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정부는 부작용을 줄이겠다며 금융규제 칼날을 빼들 기세다.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가 규제를 다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재건축 열풍을 잠재우고, 근본적으로는 건설에 의존하는 경기부양 흐름을 끊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강남권 아파트, 2006년 가격 넘어서
강남지역 부동산가격 상승 속도는 무서운 수준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용면적 77㎡는 지난달 말 9억3000만 원에 거래됐다.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이번 달 들어서는 9억 원 후반대에도 매매가 이뤄지고 있다. 1분기 말에는 8억 중후반대에서 거래됐다. 불과 4개월(3~7월) 사이에 1억 원이 오른 셈이다.
도곡동 삼성래미안 전용면적 123㎡도 한분기 만에 1억 여원이 올라 지난달 말에는 15억 중순대에 거래됐다. 개포동 주공1단지 전용면적 50㎡ 역시 석달 만에 2억 원이 올라 최근에는 매매가가 11억 원대에 이르렀다. 이 아파트는 부동산 투기열풍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2006년 말에도 10억 원을 넘지 않았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 재건축 77㎡ 역시 최고 13억 원에 거래되며 2006년 말 기록을 넘어섰다.
▲주요 아파트 가격 오름세. 특히 재건축 예정지로 꼽히는 주공아파트 가격 오름세가 가파르다. ⓒ프레시안 |
일단 오랜 기간 숨죽이고 있던 자산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판교신도시에 들어설 고층상가 스타식스 게이트와 로데오는 잇따라 개인투자자에게 통째 매각됐다. 당시만 해도 유동자금이 아직 부동산 시장에 본격 유입되기 전이라 이는 극히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규제 완화로 자산가들 기지개
강남권 아파트 시장에도 다시 자산가들이 손을 벌리기 시작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경기침체로 자산이 '반토막' 났다면서도 여전히 수백억 원의 재산을 보유한 한 강남 거주 자산가는 "이제 '서서히 움직일 때가 됐다'는 게 진짜 부자들의 분위기"라고 전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비강남권 사람들도 부동산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송파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들어 강북 사람들이 매수세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로 6억 원~10억 원대 중고가형 아파트를 집중 매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올 초부터 이달 16일까지 서울지역 6억 원 이상 아파트는 5.07% 올랐다.
반면 6억 원 미만 아파트의 상승률은 2.52%였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삼성 아이파크 등 30억 원이 넘는 최고가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 들어 오히려 연초보다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매매 가능성이 높고, 전세 수요가 집중되는 아파트에 돈이 몰린 것이다. 아파트시장 유입액을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꾸준히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21일 재건축규제 완화 방침과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결정했다. 이후 재건축 후분양제 폐지, 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완화, 상속세·증여세 인하, 그린벨트 해제(이상 9월), 양도세 추가 완화·일부 투기지역 해제조치(11월) 등 다양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했다.
일련의 조치들은 한은의 저금리(2.0%) 기조 유지, 800조 원이 넘어선 단기 유동자금(4월말)과 맞물려 부동산시장을 다시 띄우는 기폭제가 됐다.
▲김종창 금감원장은 지난 15일 여의도 금감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중소기업 대응책 등과 함께 부동산 시장 규제 강화 방침을 밝혔다. ⓒ연합뉴스 |
정부 '규제 강화'로 선회?
정부가 대대적 규제 완화에 나섰던 표면적 이유는 경기하강 방어였다. 지난해 세계적 금융위기로 나라 전체가 흔들리면서 부동산 시장 침체-건설경기 침체-기업 도산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정부는 이와 같은 조치들을 내놨다.
최근 경기가 안정되는 와중에 부동산 시장이 다시 폭등할 조짐을 보이자 정부는 규제강화책을 들고 나왔다. 핵심은 LTV 규제강화다. 금융정책으로 부동산 시장 폭등을 막겠다는 심산이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5일 기자간담회에서 집값 상승이 앞으로도 계속될 경우 주택담보대출 담보인정비율(LTV)은 물론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대출 규모를 줄여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돈의 규모를 줄이겠다는 뜻이다. 이미 금감원은 지난 7일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의 LTV를 기존 60%에서 50%로 강화한 바 있다.
