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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짜리 '방폐장 갈등'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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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짜리 '방폐장 갈등'의 교훈

[박동천의 집중탐구]<63>절차에 의한 해결

제6부 절차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자유주의
제2장 절차에 의한 해결


축구경기에서 90분간 겨루고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는가? 무승부로 남겨둬도 괜찮으면 무승부라고 한다. 승부를 기어이 내야 하는 경우에는 연장전을 하기도 하고, 재경기를 할 때도 있고, 승부차기에 맡기기도 하며, 제비를 뽑기도 한다. "진정한" 실력을 가리기를 고집하는 사람의 눈에는 제비뽑기보다는 승부차기, 승부차기보다는 연장전, 연장전 보다는 재경기가 축구시합이라는 사안의 본령에 충실하다고 볼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진정한 본질"을 따지기로 한다면, 한번의 시합으로 어떻게 판가름이 나겠느냐며 질 때마다 다시 한번 붙자고 대들 수 있는 빌미가 생긴다. "진정한 실력"이라는 발상은 항상 자체 내에 무한논쟁의 여지를 함축하기 때문에 논쟁의 종결을 위해서는 규칙이 필요하게 된다. 축구시합에서 무승부가 났을 때 승부를 결정하는 규칙은 축구시합의 규칙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논쟁을 종결하기 위한 규칙이다. 논쟁을 종결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보면 제비뽑기도 재경기와 마찬가지로 사안의 본령에 충실한 방식이다.

정치사회가 어떤 행로를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일은 대개 매우 다양한 요인들이 중층적으로 서로 얽혀있는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작업이다. 이 와중에 무엇이 옳은 일인지, 무엇이 공동체 전체에게 이익인지, "공동체 전체"라는 관념이 어떤 의미인지, 권력이 개인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다른 사람의 불행에 대해 이웃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기타 등등,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의미심장한 질문들이 무수히 파생할 수 있다. 이 모든 질문들을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도록 해소해야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면, 공동체 차원에서 어떤 결정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대안들 중 어떤 것이 옳거나 나은지를 떠나 논쟁의 종결을 위한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 앞에서(제3부 제1장) 나는 제일층위의 논쟁이 교착상태에서 더 이상 출구를 찾지 못할 때, 그런 상황 자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제이층위의 합리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논쟁의 종결을 위한 규칙, 또는 제이층위의 합리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지를 한번 상상해보자. 물론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축구경기 90분이 무승부로 끝났을 때 주최 측이 상의해서 승자를 판정할 수도 있고, 재경기든 제비뽑기든 결정을 위한 규칙을 그 자리에서 정할 수도 있다. 이랬을 때 쌍방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단, 한 쪽이 그런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이의를 제기한다면, 그리고 그 이후 어느 쪽도 양보하지 않는다면 결국 주먹다짐으로 결판이 날 것이다. 축구경기뿐만 아니라 정치적 논쟁이나 과학적 논쟁에서도 주먹다짐, 국가기구와 같은 조직된 패거리의 권력, 무지한 군중의 무력이 결국 열쇠를 쥐게 될 것이다.

자연계의 질서가 그렇듯이, 인간 사회도 기어이 말을 해야 한다면 결국은 힘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말해야 맞을 것이다. 힘보다는 옳음이 주도해야 마땅한 과학적 논쟁에서도 "옳음"이란 그 자체로 힘을 가지는 것이 아니고, 충분히 많은 다수에게 그것이 옳다고 알려진 다음에만 세상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갈릴레오나 아인슈타인, 기타 수많은 사례에서 이 점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논쟁의 종결을 위한 규칙이라고 하든 제이층위의 합리성이라고 하든 결국 주어진 시점에서 상황을 주도하는 측은 힘을 가진 쪽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때 힘이라는 것이 결코 단순한 사항이 아니다.

