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세계경제, 여전히 사방이 지뢰밭"

"한국, 감세 아니라 증세 필요…금산분리 완화 신중해야"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2일 세계경제 상황에 대해 "영국, 미국 등의 경우 실업률이 계속 오르고 있고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카드 연체율도 계속 떨어지지 않고 있다"며 회복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 교수는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은행(WB) 개발경제 컨퍼런스(ABCDE)' 기자간담회에서 "아주 비관적인 건 아니지만 비관에 가까운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특히 유럽발 금융불안 가능성 등 사방이 지뢰밭"이라며 아직 경기회복을 말하기엔 이르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따라서 현 시점에서 인플레이션에 대비한 '출구전략(Exit Strategies)'을 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나 "출구전략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며 심화되는 재정적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연구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무역 의존도 높은 한국경제, 회복 난망"


한국경제 전망에 대해 장 교수는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무역 의존도가 제일 높은데다 국가 경제수준에 비해 자본시장이 많이 개방돼 있어 외부로부터의 충격이 크다"면서 "세계경제 전체가 회복돼야 한국도 수출이 회복되면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세계경제 회복이 느리게 될 것으로 보고 있어 한국처럼 외부에 민감한 나라가 얼마나 빨리 회복될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대적인 감세정책에 따른 대규모 재정적자 문제에 대해 장 교수는 "경기하강의 골이 깊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재정적자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다만 같은 돈을 쓰더라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 세부담 높지 않아…세금 올려야"


그는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세부담이 높지 않다"며 "장기적으로 사회복지 지출 확대를 위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방침에 대해서도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파생상품 분야 외엔 금융관련 규제가 강한 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는 "론스타와 같은 사모펀드 규제 완화는 안 되며 금산분리도 신중히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한-EU FTA에 대해 장 교수는 거듭 반대 입장을 밝혔다. "수준이 비슷한 나라 간의 자유무역은 서로 자극이 돼 좋지만 한국과 미국, EU는 수준 차가 나므로 좋지 않다"는 게 장 교수의 지론이다.

장 교수는 이어 한국의 현 산업발전 단계로 볼 때 연구개발(R&D) 투자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저임금 경쟁으로 살 수 없으며 지금은 기술로 경쟁할 수 밖에 없다"며 "우리나라는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해 향후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전략에 대해 "방향은 좋지만 갈 길이 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