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원한의 부메랑
제2절 친일파에 얽매인 정서
노회찬(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은 2007년 2월 20일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 「노무현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진보도 유연해야 하는 건 필요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보의 유연성은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전략적 유연성은 오늘날 한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주요 척도 중의 하나입니다. 이들을 받아들이면서 유연한 진보를 자처한다면 김구 선생이나 안중근 열사에 비해 최남선이나 이광수가 유연한 민족주의자라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미군의 유연성에 관해서는 많은 논란이 가능하고, 노회찬의 입장이 설득력이 있는 부분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의 글을 여기 인용한 이유는 마치 최남선이나 이광수를 김구나 안중근에 "비해서" 유연한 민족주의자라고 말해도 안 된다는 듯이 말했기 때문이다. 최남선이나 이광수는 절대 "민족주의자"는 될 수 없고 오직 "민족배신자"이기만 하다는 말인데, 그들을 한 마디로 민족배신자라고 낙인찍는 사고방식이 과연 건강한 것인가를 따져보기 위함이다. 최남선, 이광수가 친일파로 비난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1930년대 후반에 "내선일체"라든지 "황국문화 선양" 따위 구호를 외치는 한편, 일제로부터 직위나 금전적인 혜택을 받아 누렸기 때문이다. 그들이 초년부터 불순한 인종이었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으나, 여기서는 세세한 내역을 가릴 계제는 아닌데다, 어차피 저런 크고 현저한 행적이 없었다면 "대표적인 친일반민족행위의 지식인"이라는 비난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일 지식인 '최남선 기념호' 발행」). 그런데 장준하는 최남선이 죽은 1957년, 『사상계』 12월호를 "육당 기념호"로 발간하면서 권두언에 이렇게 썼다.
한 때 선생의 지조에 대한 세간의 오해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선생의 본의가 어디까지나 이 민족의 운명과 이 나라 문화의 소장에 있었음은 오늘날 이미 사실로서 밝혀진 바요, 항간에 떠도는 요동부녀(妖童浮女)들의 억설과는 전면 그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赦)하는 법이 없고 인재를 자기 눈동자 같이 아낄 줄 모르고 사물을 널리 생각하지 못하는 옳지 못한 풍조 때문에 우리는 해방된 후에도 선생에게 영광을 돌린 일이 없고 그 노고를 치하한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욕된 일이 적지 아니하였다. 이것은 실로 온 민족의 이름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 사연을 전하면서 김삼웅은 "이 글의 필자가 장준하일까 의문이 간다", "뒷날 박정희와 싸우면서 '…일군출신 박정희만은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된다'라고 사자후를 토했던 정신과는 크게 상치된다"고 불평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상치보다는 아량이 더 많이 보인다. 나는 오히려 최남선의 학문적 공적에 대해서는 장준하만큼 높은 평가를 바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점과는 별도로 그에게 강요된 "민족배신자"라는 낙인은 분명히 지나친 것이라고 확신한다. "요동부녀의 억설", 즉 요망한 애들과 수다쟁이 여인네의 헛소리라는 장준하의 지적은 바로 그러한 과잉을 경계하는 말이다. 일제에 대해 떳떳한 입장을 지켰던 자기가 아니면 최남선에 대한 우중의 과잉공격을 짚어낼 사람이 없으리라는 생각에 일부러 "육당 기념호"를 낸 것이 분명하다. 이는 육당에 대한 변호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공정 그리고 균형감각을 위한 호소이기도 했다.