주먹이나 완력도 힘이지만 다수도 힘이고, 총칼이나 무기도 힘이며 조직력도 힘이다. 또 의지력이나 용기나 신념도 힘이고, 소원이나 가치 또는 희망도 힘이며, 때로는 진실이나 아름다움 그 자체가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진실이나 아름다움은 힘을 발휘하기 위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사회를 주도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진실과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사이에 진실이나 아름다움을 시기하거나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발호할 수 있는 여지가 항상 존재한다. 문명사회가 야만사회와 다른 차이란 이런 여지를 가능한 한 방지해서, 진실의 싹이 자라나 사람들의 눈을 밝게 틔워주고 나아가 세상을 주도할 수 있도록 온전한 기회를 허용하는 데에 있다.

그런데 진실이란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태의 진전에 따라서 발견되거나 않거나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어반복에 해당하는 논리적인 명제들을 제외하면, 어떤 명제도 확실한 진리라고 최종적인 판정을 받을 수는 없다. 특히나 정치세계에서 정책과 노선을 선택하는 일이란 결과를 보면서 잘잘못을 가릴 수밖에 없고, 그런 평가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수정이 이뤄져야만 하는 일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정책을 선택하는 과정도 정답을 찾은 다음에 그 정답을 집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가 있게 된다. 즉, 주어진 정책을 입안해서 선택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렇게 채택된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다시 수정하는 과정들을 다 합쳐서, 한 사회가 어떤 길을 어떻게 가고자 하는지를 찾기 위한 탐색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인생에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어떤 대학교에 가서 무엇을 전공할까, 어떤 직장에 들어가 어떤 일을 할까, 누구와 결혼할까, 등등, 중요한 인생의 기로에서 일정한 선택을 내린 다음 그때 선택한 길을 그냥 따라만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보기보다는, 한번의 선택으로써 물론 다른 많은 가능성들이 차단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선택된 길 안에 다시 무수한 선택지가 열린다고 보는 것이 사실과 훨씬 더 잘 부합한다. 즉,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는 살아보기 전에 전략적 선택을 통해 계획을 세운 다음 그대로 집행하는 일이 아니라,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매 순간의 선택들이 모여서 그 사람의 인생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은 곧 먼저 설정한 다음 일로매진하며 추구하는 사항이라기보다는 "목표"라는 상징을 찾아가면서 그리는 궤적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두 개의 시각은 충돌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똑같은 일을 서술하는 두 가지 방식, 다시 말하면 똑 같은 일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일 뿐이다.

하지만 관점의 차이라는 것이 단순히 "제 눈에 안경" 정도의 취향 문제로 끝나지만은 않는다. 인생을 목표수립-집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한번의 선택을 혹시나 잘못하게 될까봐 조바심과 안달이 나서, 오히려 판단력을 그르칠 수가 있다. 예컨대 대학입시로 인생이 결판난다는 조바심 때문에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입시라는 목표에 삶을 조준한 결과,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자기가 뭘 원하는지를 몰라서 방황하는 이 나라의 수많은 젊은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좋은 반면교사다. 반면에 언제 어디에 처하게 되든지 그때 가서 많은 선택지들이 있으리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바라보면, 유소년기에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직접 선택하면서 경험하도록 인도함으로써 대학에 가서 공부할 분야에 관한 내면적인 동기를 축적할 수가 있다. 당연히 대학 수준의 공부에서 성취는 당연히 내면적인 동기를 가진 학생만이 이룩할 수가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한번의 선택으로 어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다는 발상은 아주 위험하다. 물론 입안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한 해당 정책이 가져올 장기적인 효과도 고려하고 직접 연관되지 않는 영역에까지 미치게 될 사회적인 파장도 헤아려 봐야 하는 것까지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계획을 세우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대목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런 대목들은 차후에 결과를 보면서 수정하고 보완한다는 방향으로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교만을 지나 전제자의 심성에 빠지기가 쉽다. 주어진 사회문제를 자기가 완벽하게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거의 예외 없이 정치사회적 맥락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전횡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 계획이 완벽하다는 주관적 확신으로 말미암아 자연스럽게 반대의견을 곧 "어리석은" 의견으로 치부하도록 유도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와 같이 정책의 성패는 내용보다 소통에 달려있다는 의미가 이로부터 도출된다. 내용이 형편없어도 소통만 되면 성공한다는 식으로 곡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 대신 애당초 내용이 형편없는 정책이라면 공론의 소통이라는 그물을 통과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란다. 공론장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는 정책이라면 일단 해보고 결과를 지켜볼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봐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견이 아무리 소수라도 목숨을 걸 정도로 완강하고 강경하다면 그처럼 격앙된 감정은 누그러질 때까지 기다리면서, 왜 그토록 심한 반대가 나오는지를 배려해야 한다.

