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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주식 투자 잘해서 수익 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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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주식 투자 잘해서 수익 냈다고요?"

[오건호 칼럼] 국민연금기금이 보내온 편지

난 국민연금기금이다. 나를 떠올리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혹 나 때문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것이 불안한가? 미래 재정이 소진돼 연금을 받을 수 없을까봐 말이다. 이런 예상이 실제보다 과장된 것이라 항상 안타깝지만 어찌되었든 당신들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나를 대견하게 여기며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를 금융시장의 안전판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올해 내 계좌에 있는 돈이 270조 원이다. 국가예산(일반회계+특별회계) 210조 원보다 크다. 이들에겐 자신을 도와줄 정부가 두 개인 셈이다. 이명박 정부와 이 보다 큰 국민연금기금 정부.

오늘은 이 사람들, 나를 보기만 하면 설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하려고 글을 쓴다. 요사이 주식시장이 다시 살아나자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작년 금융위기로 유보되었던 해외투자도 다시 시작될 모양이다.

내가 이익을 낸 것에 긍지를 갖는다고?

▲ 박해춘 연금공단 이사장(가운데)이 최근 다시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 등을 언급하고 나섰다. ⓒ뉴시스
연금공단 이사장이 전면에 나섰다. 그는 역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중에서 유일하게 금융권 출신이다. 서울보증보험 사장, 우리은행 은행장 등을 거친 금융전문가다. 지난 17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작년 욕먹으며 주식 매입해 올들어 14조 원 이익 냈다'고 뽐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 세계 공적연금 300개가 지난해 평균 20% 손실을 기록했는데, 국민연금만 유일하게 166억 원의 이익을 냈다...내 실력이든 운이든 지켜냈다는 데 긍지를 갖고 있다...작년 말 국민연금이 저가 주식을 사들이자 기금 다 말아먹는다는 비판이 거세 정말 외로웠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포에 떨 때가 기회라는 신념으로 저가 매수를 한 결과, 올 들어 4월 말 현재 14조 원의 이익(주식 7조 원, 채권 7조 원)을 냈다" (<조선일보> 6.19)

당신은 이사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무슨 생각이 드는가? 당신의 노후예탁금을 잘 관리하고 있는 그가 믿음직스러운가?

그의 자랑대로 작년 나는 166억 원을 벌었다(수익률은 0.0%).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가치는 그만큼 감소한 것이지만, 당시 금융 상황을 감안하면 선방한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주식투자를 잘해서 만든 성과일까? 정반대이다. 작년 나는 주식투자로 19조 원의 손실을 입었다. 대신 채권에서 19조 원의 수익을 올렸다. 수익률로 보면, 주식투자는 마이너스 40%, 채권투자는 플러스 10%였다. 이렇게 수익률 차이가 컸음에도 손익이 '운 좋게' 균형을 맞춘 것은 아직까지 내가 대부분을 채권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주식투자 비중이 지금보다 더 높았다면? 나는 작년에 채권 수익을 다 까먹고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을 것이다. 주식투자 비중이 높은 외국 연기금처럼 말이다(<표> 참조). 전체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보편연금인 나와 달리 이들의 대부분은 직종별로 조성된 소득비례연금이다. 그만큼 민간펀드를 흉내 내어 고위험 투자에도 나서는 놈들이다.

<표> 주요 연기금의 주식비중과 총수익률 비교 (2008. 단위: %)
▲ - 자료: 보건복지가족부, "2008년 국민연금기금 결산"(2009.3.3) 재구성.









작년에 이사장은 말했다. 꼭 1년 전 취임기념 기자간담회 자리였다. 주식투자 비중을 2012년에 40%로 확대할 것이며, 6%대인 기금수익률을 2%포인트 더 한 8%대로 올리겠다며 공격적 투자를 예고했다.

그의 포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단지 기금운용집행을 위탁받은 관리책임자가 그러한 발언을 할 권한이 있는가라는 월권론에서, 수익률을 높이려면 그만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는 공적연금에 적합하지 않다는 위험론까지. 우여곡절 끝에 이후 주식시장이 폭락하자 주식투자 확대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다소 누그러졌고, 나는 채권 수익 덕택에 최종 손실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국민연금만 유일하게 이익을 내었으므로 실력이든 운이든 긍지를 갖고 있다고? 어처구니가 없다. 사실은 이렇다. 당신의 실력(?)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한 덕택에 그나마 적자를 면한 것이다.

그의 '확신'이 공포스럽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고? 이 말은 맞다. 나도 그랬다. 이러다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 안절부절했다.

난 작년 여름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금융위기 불안으로 주식시장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이 청와대를 다녀왔다. 이후 왠일인지 나의 주식투자액이 크게 늘어났다. 연금공단은 9월초 코스피지수가 1400 수준으로 떨어지자 지금이 바닥이라며 주식을 집중 매입했다.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도 거들었다. "국민연금이 저가매수를 해야만 수익을 많이 낼 수 있고, 지금이 저가 매수할 때라고 생각한다"라고. 이명박대통령도 펀드에 가입하겠다며 주식투자를 독려했다. 두 달간 나는 주식을 열심히 사들였다.

이사장은 말한다. '사람들이 공포에 떨 때가 기회라는 신념으로 매수했다'고. 그래서 주가가 1400선까지 떨어져 국내외 기관투자자가 모두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도 나만 연일 주식을 사야했다. 하지만 주식시장 부양에 동원된 것 아니냐는 의혹 속에서도 주가는 기대와 달리 연말에 1100선까지 내려가 버렸다.

물론 기금운용에서 손실이 날 수도 있다. 최근 3개월처럼 주가가 오를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지금이 바닥이라고 단언하는 '확신'에 있다. 도대체 지금이 최저점이라는 것을 누가 알 수 있는가? 사람들이 공포에 떨 때 선도적 투자를 담당하는 선봉장 역을 민간펀드도 아닌 국민연금기금이 자임하다니. 난 이러한 확신이 공포스럽다.

난 평지에서 자라야 한다

난 나의 주인인 가입자들을 위한 노후예탁금이지 불안한 금융시장의 구원투수가 아니다. 심지어 지금 국회에는 나의 운용을 아예 시장 금융전문가들에게 위탁하는 법안까지 올라가 있다. 이명박 정부가 작년 8월 제출한 것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심의될 모양이다.

정말 너무한다. 내가 개인투자자들의 여유자금으로 모아진 민간펀드는 아니지 않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돈을 따는 것'이 아니라 '위험한 판'에 가지 않는 것이다. 자꾸만 나를 계곡으로 떠밀지 마라. 난 애초 평지에서 자라도록 태어난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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