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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떡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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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떡여왕

[신기주 칼럼]<30>떡만이는 살려고 싸운다. <선덕여왕>엔 역사가 아니라 사람이 있다.

로마 시대를 다룬 사극 드라마 <로움>의 주인공은 시저도 옥타비아누스도 아니다. 두 명의 병졸이다. 루시우스 보네루스는 빠진 머리털도 제자리에 다시 꽂을 인물이다. 타이투스 풀로는 개망나니다. 허구이긴 하지만 그는 클레오파트라와도 섹스를 한다. 보통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로움>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성적으로 성공을 추구해야 할까, 그냥 될 대로 되라 하면서 즉흥적으로 사는 게 더 행복할까. 우리가 먼저 살다간 인물들을 통해서 진짜 배워야 할 건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인생의 교훈이다. 역사의 교훈은 거창하다. 어떻게 하면 천하를 통일할 수 있고 어찌하면 정적을 물리칠 수 있고 무엇을 하면 바라던 걸 얻을 수 있느냐다. 인생의 교훈은 소박하다. 한 세상 정말 행복하게 살다 간다는 건 어떤 건가. 죽지 않고 삶을 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드라마 <선덕여왕>의 덕만은 거창한 대의명분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싸운다. (사진제공_MBC)

<선덕여왕>은 역사의 교훈이 아니라 인생의 교훈을 들려준다. 떡만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하지만 떡만이 싸우는 이유는 삼국 통일을 위한 것도 신라의 왕이 되기 위한 것도 정적인 미실을 제압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백제와의 전장에서 떡만은 거듭 말한다. "살기 위해 싸우는 거야. 우리도 무서워. 두려워. 하지만 살려면 싸워야 하니까." 떡만은 김유신에게 묻는다. "삼국 통일이 되면 무엇을 합니까? 어차피 백성들은 누구 아래 살든 마찬가지 아닌가요?" 떡만은 천명공주한테도 묻는다. "신라의 왕권을 되찾아와서 무얼 하게요?" <성웅 이순신>의 이순신에게 중요한 건 죽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 <대장금>의 의녀 장금은 현대 알파걸의 원조쯤 된다. <이산>의 정조는 아버지를 죽인 정적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어른 아이가 된다. <대왕 세종>의 세종은 예수의 재림이다. <선덕여왕>의 떡만은 다르다. 체력도 엉망이고 싸움도 잘 못한다. 명석하긴 한데 비범하진 않다. 초인이 아니다. 그런데도 떡만은 발버둥을 친다. 살아보려고 말이다. 운도 따른다. 미실은 말한다. "천운이 함께 하는 자야 말로 진정한 승자지요." 우리가 흔히 위인한테서 본 받도록 강요 당하는 건 노력하는 자세나 비범한 능력 따위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건 운인지도 모른다. 떡만은 운빨 하난 기가 막힌 녀석이다. 덕분에 신분을 되찾아 덕만이 되고 다시 선덕이 된다.

어쩌면 떡만이 선덕이 되면 <선덕여왕>도 여느 사극처럼 역사의 교훈이나 읊조리게 될지도 모른다. 먹물 먹은 사관들은 예나 지금이나 인생의 교훈보단 역사의 교훈에 몰두하기 마련이어서 선덕이 된 떡만에 대해 알려진 건 대부분 초인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고 백제군이 침략해오는 걸 간파했다거나 자신이 죽을 날을 미리 알았다는 것들 따위다. 하지만 그딴 얘기들보다 떡만한테 숨결을 불어넣는 건 그녀가 살아남으려고 싸웠을 거란 상상이다.

지금도, 우린 수많은 역사의 교훈들한테 짓눌려 살고 있다. 선진국가 만들기, 경제 성장, 초일류 기업, 승진, 출세, 진보와 보수 같은 것들이다. 결국 우리도 떡만이처럼 살아남으려고 기를 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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