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가?"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인가?"

[철학자의 서재]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이 책의 특징은 1789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란 점이다. 1789년이 인류 역사에서 획기적인 까닭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1789년은 책의 역사에서도 획기적인 해이다.

책의 역사에서 1789년이 갖는 의미

'왜 문학은 되풀이 문제 되는가'에서 김현은 문학의 사회적 가치를 논하면서 18세기를 전환점으로 돌아본다. "18세기 이전 글 쓰는 사람들이란 아주 거칠게 말하자면 자신이 그들에게 돈을 받는, 다시 말해서 생존의 보호를 받는 지배계층의 이념과 도덕을 그가 속한 사회에 확대·전파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파트롱이라 불리는 그 보호자들에게 글쓰는 사람들은 그들의 책을 헌정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그 보답으로 파트롱들은 글쓰는 사람들의 생존을 책임 맡았다. 그 글쓰는 사람들이 그릴 수 있는 궤적이란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주는 지배자들의 이념의 한계 내에서의 그것이었다. 그 파트롱들이 점차로 부르주아지라고 불리는 새로운 계급에 의해 해체되기 시작하는데, 그 해체를 상징적으로 확인한 것이 프랑스 대혁명이다." 즉 글쓰는 사람들은 특히 프랑스 대혁명을 계기로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보급하는 역할"로부터 벗어나 "권력에 맞서거나 대항하기 시작한다."

한 마디로 '책'은 "사건을 기록하는 수동적인 매체일 뿐 아니라 사건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 시작한다. 권력에 맞서거나 대항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을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책 중 하나가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이다.

사실 이 책은 애초부터 그럴 요량으로 쓰여졌다. 루이 16세가 전국신분회를 소집했을 때 시에예스는 제3신분의 요구가 관철되려면 단지 대표수를 늘리는 방식으로는 역부족임을 간파한다.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던 그는 제3신분이 사회에서 갖는 위치를 점검함으로써 그 답을 찾는다.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에 답하고, 문제 상황을 돌파하는 해결 방안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 책은 그 결과물로서 나온 소논문이다. 이 책이 당시 사람들의 요구에 즉각적으로 필요한 글이었다는 것은 이 책이 1789년 1월초 출간 직후 몇 주 만에 3만부 이상 팔려, 4판까지 발행되었다는 데서 입증된다. 더욱이 3판까지는 익명으로 출판되었음에도 당시 '화제의 신간'이었던 걸 보면, 내용이 갖는 시의적절함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제3신분은 국민의 일부가 아니라 국민의 전부

▲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E J 시에예스 지음, 박인수 옮김, 책세상 펴냄). ⓒ프레시안
시에예스는 사제도 귀족 신분도 아닌 평민들로 이루어진 제3신분이 익명의 피치자집단에 불과하다는 통념부터 거부한다. 제3신분은 '성직자와 귀족을 제외한 국민' 즉 '국민의 일부'가 아니라 '국민의 전부' 즉 모든 국민이라는 게 이 책의 주된 논점이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개인적·공적 활동 모두를 제3신분이 도맡아 하고 있다는 게 그 근거이다. 농업, 수공업 및 산업, 유통업 및 상업, 마지막으로 학문 활동과 가사 활동 등 생존과 번영에 필요한 일을 하는 건 제3신분이다. 게다가 군사·법률·종교·행정의 공적 활동 또한 제3신분이 담당하는 반면 특권 신분들은 높은 수입을 얻는 지위나 명예직을 독점하고 있을 뿐이다. 즉 사회유지에 필요한 일체의 일들을 제3신분이 꾸려가고 있으니 제3신분이 국민이다. 귀족이 없어도 사회가 유지될 뿐더러 귀족이 없을 때 더 나아진다는 게 시에예스가 주장하는 바였다.

