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 입에서 '공부 잘하는 애들', '공부 못하는 애들'이라는 구분법이 등장하고, 스스로를 그 한편으로 분류하는 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신경이 쓰인다. 이제 10년 남짓 산 인생이 고작 몇 번의 시험 결과로 스스로를 열등하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 남은 인생이 어떻겠는가? 아이가 자존감과 자신감에 상처를 받게 될 것이 걱정이다. 내 아이는 시험과 성적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이 교육체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이가 받을 경쟁의 상처를 부모인 나는 어떻게 설명을 해주어야 할까?
특목고, 외고, 자립형 사립고에 이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까지 결국 도입됐다. 학원에는 초등학교 4~5학년을 대상으로 이 학교들을 목표로 한 진학반이 편성되고, 자정이 넘도록 아이들이 입시준비에 매달린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찾아보면 자율형 사립고의 도입 목적을 '다양화'로 설명하고 있다. 학교교육을 특성화, 다양화해 교육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고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지를 넓히겠다는 일견 무난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런데 그 진짜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표면의 목적과는 너무나 모순되게도 초등학생들까지 입시전쟁에 내모는 성적 지상주의 교육으로의 '획일화'다. 한참 몸과 마음을 키워야 할 초등학생들까지 입시경쟁에 시들게 만드는 것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뿐 아니다. 등록금과 경비로 1년에 1000만 원 넘는 돈을 내야 한다는 자율형 사립고가 계층간의 위화감을 확대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얼마 전 방영된 모 드라마에 그려졌던 귀족학교가 현실에 등장한다고 생각해보라. 이미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아이의 입시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율형 사립고는 고스란히 교육의 계층적 분절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기회의 평등'이라는 현대 민주사회 교육의 기본 전제가 여전히 대한민국에 작동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참여연대 |
혹자는 기업이 부자 마케팅을 하고, 백화점들이 명품관을 만들 듯이 공적 규제를 받지 않는 고급 사립고를 만들어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교육은 비즈니스가 아니지 않느냐'는 답변은 그런 주장을 하는 분들에게 별 효용이 없을 듯하다.
좋다, 그렇게 하라. 단, 그런 학교 100개쯤에 전혀 흔들리지 않을 명품 공교육 먼저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하라. 그런 학교 가기위해 어린 초등학생들이 머리 싸매고 경쟁하지 않는 환경 먼저 만들어 놓은 다음에 하라. 그런 전제조건 없이 자율형 사립고를 도입하는 것은 우선순위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더구나 그런 정책에 정부가 앞장서는 것은 공교육의 담지자가 공교육을 흔드는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교육은 백화점 명품관이 될 수 없다. 경쟁과 효율화의 이름으로 미화되고 합리화 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70% 가까운 국민들이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웬만한 국민의 반대쯤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이 정부의 컨셉이라지만, 교육은 백년지대계이다. 한번 망가지면 다시 회복하기 참 어렵다.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호소한다. 국민의 목소리, 교육주체인 학생, 학부모,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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