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부동산은 단순히 정주의 공간이거나 포근한 보금자리가 아니라 안정적인 고수익을 가져다 주는 재테크 수단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부동산 가격이 실질적으로 하락한 건 외환위기 시절을 제외하곤 달리 없었다. 부동산 가격은 폭등하다가 잠시 숨을 고르고는 다시 폭등하기를 반복했다. 이른바 '부동산 불패신화'가 국민들의 뇌리에 깊숙히 각인된 것이다.
사정이 한결 나빴던 것은 역대 정부들 가운데 부동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정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역대 정부들은 부동산을 경기 부양의 수단으로 사용했다가 가격이 급등하면 양도소득세 등의 정책수단으로 투기를 억제하는 행태를 거듭하곤 했다. 부동산 문제에 관해 정책다운 정책이 등장한 건 참여정부 시기가 처음이었다. 물론 참여정부 임기 중에 국지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 사실이고 일부 정책수단들의 도입시점이 늦은 것도 사실이지만 불로소득 환수, 시장 투명성 확보 등을 통해 부동산 정책의 얼개를 짠 부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를 칭찬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문제는 참여정부의 뒤를 이은 이명박 정부가 ABR((Anything but Roh, 노무현과 무조건 반대로)의 기치 아래 참여정부가 설계하고 집행한 부동산 정책들을 모조리 형해화시켰다는 점이다. 종부세도, 양도세도, 개발이익환수장치도, 재건축 관련 시장정상화 조치도, 분양가 상한제도 홍수에 떠 내려가듯이 사라졌다. 한편으론 MB정부의 입장이 이해도 된다. 경제위기를 맞아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 밖에 없으니 참여정부가 만든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전부 없애서라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아무튼 MB정부는 성공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선진국들의 부동산 시장이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반면 대한민국의 집값은 2007년 말 수준을 넘어서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규모도 2년7개월만에 최대 수준인 254조4000억 원까지 늘었다. 이게 다 시장정상화 조치들을 초토화 시킨데다 금리인하를 통해 시중에 유동성을 차고 넘칠 만큼 공급한 MB정부의 공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 말은 MB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산가치는 하락하는 것이 당연하며 부동산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부당한 시장 개입으로 인해 이에 역행하고 있다. 세계경제가 여전히 맥을 못 추고 있는 현재도 꿋꿋히 버티고 있는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세계경제가 회복되는 시점에 어떤 모습을 보일 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쁘다. 붐 앤 버스트(Bum&burst)는 바다 건너 일본과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정부는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부동산 가격 상승이 심상치 않게 여겨졌음인지 MB정부는 LTV비율을 낮추고 전세보증금에도 과세하겠다고 나서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 정도 대책을 가지고 우리를 빠져나온 부동산 투기라는 이름의 괴물을 포박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더 이상의 부동산 버블 형성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지금이라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패키지를 부활시켜야 한다.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 패키지 보다 나은 정책 패키지를 고안해 적용하는 것이 맞겠지만, 이 정부에 그럴 능력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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