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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판사더러 수강료 계산해 달라고 했나?"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정부 학원정책, 손발이 따로 논다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절감을 강조하며 학원규제에 강공을 걸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 주장한 학원 정책(영업시간 단축, 학원비 상한제, 학파라치)도 그중 하나이다. 시장의 논리가 중요해도 전체와 합일하는 속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학원 24시간 개방을 주장하던 한나라당도 조용하다. 간만에 국민적 합의를 이루었다.

지난 금요일,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열린 학원 정책 간담회에서 오고간 내용을 들으니 청와대, 국세청, 교과부, 행정안전부 등이 학원 규제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에 대략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여전히 시장 논리를 앞세우며 모처럼 국민과 정부간의 합의인 학원비 상한제에 학원 편을 들어줌으로써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학원 임대료와 강사 수고비가 대부분인 학원 수업에는 달랑 교재 위주로 강사 설명을 듣는 초등학생 대상 학원 수업이 시간당 2만 원이라 해도 시장원리에 맞으면 상관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법부가 일반인의 법 감정뿐 아니라 정부 정책도 무시한 것이다. 학원 규제 정책에 사법부 따로, 행정부 따로인 것이다.

그동안 교육 당국은 학원 수강료 상한선을 정하고 이를 어기면 영업정지 등 행정규제를 할 수 있게 한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학원법)을 시행해왔다. 강남교육청의 경우 2007년 학원법에 설치 근거가 있는 수강료조정위원회를 열고 강남 지역 246개 학원의 수강료 인상 수준을 물가 상승률과 같은 4.9%로 제한했다. 강남교육청이 제시한 근거가 다소 주먹구구식이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큰 학원들은 그런대로 이를 준수해왔다. 큰 학원들이 이를 준수함으로써 보습학원 수강료도 이럭저럭 균형을 잡아왔다.
▲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열린 학원 정책 간담회에서 오고간 내용을 들으니 청와대, 국세청, 교과부, 행정안전부 등이 학원 규제를 통한 사교육비 절감에 대략 합의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법부는 여전히 시장 논리를 앞세우며 모처럼 국민과 정부간의 합의인 학원비 상한제에 학원 편을 들어줌으로써 찬물을 끼얹고 있다." 정부의 학원 규제에 항의하며 삭발을 하는 보습학원 관계자들. ⓒ뉴시스

지난 1월 강남교육청은 초등학생은 주 4시간에 35만 원, 중학생은 주 4시간20분에 38만 원의 수강료를 받은 대치동 L학원에 대해 14일간의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한 클래스가 10명 안팎으로 이뤄지는 강남 일대 보습학원들은 주 4시간에 월 40만 원은 기본으로 받는다. 시간당 2만 원인것이다. 대략 강남 중학생들이 영어, 수학 두과목을 들으니 기본적으로 월 80만 원 정도는 사교육비를 지출해야 한다. 자녀가 둘인 집들이 많으니 한 아이당 2과목씩 80만 원, 두 아이에 월 150만 원 지출은 기본이고 고등학생들은 그 두 배 이상 돈이 들어간다. 개인 과외도 대략 그 수준이다. 학부모들은 지금도 충분히 고통스럽다. 그래서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내수가 안돌아간다, 백화점에서 쓸 돈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불복한 학원은 소송을 걸었고 7월 26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장상균 부장판사)는 L영어학원이 서울 강남교육청을 상대로 낸 영업정치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냈다. 강남교육청이 초등학생 학원수강에 시간당 2만 원을 받은 학원을 영업 정지시켰는데 법원은 '비싸도 학부모들이 원하면 결론적으로 상관없다'며 학원 손을 들어준 것이다. 초등학생 학원 수업 1시간에 2만 원, 고등학생은 2만여 원에 대해 법원이 상관없다는 것은 뜻밖이다. 참고로 대학, 대학원 강의는 시간당 3만여 원이고, 출장 영어회화가 시간당 3만 원인 현실이다. 대학은 너른 캠퍼스와 도서관 등 대학이 운영되기 위해 여러 시설이 따라야하므로 고비용일 수밖에 없고 미국인 회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 교육 현실상 사교육은 공교육이 만족도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소비자인 국민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공교육 못지않은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데 합리적 기준 없이 획일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명령을 내리는 것은 헌법의 기본 원리에 배치된다", 또 "학원 종류, 시설 및 교육 수준, 임대료 등이 수강료에 영향을 주는데 개별 요소를 개량화해 합리적인 수강료 산출 방식을 도출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만큼 서비스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작동하는 수요·공급 원칙이라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결정되도록 함이 옳다"고 판단했다.

누가 판사더러 수강료 계산해 달라고 했나? 학원간 과열 경쟁을 막고 공정한 거래를 위해 적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 일부에서 원해도 사회 전체발전에 심각한 해를 주면 규제해야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이고 시장 경제와 규제 철폐를 외치지만 때로 공정거래를 위해 가격 상한제를 택한다. MB물가지수도 그중 하나이고 대표적인 것이 쌀값, 교통요금 등이다. 영업활동의 자유가 중요해도 사회적 피해가 극심하면 이를 규제한다. 다단계, 고액 사채금리들이 그것이다. 요즘 모의수능시험지 학원유출로 홍역을 앓고 있다. 김포외고 사태처럼 족집게 학원은 진짜 족집게가 아니라 문제지를 빼돌려 편법 족집게가 된 것인데, 앞으로는 편법 족집게도 시장이 원하니 상관없는가? 족집게 과외 1000만 원 짜리도 시장에서 수요 공급원칙에 따라 괜찮다는 말인가? 연세대는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으니 학비를 왕창 올려도 상관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학원업자들의 시장의 자유만 인정하는 우리나라 재판부는 논리의 일관성도 없다. 시장의 자유가 중요하면 개인의 자유, 표현의 자유도 중요하므로 미네르바를 잡아넣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교육 정책이라는 것이 진공 상태에서 시행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맥락이라는 것이 있는데 법원은 이를 무시했다. 사교육비의 고통과 세상물정, 학원의 횡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국민학습권 보장에 공교육 못지않은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데 도대체 어떤 구실을 한다는 말인가? 문제풀이 교육, 입시 교육을 해서 명문대 가는데 도움을 준다는 말이 맞는 말 아닌가? 대학 입학에 사교육 변수가 날로 커지고 교육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는 상황을 몰라서 그런건지 알고도 그런건지? 학원비 상한제가 무력화되면 당연히 학원비는 들썩거릴 것이고 정부는 고액 사교육 단속 근거를 잃게 된다.

그동안 대부분 교육 사안이 법원에만 가면 뒤집어졌는데 이번 건도 예외가 아니다. 기득권 중 기득권이란 법원은 국민 법감정과는 판이한 판결로 국민을 혼란케 하고 있다. 요즘 사법고시 합격자는 앞뒤 좌우 볼 필요없이 사시에만 올인한 서울강남지역, 상위 5%, 특목고출신, 고액 과외 출신들이 사법시험을 장악한다니 결국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와는 달리 그 수준과 그 풍토에서 나올만한 판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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