김삼웅 역시 장준하 쯤 되니까 최남선을 위해 변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장준하와 같이 일본군대를 탈출해서 임시정부를 찾아갔던 김준엽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 당시에 춘원과 육당을 얘기할 수 있었던 건, 장준하 형하고 나하고, 그것도 임시정부에 가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지, 만약에 우리가 그런 배경이 없었더라면, 저 사람들 친일한 사람들 비호한다고 욕했을 거예요." 이를 인용하면서도 김삼웅은 여전히 최남선에 대한 장준하의 인식이 왜곡되었다고 꾸짖는다. 김삼웅이 "친일"로 치부하는 최남선의 행적을 장준하가 몰랐던 것이 아니고, 다만 그로서는 그런 행적들만 가지고 한 사람을 마구 배신자라는 식으로 몰아붙이면 안 된다는 입장일 뿐이다. 반면에 김삼웅은 이런 정도인 장준하의 입장마저도 잘못이라고 보고 있다. 앞에서(제1부 제3장 제2절) 말했던 명목척도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셈이다.
<그림4>를 통해 명목척도와 순서척도의 차이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 최남선은 기미년 독립선언서를 기초했는데, 감옥에 갔다 풀려난 후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하고, 중추원 참의직을 받아들이고, 만주건국대학 교수를 지냈다. 이에 관해 명목척도를 써서 "민족영웅"인지 "친일악질"인지를 선택하라고 하면, 아마 김삼웅이나 노회찬은 후자를 택할 것이다. 그럼 장준하는 어떨까? 최남선을 "친일악질"로는 보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를 "민족영웅"으로 찬양하면서, 조선청년들더러 일군에 입대하라고 강연하고 다닌 행적들까지 모두 "민족을 위한 위업"으로 미화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장준하는 최남선의 변모를 천사(0)에서 악마(10)로 바뀐 것으로 보지 말고, 위 그림에서 빨갛게 표시된 (가)에서 (나)로 바뀐 것으로 보자는 말이다. 아울러 그 정도의 일은 최남선을 위해서보다 우리 사회의 도덕적 건강을 위해 관인하자고 호소한 것이다.
가령, 1000명의 시민에게 최남선이 "민족영웅"인지 "친일악질"인지를 선택하라고 물었더니 300명은 전자, 700명은 후자로 대답했다고 치자. 하지만 같은 질문이라도 중간에 "모르겠다"를 넣으면 양쪽에서 상당한 수가 중간으로 이동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양자택일을 요구했을 때 "친일악질"을 선택한 사람들만을 따로 모아, 이번에는 0에서 10까지 순서척도로 평가하라고 물으면 십중팔구 6과 8사이 정도에서 평균값이 형성될 것이다. 물어보는 방식에 따라 최남선이 비난받을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은 사회통계나 조사방법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에게는 기본적인 상식이고, 그런 기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약간의 상식만 있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나이가 사춘기만 지났다면, 자신의 인격을 다른 사람들이 거칠기 짝이 없는 척도로 재단할 때 얼마나 부당하고 무자비한지를 최소한 몇 차례씩을 겪어봤을 것이다. 김구나 안중근을 양자택일 척도에서는 "민족영웅"으로 여길 사람이라도, 점수로 평가하라고 하면 모두가 10점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이 "유연한 진보"를 말했을 때, 최남선을 들먹이면서 공박한 노회찬의 수사는 현재 한국의 정치의식을 감안할 때 말다툼의 기술로는 상당히 효과적임을 인정해야 한다. 보도를 탔고, 또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최남선을 관인하자는 장준하의 호소에 대한 김삼웅의 불평도 민족주의적 결벽증을 선명과 순수로 착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공감을 얻을지 모른다. 수사학 연습이든 결벽증이든 개인적인 취향이나 홍보에 그치는 한, 나는 전혀 시비할 생각이 없다. 내가 노회찬이나 김삼웅의 예를 거론하는 까닭은 그들과 같은 사유의 프레임이 우리 사회 다수에게 표준적인 정치의식으로 고착될 때 진보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것 같기 때문이다.