"국민이란 동일한 입법부에 의해 대표되며 공통의 법률 하에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집단"(23쪽)을 말한다. 그러나 귀족 신분은 '동일한 법'으로부터 벗어난 특권층이므로 '국민'에 속하지 않는다. 국민과는 별개의 집단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귀족층이 공무의 고소득 명예직을 독점하고 있다는 게 문제이다. 국민의 이익과는 별개의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고로 그들은 개인 혹은 집단의 이익을 추구하지 국민의 이익을 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회에 필요한 일도 하지 않으면서 고소득 공무 요직을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익만을 채운다는 귀족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당시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것이었다. 시에예스의 저작의 힘은 제3신분을 국민 전체로 논증하는 데 있다. 즉 귀족은 국민이 아니니, 제3신분만으로도 '국민의회'가 성립함을 밝혔다는 게 이 책이 갖는 효력이다.

실제로 이 책이 출간된 지 약 5개월 후 1789년 6월 17일 제3신분 대표자들은 자신들의 모임을 '국민의회'라고 선포하면서 이제 '국민의회'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세금도 징수할 수 없음을 공표한다. 사실 제3신분의 독자적인 '국민의회' 선포야말로 혁명적인 일로 평가된다. 그리고 이것은 시에예스의 제안에 힘입은 바 크다.

국민의 '공통 이익'에 근거한 혁명의 운명

그러나 익히 알다시피 이후의 궤적은 프랑스 혁명이 갖는 부르주아지 혁명으로서의 한계를 드러낸다. 어쩌면 "혁명(가)란 일단 성공하면 어느새 정치(가)로 변해버린다"란 자조 섞인 통념은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시사된 것이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그리고 성공한 혁명이 정치로 변해버리게 되는 건 프랑스 혁명의 예고된 운명이자 이 책(저자)의 예고된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불이 <프랑스대혁명사>에서 지적한 바에 따르면, 부르주아지로 대표되었던 '제3신분'은 이따금씩 '제4의 계층'으로 불렸던 도시와 농촌의 수많은 민중의 힘을 빌렸음에도 이들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부르주아 인사들의 일련의 선전전술들은 오직 그들의 이해관계와 대립된다는 이유에서 특권을 폐지하려는 '가진 계급'의 여망을 반영했을 뿐 노동자, 농민, 장인 계층의 운명에는 관심이 없었다. 즉 민중의 봉기가 부르주아지의 승리를 확고하게 했지만, 파리 시민의 힘을 빌어 군주제에 승리한 국민의회는 민중에 의해 좌우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했으며 그 후 절대주의만큼이나 민주주의를 경계했다.

부르주아 인사들의 일련의 선동 전술들이 가진 자들의 이익과 대립된다는 이유로 귀족층의 특권을 폐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는 소불의 지적은 시에예스의 이 책자를 겨냥한 듯 보인다. 시에예스가 그토록 강조했던 '국민 공통의 이익'이란 단지 특권층과 대립하는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의미했던 것이다. 소불의 저 지적은 이미 프랑스 혁명 시기에서부터 '제3신분'의 테두리에 묶여있던 자들의 이익이 일치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자신들이야말로 '국민'이라고 내세울 때는 농업 및 산업 현장의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는 자들이 제3신분이라는데 근거했음에도, 막상 그들의 대표로 선출된 부르주아지들은 농민과 노동자 수공업자들의 이익을 외면했다는 사실은 '공통이익'의 정체를 누설한다. 신분적, 태생적 특권층인 귀족의 이익 앞에서만 제3신분은 '공통이익'으로 묶일 수 있었다는 것. 제3신분을 공통이익으로 묶어주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특권층의 이익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다시 말해 귀족층이 사라지면 공통이익 역시 사라지고, '공통이익'으로 묶였던 '국민'의 경계가 흔들린다. 제3신분만 놓고 보면 제3신분은 이미 그 안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등으로 갈리게 된다. 즉 제3신분임에도 때때로 '제4계층'이라 불렸다는 노동자, 농민, 수공업자들의 이익은 부르주아지의 이익과는 이해관계를 달리함으로써 제3신분 내부적으로 볼 때는 단일한 '국민의 이익'으로 통합될 수 없었다.

