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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행보?…MB "대형마트 규제 안된다"는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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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행보?…MB "대형마트 규제 안된다"는 '거짓말'

"'일회성 쇼'가 아니라 '정책'을 보여달라"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서민 행보'를 보면서 문득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어떤 고집이 생각났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 재래시장을 찾는 등 소위 민생시찰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지율과 이미지 제고를 위해 참모진들이 민생 현장을 찾아 서민들을 다독이는 모습을 연출하자고 제안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단호히 거절했다. '쇼'는 하지 않겠다는 고집이었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이 할 일은 서민들을 찾아 등을 두드리고 손을 잡고 위로하는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라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라고 노 전 대통령은 강조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25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의 재래시장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지역 상인들 20여 명과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서민들의 앞으로 1-2년 더 고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면서 경제위기를 맞아 더 어려워진 서민 경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시장을 둘러보며 토마토 4000원 어치, 어묵 5000원 어치, 뻥튀기 2000원 어치 등을 사기도 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정작 소상인들이 자신들에게 절실한 정책인 '대형마트 규제'를 요청하자 "안 된다"고 면전에서 내쳤다. 이 대통령은 "마트가 못 들어서게 하는 것은 법률적으로 안 된다"며 "정부가 그렇게 시켜도 재판하면 패소한다. 이길 수가 없다"고 밝혔다.

재래시장을 찾은 이 대통령은 상인들의 손을 잡고 따뜻한 말로 위로를 하고 매상에 일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정작 대통령만이 해줄 수 있는 영세상인들을 위한 정책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잘랐다.

이 대통령의 말처럼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야당 뿐 아니라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관련법 개정안을 제출해 놓았고, 대형마트 규제를 촉구하는 대정부 결의안도 내놓았다. 국회는 오히려 적극적인 자세다.

또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일본, 이탈리아, 벨기에 등 선진국들은 이미 대형마트의 입점 및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정말 영세상인들을 돕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제고할 여지가 있는 정책이다. 영세상인들 앞에서 대놓고 대기업들의 편을 들어준 셈이다. 바로 이런 지점에서 이 대통령의 '서민 행보'의 진정성이 의심받는다.

▲ 25일 재래시장 상인들과 점심을 함께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뉴시스

여야 의원 22명, '대형마트 규제' 대정부 결의안 제출

물론 이 대통령이 "법으로 안된다"고 말한 배경은 있다. 대형마트 규제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이 최근 대형마트 규제가 '영업 자유'와 '소비자 권익'을 침해한다면서 규제를 할 경우 소송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대형마트들도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하지만 WTO 규정 위반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WTO 전문에서 내외국인 차별 없는 정당한 국내규제에 대해 인정하고 있다. 현재 민주당(이시종, 김희철, 이용섭), 민주노동당(이정희) 의원들만이 아니라 한나라당 최구식, 주성영 의원 등이 대형마트 규제 방안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도 이런 해석에 의거해서다.

이정희 의원실 정경윤 보좌관은 "공정하고 객관적인 심의 기준이 있으면 대형마트 입점을 허가제로 운용하는 것은 WTO 규정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이정희 의원을 비롯해 한나라당 의원들까지 내놓은 개정안의 핵심 내용은 다양한 전문가들이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해당 지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오는 것이 맞는지, 안 맞는지 심의위원회를 꾸리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당 이시종 의원 등 여야 의원 22명은 25일 대형마트 규제를 위한 '대정부 촉구결의안'을 제출했다. 의원들은 "정부는 대규모점포의 개설과 영업시간, 의무휴업일수 등 영업행위를 제한해야 한다"며 "이 같은 제한을 위해 WTO에 수정양허안을 제출하고 재협상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중소상인을 보호해야하는 것은 헌법 119조가 규정하고 있는 의무 사항이며, 국제법이나 국내법상으로도 국제협정으로 인해 특정품목의 국내 피해가 클 경우 재협상을 시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주장이다. 정부가 대형마트의 규제에 대해 WTO 규정을 들어 뒷짐 지고 있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는 얘기다.

대형마트 없는 파리…독일의 '10% 가이드 라인'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나라는 하나도 없다"는 정부와 대기업의 주장과 달리 실제 많은 나라들이 법과 조례 등을 통해 대형마트 영업을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전국에 걸쳐 300㎡(100평) 이상의 모든 중대형 마트 입점시 엄격한 허가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 프랑스 파리에는 대형마트가 1개도 없다. 또 영업 시간 규제도 하고 있다. 일요일에는 폐점해야 하며 토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만 개점이 허용된다.

독일은 대형마트가 들어서기 전에 기존의 상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측조사를 해서 인근의 소규모 상가들이 기존 매출의 10%가 넘는 타격을 받을 경우 출점할 수 없도록 하는 '10% 가이드라인'이 있다. 영업시간도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폐점해야 하며 평일, 토요일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만 개점할 수 있다.

이탈리아, 영국, 일본 등도 대형마트 영업시간에 대해 일정한 규제를 하고 있다.

"대기업 위해 중소상인들 버리겠다는 것 아니냐"

또 중소상인들은 WTO 규정을 건드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도 얼마든지 규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국상인연합회 신근식 대형마트 규제위원장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는 5개의 규제 중 2개 항목은 국내법 차원에서 충분히 가능하다"며 △대형마트 입점 결정에 지역주민과 상인 등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대형마트 출점 전에 이에 대한 영향평가서를 자치단체에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 등을 현 수준에서도 가능한 규제로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현재 정부에서 생각하고 있는 규제는 규제가 아니고 대형마트 출점 속도를 조금 늦추는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WTO 때문에 힘들다고 하지만 다른 나라들은 입점규제, 영업시간 규제 등을 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정부가 속내를 안 밝히는데 자영업자들을 위해 WTO에 재협상을 요구할 경우 관세 혜택 등 다른 혜택이 줄어들 수 있다"며 "수출 대기업들이 피해를 볼 수 있으니까 영세상인들이 당장 생존권을 위협 받아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유통업에 진출한 대기업들이 SSM(슈퍼 슈퍼마켓)을 통해 골목길 상권까지 장악해 600만 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들의 생존권이 박탈된 뒤에도 정부가 WTO 운운하며 나몰라라 할지 의문이다. 정부는 대기업 위주로 수출을 통해 먹고 살아야 하므로 소상공인의 피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 등에 대한 사회환원적 대책을 마련해야 될 것 아니냐. 이제껏 그렇게 정부의 보호를 받고 성장한 대기업들의 덕을 중소상인 입장에서 별로 본 것 같지 않다."

신 위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정부가 확정해서 내놓는 대안과 국회의 유통산업발전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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