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조는 UNI-MEI(국제사무전문서비스노동조합연맹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지부), UNI-APRO(국제사무전문서비스노동조합연맹 아시아태평양지역기구)와 함께 지난 7월 2일부터 4일까지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아시아태평양 영상제작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컨퍼런스 기간 중이던 3일 저녁 아시아태평양 영화스태프의 밤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 기자회견을 열었다. 영화노조는 공동 주최단체인 UNI-MEI, UNI-APRO와 함께 "노동의 다양성을 인정하라"고 주장하며 정부에 영화노동자에 대한 실업부조금 제도 도입을 요구했다. UNI-MEI는 연예, 스포츠, 문화, 언론, 예술 등 분야에서 전세계 140여 개의 노동조합을 포괄하는 국제단체로, 지난 12월 국내 전국언론노동조합의 파업 당시 지지성명을 낸 바 있다.
▲ 왼쪽부터 통역 및 행사진행을 맡은 UNI-MEI 한국지부 최정식 사무총장, UNI-MEI 하인리히 블라이허-나겔스만 의장/독일 언론노조 위원장, UNI-MEI 짐 윌슨 사무총장, 권칠인 감독, 정윤철 감독.ⓒ프레시안 |
영화노조는 영화산업 노동자들의 고용 형태가 일정기간의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단속적 고용형태임을 강조하고, 연속적 노동자들을 기준으로 한 지금의 제반 노동 관련 법제가 서비스 노동자들의 삶의 기본권을 전혀 보장하고 있지 못하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의 최소한의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단속적 고용의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실업부조금 제도를 비롯한 특수한 사회보장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회견 자리에는 최진욱 영화노조 위원장을 비롯해, UNI-MEI의 의장이자 독일 언론노조 위원장인 하인리히 블라이허-나겔스만을 비롯해 UNI-MEI의 사무총장인 짐 윌슨, 한국영화감독조합의 공동대표인 권칠인 감독과 정윤철 감독 등이 참석해 영화노조와 목소리를 함께 했다.
특히 하인리히 블라이허-나겔스만 의장은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 상황에서 무엇보다도 창의력이 요구되는 미디어와 아트 분야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서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분야의 노동자들의 상황이 전세계적으로 비슷하다고 밝힌 그는 일반적인 보통의 보험 시스템으로는 이들 창작노동자들을 지원할 수 없으며, 이 분야 노동자들에게 맞는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는 하인리히 블라이허-나겔스만 UNI-MEI 의장.ⓒ프레시안 |
다음은 컨퍼런스 기자회견장에서 발표된 성명서 전문이다.
<미국/유럽/아시아/태평양 영화스태프 컨퍼런스 참가자 선언> "영화와 삶의 공존을 위해 노동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입니다" 저 아름답고 화려한 스크린 뒤에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을 받으며 상시적으로 반복되는 실업과 24시간 이상의 장기 노동에 시달리는 수많은 영화산업종사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명감으로 열악한 환경을 꿋꿋이 받아들이며 견뎌 왔던 영화산업종사자들이 이제 일자리가 없어 정들었던 현장을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영화를 사랑하는 여러분은 알고 계신지요? 전 세계가 열광하는 월드컵 뒤편에는 생계를 위해 어두컴컴한 방 안, 수년간 바느질을 하다 앞을 못 보게 된 인도 소녀 소니아가 있습니다. 한국의 영화산업종사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이라는 측면에서 소니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산업종사자들의 열악한 처우는 기초인권보장 차원에서 다뤄져야 할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산업종사자의 단속적 고용 형태까지 포괄하는 직업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 공식 협의 테이블을 구축할 것입니다. 하여 우리는 영화산업종사자들이 절실히 원하고 있는 실업부조금 제도와 고용증진과 국제교류확대를 위한 국제공동제작활성화제도 도입을 대한민국 정부에게 공식 요청합니다. 인종과 국가의 차이를 넘는 동등한 교류, 공존의 초석은 바로 인간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삶의 안정을 보호하는 데 있을 것입니다. 이는 문화라는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2009년 7월 2일 미국/유럽 /아시아 /태평양 지역 영화스태프 컨퍼런스 참가자 일동 |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은 기자회견 뒤 이어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의료보험 보장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고용과 실업을 반복하는 데다 한국영화 침체로 더욱 삶의 위기를 맞은 영화노동자들의 특수한 노동형태에 대한 이해와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해서 말했다.
다음은 최진욱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는 영화노조 최진욱 위원장ⓒ프레시안 |
2004년부터 준비해 2007년 인도네이사에서 열린 국제회의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언해온 것을 이제서야 정식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뿐이다.
- 노동의 다양성의 주장은 자칫 비정규직을 비롯해 소위 '노동유연화 정책'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지 않나?
국내에서도 이미 단속적 고용형태의 서비스직 종사자가 400만을 넘어섰다. 그러나 국내의 각종 법령 자체는 모두 연속적 정규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단속적 고용의 노동자들은 완전히 소외되고 있다. 단속적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특수성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은 비정규직을 공식화하거나 확산하라는 말과 다르다. 이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절실하다. 노동자간에도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영화종사자들의 경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고, 우리는 연속적 노동자들과는 삶의 형태도, 가치도 다르다. 연속적인 노동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기본적인 삶조차 보장받지 말아야 한다고 말할 순 없지 않나. 우리는 연속적 노동자들보다 돈은 덜 버는 대신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노동계 내부조차도 이러한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분위기다. 실업부조금 제도를 우리가 들고 나올 때 이에 대한 반발은 노동계 내부에서 먼저 나올 가능성도 크다. 말이 안 통하는 건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 영화노조가 요구하는 실업부조금 제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무엇인가.
프랑스식으로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소극적 노동시장정책이 아닌, 스웨덴 모델의 적극적 정책을 지지한다. 실업 기간 동안 일정한 재훈련을 거치고, 이를 수료한 이들에게 실업부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 영화노조는 이미 제작가협회와 함께 영화산업실무교육센터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지 않는가?
맞다, 그것이 바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하나의 모델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이 보다 노사정의 공식 교육기관으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형태는 정부에서 그저 약간의 예산만을 지원해주는 형태일 뿐, 장기적인 비전이나 로드맵이 전무하다. 정부의 영화지원정책에도 대수술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발전기금이 있는데 여기에 영화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예산이 전혀 책정돼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영화발전기금 자체가 스크린쿼터를 50% 축소하는 대신 조성된 것 아닌가? 영화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인데, 이것이 생산과 고용 부문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영화노동자들의 복지기금으로 투자되어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그러나 현재 영진위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노동부와 문화부도 별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 노동부든 문화부든 기획재정부든 소통이 가능한 한 군데 창구가 필요하다.
-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의 강한섭 위원장 유임에 대해 보수단체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지지서명을 해줘서 논란을 겪었는데.
해임될 때 해임되더라도 이유과 근거는 지지할 만한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번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기관장 평가에서 영진위와 강위원장이 최하위 점수를 받은 데에는 '공공기관 중 전임자 수 최다' 같은 것이 있다. 한 마디로 '노조를 장악하지 못하고 구조조정과 해고를 안 했다'는 이유로 최하위 점수를 받고 해임건의를 받은 것이다. 이런 걸 노조가 지지할 수는 없지 않은가. 강위원장이 결국 물러난 만큼 이제 영진위에도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바람이 불 거다. 노조가 그런 걸 지지할 수는 없다. 우리의 논리는 너무나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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