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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페이스

[신기주 칼럼]<32>그는 투페이스였다. 나는 강철중을 상상한다.

배우 강신일이 <공공의 적2>에서 연기한 검사 김신일은 딱 봐도 궁색맞은 청백리다. 아내와 아이들은 어디 갔는지도 모른다. 혼자 원룸에서 난닝구 바람에 라면이나 끓여 먹고 앉아 있다. 그러다 느물대는 후배 검사 강철중한테 알토란 라면마저 빼앗긴다. 하지만 검찰에 출근해선 서슬이 시퍼렇다. 여당의 부총재까지 연루된 정치 스캔들을 파헤치겠다는 후배 검사의 겁 없는 수사를 물심양면 도와준다. 덕분에 대한민국 검찰은 일개 검사의 선의에 검찰의 명운을 건다.

처음엔 <다크 나이트>의 하비 던트 검사한테도 강철중의 선의가 있었다. 법은 선하고 선한 건 옳다. 그게 배트맨조차 부러워한 검사 하비 던트의 공명정대한 세계다. 스스로 선의 편에 선 그는 배트맨처럼 내파할 까닭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의 발목을 잡는 건 악이 아니다. 범죄자한테 돈을 먹은 동료 검사들과 경찰들이다. 선의 탈을 쓴 악이다. 악인지 선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행위들이다. 하비 던트는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채 타락한다. 그게 법의 한계다. 애초에 법은 선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매사를 법적인 정의로만 구분하는 검사는 세상을 구원할 수 없다. 하비 던트는 미친 투페이스로 변해 버린다.

▲ <다크나이트>의 하비덴트(애런 에커트)와 <공공의적 2>의 강철중(설경구).

법의 도구로서 모든 검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모든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언제나 정의로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살면서 항상 선이거나 정의일 수 있는 존재도 없다. 검사는 그래야 한다.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법의 이름으로 타인에게 선악과 정의를 강요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선악인지 확신하지 못하는데도 말이다.

<공공의 적2>의 강철중이나 김신일은 낭만 검사들이다. 소신을 세울 수 있고 정의를 추구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원래 <공공의 적> 시리즈는 아주 아주 나쁜 놈을 공공의 적으로 내세운다. 덕분에 주인공도 관객도 윤리적 고뇌에 빠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다크 나이트>에 더 가깝다. 법은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갈수도 있고 어느 재벌의 거대한 탈법 행위를 눈 감아줄 수도 있다. 법은 강자한텐 약하고 약자한텐 강하며 이기적이고 자기 방어적이다. 검사동일체 안에서 검사 개인의 양심이나 사회적 선의를 논하는 건 사치다. 차라리 하비 던트의 선택이 나을 수도 있다. 동전을 던지는 거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낙마했다. 드러난 재산이나 인맥 관계나 지휘했던 수사 결과만 보면 후보자는 투페이스에 가까운 검사다. 옳고 그름이나 정의보단 그 때 그 때의 정세적 판단에 따랐다. 그는 지난해 용산 참사 수사를 지휘했었다. 새로운 후보자들이 거론되고 있다. 문성우 전 대검차장처럼 1993년 형 소나타를 모든 검사도 있다. 신상규 전 광주고검장처럼 명절에 들어온 선물은 집 밖으로 내던졌다는 검사도 있다. 청렴하다고 정의로운 건 아니다. 하지만 원룸에서 라면을 나눠 먹던 김신일 검사와 강철중 검사가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 검찰에게 낭만을 기대하는 건 사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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