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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장관은 '경총 노동대책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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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장관은 '경총 노동대책과 과장'"

[토론회] 원조 '바보' 전태일을 아십니까?

"암울한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는데 시대가 노동자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것 같다." (2009년 박종태)
"노동자를 어두운 곳에 가두고 옭아매는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래야 없는 사람도 살고, 노동자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1970년 전태일)


40년의 격차가 무색할 만큼 비슷한 유서다. 스스로 몸을 내던져 세상을 깨우고자 했던 그 죽음의 방식 또한 같다. 1983년에 출간된 <전태일 평전>이 2009년 지금, 우리에게 다시 필요한 이유는 그래서 간단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하다 못해 평균 이하의 삶을 산 못난 사람"(따이루)이고, 누군가에게는 "파시즘에 닮아 있는 정치적 민주주의의 후퇴 속에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조국) 사람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유와 평등, 그리고 그 밑에 깔려 있는 인간애"(조효제)인 사람.

40년 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또다시 전태일인가. 최근 새롭게 다시 나온 <전태일 평전> 재출간을 맞아 7일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태일과 함께 찾는 희망세상' 토론회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는 자리였다.

▲ 40년 전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왜 우리는 또다시 전태일인가. 최근 새롭게 다시 나온 <전태일 평전> 재출간을 맞아 7일 서울 종로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전태일과 함께 찾는 희망세상' 토론회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는 자리였다. ⓒ프레시안

왜 다시 전태일인가?…"40년 전과 다른 것이 없다"

대학 교수와 500일 넘는 여성 비정규직의 파업을 이끈 노조 간부, 청소년 인권을 위해 애쓰는 활동가에 이르기까지 참석자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과연 지금 우리의 삶과 사회의 환경이 얼마나 바뀌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부는 한 쪽으로 편중되고 양극화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것은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였다. 거기에 덧붙여 현 정부 들어서는 최소한의 형식적인 '약자 보호' 원칙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오늘의 국가는 다양한 계급과 계층을 절충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버리고 일종의 '기업 국가'로 가고 있다는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의 말은 명쾌했다. 조국 교수는 "보수 정권이라 할지라도 노동자의 인권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 국가인데, 지금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국가가 오히려 노동자를 극단으로 내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과 최저임금 제도 수정은 단적인 예다. 사회적 약자에게만 더 큰 희생을 요구하는 정책인 것이다. 이런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고 있는 노동부에 대해 조 교수는 "경총의 노동대책과"라고 혹평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을 놓고도 그는 "경총의 과장"이라고 말했다.

국가 권력이 사회적 약자의 호소를 귀 기울여 주지 않는 그 모습은 40년 전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조국 교수는 "전태일은 죽기 전 수도 없이 노동부를 찾아가고, 청와대에 청원을 넣는 등 국가를 향해 노동자의 절박한 상황을 호소했다"며 "국가가 해결해주리라 믿었던 것이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도 비슷한 지점에서 전태일과 오늘의 공통점을 지적했다. 조효제 교수는 "죽기 전 전태일은 여러 번 자신이 결심한 '거사'를 연기하면서 대화와 면담, 법적 절차 등 끝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진행했다"며 "하다하다 안 되니 결국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만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스로 목을 매 택배 기사들의 억울한 '해고'를 알리려 했던 박종태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정부에 맞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자 했던 허세욱. 그리고 약속을 어기는 회사에 맞서 하늘 위 타워크레인에서 숨진 김주익.

합법적으로, 얌전하게, 절차에 따라서는 도저히 안 되는 현실의 벽에 절망한 그들에게 선택지란, 전태일처럼 자신의 생명뿐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조효제 교수는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다른 이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것,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을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 전태일이 주는 교훈"이라고 말했다.

"영리한 노예이기를 거부하고 '바보'로 살고자 했던 전태일"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바보 노무현'의 삶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지만, 원조 '바보'는 사실 전태일이다. ⓒ연합뉴스
꼭 그의 죽음만이 아니다. 그의 삶 역시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있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연구원은 "20년 전의 나는 전태일은 보지 않고 전태일이 처했던 비극적 상황만을 보았지만 다시 읽은 평전에서는 전태일의 삶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태일의 삶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온갖 시도를 했던 '어느' 노동자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가 아니다. '온갖 곤경에도 불구하고 '어느' 노동자에 불과했던 이가 결국 자기 시대를 멈추게 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전태일 평전>을 접했을 때는 그렇지 않아도 회색빛이었던 세상이 완전히 검정색으로 돌변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읽은 <전태일 평전>은 어떤 암담한 시대도 다른 삶의 꿈을 가진 자를 쉽게 무릎 꿇릴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바보 노무현'의 삶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런 의미에서 원조 '바보'는 사실 전태일이다. 고병권 연구원은 "깨달음의 일성은 종종 스스로를 '바보'라고 부르는 것에서 시작한다"며 "전태일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된 후 자신을 바보라고 자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태일의 깨달음은 "스스로 부당하게 학대를 당하면서도 바보처럼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바보'라 칭한 후에도 그는 '바보'의 삶을 버리지 않았다. 당시 선배 재단사들은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하는 것을 두고 '네 꿈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 '네가 뭘 안다고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려고 하냐',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설치는 놈들은 바보'라는 등등의 우려와 비난을 쏟아냈지만 전태일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병권 연구원은 "노예는 자신의 열등함과 무력감을 재빨리 승인함으로서 예속된 상황에서 가장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 한다"며 "하지만 전태일은 그런 영리함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평생 노예로 사는 것을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전태일의 정신은 "아직까지 역사를 넘어 현재 사회에도 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지금, 누가 '바보' 전태일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

현재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그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이는 누구일까? 여전히 전태일을 얘기하며 노동운동을 하는 노조일까? 참석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전태일이 목숨을 던져 얻어낸 노동조합과 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의 노동조합, 그리고 2009년 노동조합은 이름만 같을 뿐 내용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조합이 '바보 전태일'과 같기란 애초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의 박순희 대표는 심지어 "현재 우리 노동자들은 열사를 노리개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태일이 지키고자 했던 여공들은 지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대기업 정규직 남성"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불안정한 저임금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던 전태일의 사랑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 것은 양대 노총이 아니라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여성 비정규직의 510일 파업을 이끌었던 이경옥 전 이랜드일반노조 부위원장은 "아이들도 남편들도 우리에게 '절대 못 이긴다'고 했지만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바보처럼 투쟁해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설명은 지금의 전태일 정신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준다.

달라진 것은 없는 세상에서, 우리는 "전태일 정신을 액세서리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받아들여 살 수 있을까? <전태일 평전>은 다시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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