LTV는 대출 기준이 되는 담보물의 평가액 기준을 조정하는 장치다. 예를 들어 시가 1억 원짜리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 사람은 최근 강화된 기준에 따라 최대 5000만 원을 빌릴 수 있다. 과거 아파트 투자자들 상당수가 아파트를 담보로 잡아 대출을 받은 후 또 다른 아파트를 구입, 전세자금을 활용해 다시 투자에 나서는 행태를 보여왔다.
DTI는 대출고객의 미래소득 규모에 따라 대출한도를 조절하는 제도다. 대출한도를 DTI 40%로 제한했을 경우, 연소득이 1억 원인 사람은 최대 4000만 원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이영호 닥터아파트 팀장은 "일단 투자심리에 경고등을 켤 수 있다"며 "휴가철이 끝나는 8월 중순 이후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대응은 '헛물 켜기'"
하지만 시장 관계자가 아닌 사람의 말은 다르다. 금융 규제만으로는 부동산 시장을 잠재우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는 "미국과 같은 나라는 모기지 제도가 발달해 자기 돈 20% 만으로 집을 구입하니 금융규제가 먹히지만 한국은 (재건축을 제외하면) 주택구입자금의 절반이 전세금이다. LTV를 40%까지 강화하더라도 주택 구입 수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부동산 가격 앙등의 진원지는 결국 재건축"이라며 "재건축에 손을 대지 않으면 부동산 폭등을 막기 어렵다"고 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는 "LTV, DTI는 이미 강남에 40%로 제한된 상태다. 금감원이 내놓은 대책은 강남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며 "이미 각종 규제를 다 풀어놓은 상태라 지금 정부 대책으로는 강남 부동산 폭등을 잡을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변 교수는 "일단은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 높이 제한 해제가 다른 재건축 아파트에도 옮아갈 것이라는 기대심리라도 차단해야 한다"며 "금융 규제, 전세 세금매기기 등 국지적 대책말고 정말 실효성 있는 대안을 근본적으로 제시해야 한다"라고 했다.
감독당국은 과연 의지가 있었나 LTV, DTI 등 금융규제가 효과를 내기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전제가 감독당국의 의지이다. 감독당국이 적극적인 감독에 나서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력한 규제도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참여정부 당시 3.30 조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05년 8월 참여정부는 강남 등 버블세븐 지역에서 폭등하기 시작한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에서 6억 원 초과로 낮췄다. 당시 주요 언론은 '세금 폭탄'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정부의 이와 같은 의지는 지난 2006년 3월, 이른바 '3.30조치'라는 부동산 대책에서 구체화됐다. 주택투기지역 내 시가 6억 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에게 DTI를 적용해 대출 가능 액수를 대폭 낮춘 게 핵심이다. 반발이 엄청났다. 김수현 세종대 교수는 "당시 보수언론은 물론 진보언론까지도 '서민은 집을 사지 말라는 거냐'는 지적을 했다. 여론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론 부담이 커진 때문인지, 실제 감독은 한 동안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15일 한국경제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3.30조치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다들 알다시피 그해 연말까지 계속 올랐다. 금융감독원(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당시 원장)이 창구지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실제 청와대에서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 직접 사유에 대한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었다"고 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3월 청와대에 관련 보고서 정보공개청구에 나섰으나 확인받지 못했다. 청와대의 직접 문책으로 관련 규제는 연말이 돼서야 시장에 제대로 적용됐다. 이에 대해 김수현 교수는 "여론 부담이 워낙 커서 당시 감독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웠던 듯하다"며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다. 관료들의 규제 의지가 필요하고, 규제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