우선 경직성이 문제다. 이는 김삼웅의 경우에 뚜렷이 나타난다. 김삼웅이 개인적으로 최남선에 대한 비난을 멈출 수 없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관인을 말하는 장준하에게조차 불만을 느낀다는 것은 자신과는 다른 관점을 일절 용납할 수 없다는 아집이라고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분법적인 명목척도에 사로잡힌 나머지, 같은 사태라도 순서척도라는 창틀을 통해서 바라보면 어떻게 보일지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다른 관점의 가능성 자체를 악마의 장난으로 단정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제4부에서 논의했듯이, 도덕적 선험주의가 교조주의로 흐르기 쉬운 까닭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그림4>에서 파랑색으로 표시했듯이, 어떤 표준을 교조(dogma)로 섬기면서 신당(神堂)에 모시게 되면, 나머지 모든 덕목들이 덩달아 그 안에 집약되어 버린다. 민족은 곧 선, 용기, 정의, 공정, 자비, 등등 모든 바람직한 항목을 표상하는 것으로 우상화되는데, 그때 그 항목들이 내부적으로 충돌한다는 사실마저도 직시하기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둘째, 경직성은 으레 편협성을 동반한다. 사회의 진보를 꿈꾼다는 것은 뭔가 질적으로 나은 세상이 가능함을 믿는 것이고, 그렇다고 한다면 종래 몰랐던 새로운 앎의 세계를 또한 인정해야 일관적이다. 모든 일이 "제 눈에 안경"일 뿐이라면, "진보"를 논할 여지도 없고 "민족정기"를 논할 여지도 없다. 그런데 세상을 보는 눈이 더욱 밝아지려면, 기하학의 비유로 사유구조가 점에서 선으로, 선에서 면으로, 면에서 입체, 입체에서 다차원으로 발전해야 한다. <그림4>에 나타나듯이 명목척도에 따른 이분법적 사고는 세상이 두 개의 점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보는 셈이며, 순서척도는 적어도 연속이라는 관념을 수용하는 태도가 된다.
물론 순서척도만으로 만족하면, 서열주의로 이어지기가 십상이다. 그리고 순서척도에 서열주의적 지향이 결합하면 다시 점의 세계관으로 환원되기 쉽다. <그림4>에서 파랑색 동그라미가 보여주듯, 자신의 사유 프레임 자체를 대상화해서 비판하는 안목이 수반되지 못하면, 바람직한 가치의 총체로 막연히 상정되는 대상을 교조적 우상으로 앙망하는 경향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순서척도가 단선적 기준의 교조화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주어진 척도는 무수한 양상 중 하나를 추상한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척도 이외에 다른 척도들이 무수히 많고, 복수의 단선적 척도들을 연결하면 2차원 이상 다차원 척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기본 바탕으로 주지되어야 한다.
<그림5>는 1930년대 후반부터 1945년까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대거 친일에 가담한 사실을 "민족"이냐 "반민족"이냐고 하는 단선적 척도로 보지 않으면 어떨지를 생각해 보기 위한 하나의 예시이다. 이 예시를 나는 두 가지 기준, 즉 개량이냐 투쟁이냐 그리고 국제정세에 관한 식견이 얼마나 있느냐는 기준으로써 구성해봤다. 이렇게 보면 김구는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문인학자에 비해 투쟁적인 인물이며, 나아가 국제정세 특히 미국이나 유럽의 상황에 비춰 일본의 운명을 헤아려볼 수가 있었다. 반면에 이광수와 최남선은 기질적으로 유화적이며 온건한 지식인이며, 시야가 주로 일본과 중국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군대에게 중국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면서 불가항력이라는 좌절감을 느꼈으리라 이해할 수가 있다.