고속철,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새만금 간척사업, 소고기 수입, 자유무역협정, 경부대운하 등과 같은 사업이나 정책은 결코 누구의 목숨이 단기간에 왔다 갔다 하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나름대로 이익이 기대되는 면이 있다면 변화 자체에 수반되는 부작용이나 피해자도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각 개인들의 여건에 따라 돌아갈 이익과 피해를 조정하고 분배하는 사회적 해법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한국사회에서는 여태까지 정책을 단선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보고 밀어붙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어떤 시책에 대해서든 직접적 또는 간접적 이해당사자들이 일단 소외감부터 느끼고 당국을 불신하고 들어가는 심리구조가 짜여져 있다. 그러므로 소통과 합의를 중시하면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감정을 진정시키고 상호 신뢰를 조성하는 방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연합뉴스

1986년부터 쳐서 19년만인 2005년에 경주에 짓기로 결정된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의 경우가 사후지명으로나마 몇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사례다. 첫째, 처음에 당국이 허둥대면서 허풍을 쳤던 바와는 달리 19년이나 걸려서 결정되었지만 그 사이에 폐기물 처분을 못해서 무슨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일에 착수했다면 오히려 결정하기 위해 소모된 시간과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둘째, 부안을 위시해서 후보지로 선정된 곳곳에서 벌어진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는 기본적으로 당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당국이 처음부터 모든 사정을 있는 그대로 알리지 않은 탓이 대단히 크다. 뒷구멍으로 슬그머니 졸속으로 해치우려다가 일이 자꾸만 꼬이고 커지는 악순환이 계속 된 것이다. 셋째, 사후지명의 관점에서 볼 때 어차피 어디엔가는 들어서야 할 시설이라면, 그 입지를 선정하기 위해서 관련 당사자들이 몸과 마음에서 19년간 입어야 했던 상처는 불가피한 정도를 크게 넘는다. 이 대목에서는 당국이 앞으로 정책추진 방식을 뿌리에서부터 바꿔야 하는 것이 먼저지만, 아울러 우리사회에서 전반적으로 갈등소지를 품고 있는 쟁점에 관해 일반 시민들과 이해당사자들도 접근하는 태도가 또 달라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사회의 정치가 개선될 수 있는 여지 가운데 내 눈에는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이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영역이다. 사회적 갈등은 내버려두면 어차피 스스로 곪아터져서 불거지고, 말로 싸우다가 주먹으로 싸우다가 마침내는 총과 칼로 싸워서 해결되도록 되어 있다. 자연상태에서 사자와 토끼와 사슴과 하이에나 사이에 이익이 상충하지만 각각 힘이 미치는 대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면서 살아간다. 자연계에 대해서 우리는 그것을 대충 건강한 질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사회의 경우 그런 상태를 우리는 야만이라고 부른다. 문명사회란 폭력으로 풀 일을 말로 푼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익이 상충해서 생기는 분쟁을 어떻게 말로 푸는가? 오직 절차를 통해서만 사회적 갈등을 말로 해소할 길이 열린다. 축구시합에서 무승부가 나면 어떻게 할지 절차를 일이 닥친 다음에 정하려고 하면 말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러나 시합이 실제로 벌어지기 전에, 경기장의 사정이나 선수들의 컨디션 등 구체적인 사정들을 서로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무승부 때 타이브레이크의 절차를 정하기로 한다면 말로써 합의를 도출하기가 비교적 용이해진다. 타이브레이크를 위한 절차는 공정성이 생명인데, 이런 경우 공정성의 원형은 제비뽑기, 즉 운수다. 실제로 운수는 공평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 대목은 사람의 손으로 어쩔 수 없다고 간주해서, 결과가 운수에 따라 정해지기만 한다면 공평한 것으로 통상 여겨진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절차 자체가 애당초 편향성을 피할 수 없지 않느냐고 반문이 당연히 나올 것이다. 