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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승' 서민 '패'…이 뻔한 레이스를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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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승' 서민 '패'…이 뻔한 레이스를 해야 하나?"

[왜 나는 자율형 사립고를 반대하는가]

이명박 정부와 교육 관료들의 교육정책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의 솔직한 마음은 '초중고 학교를 없애고 사설 입시학원에 교육을 맡기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울타리를 없애고 학교를 진짜 입시학원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이들의 궁극 목표라는 생각.

'설마 그 정도일까?' 라는 의구심은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입시성적으로 학교의 서열을 매기고, 비싼 납입금을 부담할 수 있는 계층에게는 그에 맞는 고급 교육을 제공하고 그런 능력이 없는 계층에게는 최소한의 형식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공립학교도 사설 입시학원에 위탁운영하고 싶은 것이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정부의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자율형 사립고 전환 사업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사립이든 공립이든 고등학교가 '입시학원'이 아니라 '학교'인 이유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등록금도 있지만 절대 액수는 국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원금 없이 학생들의 등록금(학원비)만으로 운영되는 것이 학원이니까.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와 다른 이유는 사립학교 재단이 학교에 재정적으로 기여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학교 설립할 때의 재정 기여와 재단 전입금제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사립학교의 재단전입금 비율은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이다. 대략 한국 사립 중고등학교의 경우 학교 재정에서 국고 지원금과 학생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95%를 넘는다.

현재 국내 사립학교는 사학재단의 재정 기여가 아니라 국가 지원금과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실상의 공립학교인 것이다. 그러나 지난 사립학교법 분쟁 때의 태도에서 드러나듯이 사립학교 재단은 쥐꼬리만한 재단 전입금을 부담하지도 않으면서 권리는 학교가 100% 사유재산인 것처럼 행사하고 싶어한다. 이런 걸 속된 말로 '도둑놈 심보'라고 한다.
▲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자사고 대응 공동행동 집회. ⓒ뉴시스

더 가관의 모습이 자율형사립고 추진과정에 드러나고 있다. 일반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한 규정이 재단전입금 비율이 학생 납입금(수업료+입학금) 대비 5%(광역시)와 3%(광역도)로 규정하고 있다. 자율의 권한을 누리기 위한 최소한의 재단 의무사항이라는 의미인데, 사실은 그 반대이다. 재단의 의무를 규정한 것이라기보다는 재단의 전입금 규모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수업료와 각종 경비 부담을 무한대로 지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게다가 자율형 사립고 관련한 법적 근거인 학생 납입금에는 수업료와 입학금만을 규정하고 있어서, 급식비 기숙비 등의 각종 본인부담금류의 경비를 포함시키면 학생과 학부모들의 부담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결국 자립형사립고는 학비로 1년에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계층에게만 열려 있는 학교이고, 평범한 서민들의 자녀에게는 꽁꽁 닫힌 귀족학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영국의 이튼스쿨 같은 귀족형 사립학교는 '우리들의 학교'가 아니라 '그들의 학교'이듯 자립형사립고도 '우리가 아니라 그들만의 학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자율형사립고의 '자율'이 의미하는 것은 학생 수업료을 '자율'적으로 책정하고, 학교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 귀결이 무엇일까? 학생들의 처지와 조건에 맞는 다양하고 자율적인 교육계획을 세우고, 획일적인 입시교육이 아니라 학생들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능력을 발굴하기 위한 자율교육이 될까? 아니면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교육과목과 과정을 과감하게 배제하고 입시준비를 가장 효과적 효율적으로 준비하는 고급 입시학원형 교육을 위한 자율이 될까? 당연히 후자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이다.

작년 경제위기 이후 양극화가 더 심해진 분야의 하나가 교육이다. 고용과 실업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가정의 수입구조가 열악해지거나 불안해지고, 가계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는데 그 1순위가 아이들의 사교육비이다. 상위소득 10%와 하위소득 10% 사이에 교육격차는 원래 심각했는데 경제위기 이후 더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공교육이 마지막 희망의 버팀목인데, 이 공교육의 공간마저 소득과 재산으로 순위와 서열을 매기겠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골품제도가 부활하는 것이다. 성골과 진골에게는 골품제도가 얼마나 멋지고 환상적인 제도였겠는가. 그러나 6두품 이하의 계층에게 골품제도는 절망과 증오의 장벽일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능력이 되는 소수의 계층에게 자율형사립고와 같은 고급학교, 엘리트학교는 사회적 지위와 출세를 보장하는 안전하고 멋진 그들만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대다수의 학생, 학부모들에게 절망과 차별과 자포자기의 거대한 장벽이 될 뿐이다.

교육문제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학교교육, 사교육, 입시, 영어교육 등 교육의 쟁점과 이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성의 이건희부터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교육은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자식, 내 아들·딸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 첨예한 교육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의 주류와 기득권 세력이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해법은 단 '한 가지'이다. 어릴 때부터 경쟁체제에 돌입하여, 내 옆 친구보다 더 많은 사교육을 받고, 더 입시 준비를 철저하게 하여, 친구와의 성적 경쟁을 이겨서 좋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우리를 세뇌시키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경쟁에서 이길 것이고 누군가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다 알고 있다. '이건희 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들 중에서 누가 이길 것인지를. 그런데도 이 뻔한 경쟁의 레이스를 해야만 하는가? 내 아이들이 같은 반 친구와 경쟁에서 이기지 않고도, 일제고사 점수를 비교하지 않고도, 입시성적 1, 2점에 목숨을 걸지 않고도 훌륭한 한 사회의 시민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대접받을 수 있는 다른 길, 다른 해법은 없을까? 승부가 뻔히 정해진 부자'승' 서민'패'의 경쟁이 아니라 다른 교육의 해법을 찾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고민이고 실천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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