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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이야기

[신기주 칼럼] 전쟁을 하거나, 초식남이 되거나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존 코츠 교수는 주식 중개인들의 남성 호르몬 수치를 조사했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남성 주식 중개인이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를 남자로 만든다. 일단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면 꼬맹이 해리 포터조차 어둠의 마법을 마구 사용하며 분노에 몸을 떠는 얼치기 고딩이 된다. 존 코츠 교수는 남성 호르몬이야말로 금융 위기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주식 중개인들이 공격적인 파생상품 투자를 계속했던 건 남자들의 본능적인 공격성 탓이었단 설명이었다. 일단 주식 시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하면 테스토스테론이 과다 분비되기 시작한다. 뻔한 위험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스스로를 벼랑 끝에 몰아세운다. 금융 위기는 호르몬적 위기였단 얘기다.

흔히 남성적이라고 정의돼온 가치들이 있다. 경쟁, 승리, 공격, 투쟁, 성취, 쟁취, 쟁투, 모험, 파괴, 혁명, 살인, 싸움, 과시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존 코츠식으로 얘기하자면 이런 것들은 남성적인 게 아니다. 테스토스테론적이다. 바꿔 말하자면 남자라고 해서 당연히 남자다운 건 아니다. 자기 안의 테스토스테론에 얼마나 순종적이냐에 따라 공격적일 수도 있고 유화적일 수도 있다. 사회는 남자한텐 남자답고 여자는 여자다우라고 가르친다. 남자애들한텐 총과 로봇을 쥐어주고 여자애들한텐 인형을 쥐어준다. 어떤 남자애는 바느질을 좋아할 수도 있고 어떤 여자애는 칼싸움을 즐길 수도 있는데도 말이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해야 하고 남자는 가족을 건사해야 한다고 배운다. 인간은 호르몬의 지배를 받지만 동시에 사회의 통제 아래 있다.

▲ <결혼 못하는 남자>의 초식남, 조재희(지진희 扮). (사진제공_KBS)

<결혼 못 하는 남자>엔 호르몬의 지배를 거부하고 사회적 통제에서도 벗어난 듯한 한 남자가 나온다. 그는 연애에는 관심이 없다. 엮이는 게 싫다. 자기 일이 있고 인정 받는다. 경제력도 있다. 취향도 확실하다. 클래식을 즐기며 요리에 재주가 있다. 남들을 인식하지도 않지만 남들한테 인정 받으려고 발악하지도 않는다. 일본의 여자 칼럼리스트 후사카와 마키는 이런 남자를 두고 초식남이라고 했다.

사회에서 남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건 피곤한 일이다. 공격한다고 늘 이기는 게 아니다. 대쉬한다고 언제나 여자가 넘어오는 게 아니다. 존 코츠 교수는 테스토스테론에 중독된 남자가 패배를 맞보면 뇌에서 코르티솔을 분비된다고 했다. 코르티솔은 열패감을 느끼게 만든다. 주식 투자에서든 연애에서든 패배는 쓰다. 모든 남자는 호르몬과 사회적 통념에 떠밀려서 전쟁터로 뛰어드는 신병과 같다. 사회라는 전장에서 어떤 남자는 병장이 되겠지만 어떤 남자는 불구가 된다. 남성성에 상처를 주는 지뢰는 널려있다. 자기 안의 남성성에 대한 강박,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억압, 경쟁적인 여성, 점점 섬세하고 세련된 여성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사회적 분위기, 남성적인 것들을 무식하다고 인식하는 여자들, 이런 것들이 남자들을 사회적으로 거세한다. 존 웨인은 죽었다. 현대 사회에서 남자들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초식남이 되거나. 남자로 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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