예컨대 우리사회에서 선거제도는 대체로 최소한 몇 억 정도의 재산은 가진 사람이나 공직에 출마해볼 엄두라도 낼 수 있게 되어 있고, 사법제도는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는 재력을 가진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예컨대 조선일보는 걸핏하면 회사의 명예를 지킨답시고 다른 언론사를 고소하기도 하고 국회의원을 고소하기도 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가 잘 보여주듯이, 한 개인으로서는 참으로 악의적인 모욕을 당하고도 저런 기업체를 상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가 쉽지 않다. 조선일보가 개인을 고소한 사건에서 승소할 확률이 개인이 조선일보를 고소해서 승소할 확률보다 높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승소할 확률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소송에 들어가는 거래비용이 당사자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문제다. 소송이란 개인에게는 항상 지겹고 짜증나는 일인데, 조선일보사와 같은 기업체에게는 그런 일을 전담하도록 돈 주고 고용한 변호사들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제적인 여건에서 각 개인이 처한 입장을 보면, 어떤 사회에서 현존하는 어떤 절차도 공평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절차를 통해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패소한 쪽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승소한 쪽에서조차 억울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절차라는 것은 하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떤 절차가 주어진다면 바로 그 절차에 대해 항의할 길이 또 있다. 재판의 경우 삼심제가 있고, 대법원의 판결이 난 다음에도 요건을 갖추면 재심이나 헌법소원 등이 가능하다. 더욱 심각하게 생각을 연장한다면, 국회를 통해 해당 법률을 개정하고자 운동을 할 수도 있고, 직접적인 정치활동이나 항의시위를 통해 자신의 뜻을 알릴 수도 있다. 물론 이중 어떤 일도 쉬운 일은 없다. 그러나 불공평한 세상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이런 방법 말고 달리 뾰족한 길은 없다.

왜냐하면 진리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공정 또는 공평이라는 것도 원래 확고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이 모이는 곳에서만 생성될 수 있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내 눈에 불공평하게 보인다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움직일 수는 없다. 충분한 다수에게 불공정으로 보이고, 나아가 용납할 수 없는 불공정으로 보여야 세상을 움직일 수가 있다. 각 개인이 당한 불공정을 공표하여 알림으로써 공정과 불공정의 경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그런 공감대가 제도로 반영되는 일이 누적되는 사이에 사회에는 공정성에 관한 하나의 표준이 관습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 관습은 물론 한번 생겼다고 불변인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확립되어 있는 관습일수록 서서히 변하겠지만, 그렇다면 그만큼 공정에 관한 기존의 관념이 다수 구성원들에 의해서 지지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모든 사회에서 정부의 각 기능들은 소관사항에 관한 결정권을 인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제도에 해당한다. 이런 제도들은 나름대로 공정성을 추구하는 방향에서 설치되어 있지만, 방금 지적했듯이 당사자들의 처지와 여건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언제나 불공정하게 비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그러므로 자유사회라면 최종적인 공정성의 원칙으로서 기성의 제도와 관습 자체에 대한 도전과 반대의 권리를 허용해야 한다. 앞에서도 강조했듯이(제1부 제4장, 제2부 제3장 제3절),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을 바꿔서 공정한 정치의 절차를 좀더 파고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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