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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타결…"오직 재벌을 위한 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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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타결…"오직 재벌을 위한 협상"

미래 최혜국 대우 등 독소조항…부품소재산업ㆍ농업 등 '직격탄'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한-EU FTA) 체결을 위한 협상이 타결됐다. 유럽을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13일 EU의장인 프레드리크 라인펠트 스웨덴 총리와 정상회담을 마친 뒤 한-EU FTA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협정문 전문을 비롯한 자세한 협상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협정문에 대한 법률 검토를 곧바로 진행할 예정이며, 오는 9월 가서명 이후 협정문을 공개할 방침이다.

하지만, 한-미 FTA 협상 당시 논란이 됐던 독소조항이 그대로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미래 최혜국 대우, 광우병 위험 쇠고기 관련 조항, 금융세이프가드 기간 단축 등이 대표적이다.

또, 산업별로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엇갈리는 사안인 FTA 협상이 충분한 검토와 여론 수렴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벌 등 특정 경제주체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 농민과 중소제조업 종사자에게는 큰 피해가 예상되는 일을 민주적 토론과 합의 없이 추진한다는 비판이다.

미래 최혜국 대우…"개방 수위는 높아지기만 할 뿐"

협상 타결 소식을 전해진 뒤, 가장 흔히 듣는 말이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였다. 이보다 앞서 추진됐던 한-미 FTA가 기준으로 작용한 탓에 한-미 FTA에 담긴 독소조항이 그대로 살아났다는 지적이다. 협상 과정에서 미국에 대한 개방 수위보다 더 높은 수준의 개방을 요구받은 것도 같은 이유다.

전문가들이 흔히 지적하는 독소조항 가운데 하나가 미래 최혜국 대우다. 양 측이 다른 국가와 추가로 FTA를 체결해 더 많은 개방을 약속하면 자동적으로 협상 상대방에도 적용되도록 한 조항을 뜻한다.

한-미 FTA 협상에 이어 한-EU FTA 협상에서도 미래 최혜국 대우를 인정함에 따라, 한국의 개방 수위는 계속 높아지기만 하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정부가 추가적인 FTA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방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미국, 유럽 등에 대한 개방 수위도 자동적으로 높아진다는 이야기다.

정부 관계자는 EU 측이 "한-미 FTA에서 미국이 얻어낸 수준은 기본으로 열고 추가 논의를 하자"는 이른바 '코러스 패리티(KORUS Parity)'를 강력하게 요구했기 때문에 한-미 FTA보다 개방 수준을 낮출 수 없었다고 해명 했다.

그런데 이번 FTA 협상에서는 한-미 FTA에서 추가로 개방된 부분이 있다. 이른바 '코러스(KORUS) + 3'이다. 환경, 위성통신, 법률시장 등 3개 분야에서 개방 확대를 약속했다. 한-미FTA 비준이 한-EU FTA 비준보다 먼저 이뤄질 경우, 미국에 대해서도 이들 분야를 개방해야 한다.

광우병 위험 영국산 쇠고기 수입 가능성…금융 불안시 정부 대응 기간도 단축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가능성도 논란거리다. 협정문에는 "한 국가 상대편 국가에 부가적인 수입 요건을 요구할 때 세계동물보건기구(OIE)와 국제식물보호조약(IPPC)의 지침과 기준에 맞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IE 규정을 따른다는 내용이 광우병이 대거 발생한 영국산 쇠고기 수입 허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OIE는 광우병이 발생한 나라에 대해서도 '광우병 위험 통제국' 지위를 받았으면 뼈를 제거한 살코기는 월령 제한 없이 교역할 수 있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세이프 가드 기간을 6개월로 줄인 대목도 우려를 사고 있다. 자본 이동에 따른 금융 불안에 대해 정부가 보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하는 금융 세이프 가드 기간은 한-미 FTA 협상에서 1년으로 설정돼 있었다. 그런데 이번 협상에서는 6개월로 줄었다. 이에 대해 외환위기처럼 긴급한 상황이 생기면 정부가 손을 쓰기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뭐 먹고 살아야 하나"…부품 · 소재 산업에 타격

이런 독소조항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이날 협상 타결 소식을 접한 직후, 정태인 성공회대 교수는 "(한국이) 앞으로 뭐 먹고 살려고"라며 말문을 열었다. 부품 수입 관세가 사라지면, 국내 중소제조업체는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어진 그의 설명이다. "정밀기계, 정밀화학 산업은 제조업의 허리다. 하지만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이들 산업 부문이 계속 위축돼 왔다. 여기에 한-미 FTA와 한-EU FTA가 겹치면, 제조업의 기반인 부품·소재 산업은 사실상 무너지는 셈이다. 반면 부품을 사서 조립하여 판매하는 대기업들에게는 유리하다."

정밀기계, 정밀화학 산업 등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꼽힌다. 독일, 스위스 등이 높은 인건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이들 분야에 기술집약적인 중소기업이 대거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건비 상승, 제품 유행 변화 등에 민감한 완성품 산업과 달리 정밀기계 등 고부가가치 부품 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게 특징이다.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으로 넘어 왔지만, 반도체 제조 장비 산업의 주도권은 큰 변화를 겪지 않은 게 대표적인 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완성품 업체들에게 지나치게 치우친 경제운용이 위험한 이유다.

"미국은 의약품 특허권 완화하는데…"

특허와 지식재산권 문제도 위험하다. 이들 권리가 대폭 강화되는 내용이 담긴 협정문이 비준·발효되면 복제의약품 가격이 폭등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태인 교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의약품 관련 특허권을 완화하는 공약을 내세웠다. 보건의료 개혁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잇따른 FTA 추진을 통해 의약품 관련 특허를 강화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농민과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피해 떠넘길 권리, 누가 부여했나"

공공 서비스 위축, 계층 간 양극화 심화, 부품·소재 산업 위기, 의료비 폭등, 대기업·중소기업 격차 확대 등 한-EU FTA가 낳을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지 않는 보수 언론도 빠뜨리지 않는 내용이 있다. 바로 농축산 분야가 입게 될 타격이다.

한-EU FTA를 긍정적으로 보도한 <조선일보>는 13일 "유럽 지역의 농산물이 수입되면 내년 우리나라 농업생산액은 당초 예상치(32조8000억원)보다 1000억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서진교 박사의 말을 빌어 "축산·낙농 제품 수입이 크게 늘면서 우리 축산 농가의 생산량은 2020년 약 2300억원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농민들이 큰 피해를 입게됐다는 전망에는 보수, 진보의 구분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 정부가 농민들에게 이렇게 피해를 입힐 권리가 있을까. 한-미 FTA 협정문을 분석했던 송기호 변호사가 지적한 대목이 이 부분이었다. 송 변호사는 이날 "통상 민주주의가 계속 후퇴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도 인정하다시피 FTA는 산업 질서를 근본적으로 흔든다. 이 과정에서 어떤 경제 주체는 이익을, 다른 어떤 경제 주체는 손해를 입는다. 그리고 재벌 등 경제적 강자가 이익을 누리는 측에 가깝다. 반면, 농민 등 상대적 약자가 손해를 입는 쪽에 가깝다. 이런 결정이 왜 공개적인 토론과 합의 없이 이뤄지느냐는 게 송 변호사의 지적이다. 송 변호사는 오는 14일 민변과 함께 한-EU FTA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통상 민주주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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