시에예스에게 사실상 국민주권이란 부르주아지의 이익관철을 의미했다. 이는 특히 국민을 대표할 자격에 대해 논하는 대목에서 잘 드러난다.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있는 자는 국민의 이익을 대리하는 자여야만 한다. 선거를 통해 국민 공통의 대표를 뽑는 게 유의미하려면 그 대표가 국민의 이익을 책임지고 대리할 때라야 명실상부하다. 그리고 그 때에야 비로소 제3신분이 아닌 국민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리하는 대표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

국민의 대표가 '국민 공통의 이익'을 대리하는 대표가 아니라면 국민은 대표를 갖지 못한 것이므로 그저 제3신분일 뿐이다. 그것을 시에예스는 아무것도 아닌 것 즉 '무'라고 규정했으며 제3신분은 이전까지 무였다고 단정한다. 대표의 자격을 따진 것은 그가 보기에 귀족이 아닌 제3신분 안에도 대표자격이 없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봉건 영주에 종속된 법률, 세무, 행정 관계자들 및 보증인들이 그들이다. 시에예스가 이런 자들을 논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책을 통해 우리는 과거에 인민의 집안에서는 아이들이 고된 훈련이나 고난도 훈련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이 아이들을 단련시키는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우리 제3신분 중 가장 약삭빠른 집단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명예롭거나 사회적이지는 않지만 대단히 효과적인 교육을 통해 권력 있는 인간들에게 헌신하고 아첨할 것을 강요받는다. 애석하게도 전체 국민 중 이러한 부류가 거대한 하나의 전위 부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으며, 주인이 명령하거나 행하는 것에 끊임없이 몰두하면서, 행복을 누리는 것을 대가로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있다. (…) 귀족 정치를 가장 뻔뻔스럽게 옹호하는 자들은 제3신분 계층 내에도 존재할 것이며, 재능은 뛰어나나 영혼이 빈약하게 태어난 탓에 귀족들의 칭찬, 권력, 출세에는 급급하지만 자유의 가치는 느끼지 못하는 그런 사람들 속에도 존재할 것이다." (39쪽)

대표를 뽑을 때는 돈주머니(생명줄)를 쥔 자가 누구인지를 살피라는 말이다. 그가 만약 귀족에게 고용된 자라면 그들 편을 들지 제3신분의 이익은 안중에 없다. 그래서 귀족들에게 고용살이하는 자들 특히 법률, 세무, 행정가들의 경우 피선거자격인 대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는 게 시에예스의 통찰이었다. 바꿔 말하면 특권층의 이익이 아닌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잘 돌볼 자인지 아닌지가 시에예스가 제시한 국민 대표의 자격 여부였다.

시에예스의 진단과 처방을 현재 시점에 단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런 함정을 피하면서, 2009년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의 책이 주는 유효함과 시사점을 살피려면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프랑스 혁명이 갖는 한계는 차치하고, 간접민주주의 즉 대의제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대표'를 갖지 못하는 이들은 '무'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히 한 그의 지적만큼은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1789년 당시 혁명 전야에서 제3신분의 요구를 인간의 권리라는 측면으로만 여겨서는 안 되며 오히려 제3신분은 자신의 요구를 대단히 양보하고 있는 거라던 시에예스의 지적은 유효했다. 실제로 제3신분이 나라의 주인인데, 요구를 할 입장인가라는 일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만 공통의 대표 내지 공통의 이익 대변자라는 데 준거해서 '주권자'라고 주장했던 그것이 과연 '인권'보다 더 멀리 나간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시에예스는 서두를 이렇게 시작했었다.

"철학자가 진실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가 너무 멀리 나아가는 것을 비난하지 말라. 그의 직무는 목적지를 알려주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목적지에 이미 도착해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도상에 있으면서 감히 자신의 깃발을 들어 올린다면, 그 깃발은 기만적인 것이리라."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