다석 류영모는 동네의 일상적인 모임을 주도하다가 엉뚱하게 "독립운동"이라는 혐의를 쓰고 잡혀갔는데, 순사가 괴롭힐 핑계거리를 구하느라 "조선 독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오자 "조선의 공중변소가 일본만큼 깨끗해지는 날 저절로 독립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하는 기지를 발휘해서 풀려났다고 한다 (박영호, 『진리의 사람 다석 유영모』, 두레, 2001). 일본을 쫓아내는 일만이 아니라, 강건한 공동체를 왜 형성하지 못해서 무력하게 침략을 당했는지, 그리고 일본을 쫓아낸 다음 우리끼리는 또 어떻게 살 것인지를 생각한다면 안창호와 같은 개량주의 노선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정신적인 지주였던 안창호마저 감옥에서 얻은 병으로 죽고, 일본군이 중국을 유린하던 시절에 이광수가 쉽사리 상황이 호전될 수 없으리라고 보고 굴신을 통해서라도 우선 생존을 추구한 것은 적어도 일관성은 갖춘 행동이다.
<그림5>와 같은 구도를 통해 바라보더라도 여전히 이광수에 대해, 나아가 당시 친일로 선회한 대다수 지식인들에 대해, "오판"이나 "나약함"을 비판할 수 있다. 그러나 민족 대 친일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는 보이지 않던 국면들이 이차원적 구도를 통해서는 포착될 수 있고, 따라서 상대를 비난하더라도 상대를 더욱 세심하게 이해한 위에서 비난이 이루어지게 된다. 물론 이광수나 최남선의 행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이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기준들이 적용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림5>의 도식은 단지 점이나 직선을 지나 2차원적인 이해만 해도 어떨지를 보여주기 위한 예시일 뿐이다. 그리고 노회찬이나 김삼웅 식의 접근은 3차원 또는 그 이상의 복합적인 차원은 고사하고, 이 정도 2차원적인 이해마저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는 편협성을 고무하는 것이다.
셋째, 지금 내가 하는 말들은 이미 죽은 지 50년도 더 지난 이광수나 최남선의 명예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사고방식을 반성하기 위함이다. 예컨대 우리는 지금 미네르바 구속 및 기소, 촛불 재판에 대한 신영철 씨의 개입, 박연차 스캔들, MBC <피디수첩>의 광우병보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감사, 한상률 전 청장을 비판한 국세청 직원 파면 및 고발, 등등, 작은 꼬투리를 잡아 권력이 개인을 괴롭히는 무자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것은 물론 지난 10년간 청와대를 빼앗긴 원한을 설욕하려는 보수정권의 복수극에 해당한다. 그런데 진보정권이 만약 들어선다면 어떻게 할까? 다시 똑같은 복수극을 벌이면 그만인 것일까?
진보세력에게는 이 지점에서 고충이 삼중으로 겹쳐진다. 그동안 국가기구 안에 편입됐던 진보의 싹들이 지금과 같은 숙청바람에서 짓밟히고 약화된다. 노무현 시절 검찰이나 헌법재판소가 그랬듯이, 국가관료체제는 선거로 집권한 진보세력에게 완강하게 저항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보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층에 속하는 300~400만 이상의 유권자들은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또다시 숙청바람이 불까봐 불안해서, 쉽게 진보를 지지하지 못한다.
이 연재를 통해서 누차 강조했듯이, 정치판에서 당파성이 사라질 수는 없다. 기득권을 나눠가지자고 하는 진보파와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보수파 사이에 수학문제에 해당하는 객관적 정답은 없다. 하지만 싸움이 단지 이런 차원에만 머무른다면 기득권을 나눠가지자는 쪽이 특별히 "진보"일 까닭도 없게 되고 만다. 모두가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존본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순한 평면적 이익투쟁, 다시 말해 평면적인 우리/저들의 구분에서 탈피할 필요가 보수보다는 진보에게 더욱 무겁게 요구된다. 친일행적들 사이에 섬세한 차이들을 식별하지 않고 단지 내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덧씌운 기대치에 상대가 모자란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배신자나 반역자로 몰아붙이는 행태를 60년 동안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저들의 구분 중에서도 지극히 조잡하고 동물적인 본능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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