 수능의 비중을 줄여도 입시 경쟁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정말 모르나. 논술과 내신을 도입하면 그것에 맞춘 사교육 시장이 늘어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 컨설팅 학원이 판을 치는 이유를 이 대통령은 정말 모르는가.

정말 친서민 행보를 걷고 싶고, 교육 개혁으로 서민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해주고 싶다면 명심해야 한다. 우선 대입 경쟁의 근본이 되는 '학벌 사회'에 손을 대야 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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