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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이병철ㆍ정주영식 자본주의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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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더이상 이병철ㆍ정주영식 자본주의로는 안된다"

[인터뷰] 김영호 총장 "현 경제위기의 근원은 자본의 무책임성"

'사회책임 자본주의'. 대공황 이래로 가장 큰 위기라는 평가마저 나왔던 현 세계경제위기 상황에 웬 한가한 얘기냐고 반문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기업의 생존 자체가 오락가락하는 형편인데 '사회적 책임(Social Response)'까지 생각하라는 것은 '도덕군자'나 하는 소리라는 기업인들의 반박도 쏟아질 법하다.

하지만 이는 결코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다. 현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현 경제위기가 주기적 차원의 경기침체 수준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치유를 필요로 하는 시스템적 위기라면 개별 기업이 각자도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일찍부터 '기업의 사회책임'(CSR)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던 김영호 유한대 총장은 1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번지점프 이론'을 주장했다. 여러 번의 등락을 반복하는 번지점프와 마찬가지로 이번 경제위기도 여러 번의 등락 이후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들어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말 끝도 없이 추락하던 경제지표들이 올해 상반기 호전된 것에 대해 김 총장은 "지금은 바닥을 본 후 약간 튀어오르는 시기"라면서 "실물부문에서 회복된 것은 전혀 없다"고 추가 하락을 예고했다.

김 총장은 특히 현 경제위기에 대해 실물경제가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금융경제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 보다 더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변에 자연이 담을 수 있는 실물경제 차원을 넘어선 실물경제의 위기가 깔려있다고 지적했다. '지구온난화'가 단순히 환경 이슈가 아니라 현 경제위기의 매우 중요한 변수로 여겨져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과 인도라는 소위 '세계의 생산기지'들이 제자리를 찾고 미국이 '세계 소비의 블랙홀'로 다시 제 기능을 할 때 현재의 위기가 극복될 것이라는 기대는 단시안적이다. 미국과 중국의 공조 속에 가능했던 현재의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를 넘어선 새로운 질서를 모색해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신흥경제국으로서 한국은 아직 이런 새로운 질서를 주도할 위치가 아니지 않느냐. 현재의 경제 질서가 주는 이익을 끝까지 취한 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강대국들의 움직임에 보조를 맞추면 되지 않겠냐. 김 총장은 단호하게 한국이 이런 새로운 질서로의 전환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한국은 세계적 차원의 공황을 벗어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전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이기 때문.

대공황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뉴딜'로 대표되는 수정자본주의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처럼 현 세계경제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전쟁'은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는 시나리오다. "공황 연구자들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적 차원의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 산업 등의 과잉 문제가 일시에 해소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전쟁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김 총장이 밝혔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국내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취하면서 그 위험성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을 고민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현 경제위기의 근원이 '자본의 무책임성'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치유책은 '자본의 책임성 복원'에 있다.

다음은 김영호 총장과 대담 전문이다. 김 총장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과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한국사무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경제위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워크숍 마지막 날인 19일 오후 박인규 <프레시안> 대표와 대담을 가졌다.


▲ 김영호 총장은 19일 오후 박인규 대표와 대담을 가졌다.ⓒ프레시안

SR, 책임이 중요해진 시대

프레시안 : 평소 총장님께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조해오셨습니다. 왜 사회적 책임 입니까?

김영호 : 먼저 작년 9월 <프레시안> 7주년 강연 때 말씀드린 내용을 되짚어보지요. 당시 미국발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 제가 겁 없이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고 이게 서로 악순환되는 구조가 이어졌는데, 기본적으로는 기업과 금융권 등이 무책임했던 게 근본 원인이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근본적으로는 각 경제주체의 무책임성을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니 위기의 회복 역시 책임성을 회복해야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앞으로 세계 경제는 사회책임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저는 봅니다. 지금의 위기가 또 어떻게 흘러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제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프레시안 : 오늘 서울선언이 있었습니다. 각각의 경제적 현실과 입장이 다른 나라들이 모여서 공통된 목소리를 낸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김영호 : 그렇지요. 이 논의가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점차 고조화되다 보니까 '인류 공통의 코드', 즉 국제적인 기준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한 10년 전부터 나왔지요. 그러다가 2005년 3월에 국제표준화기구(ISO)에서 사회적 책임 국제표준 제정을 위해 본격 작업이 시작됐고, 점차 가맹국가가 늘어나면서 지금은 100여 개 국가에 이르렀어요. 웬만한 세계 선진국은 모두 가입했다고 보시면 되지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공통 규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지난 4월 열린 회의에서 사실상 규범이 만들어졌습니다. 불과 5년 만에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류 공통의 규범이 만들어진 것이지요. 이걸 우리가 'ISO26000'이라고 부릅니다. 내년 봄 코펜하겐에서 이와 관련된 선언이 이뤄지면 정식 효력을 지니게 됩니다.

프레시안 : ISO26000은 처음 논의됐던 CSR을 벗어나 사회 책임(SR), 즉 보다 넓은 규범을 세웠습니다.

김영호 : 처음 논의될 당시는 주로 기업을 주대상으로 꼽아 사회 책임을 활발히 논의했습니다만, 문제 의식이 점차 생겼어요. 수많은 국가, 수많은 단체들이 다 참가하다보니 "기업만 사회적 책임을 지는 것은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 거지요.

결국 사회 책임의 대상이 총 6개 집단, 즉 정부·산업계·노동계·소비자·비영리단체(NGO)·기타로 넓어졌어요. 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가 일정한 사회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말 그대로 인류 공통의 규범을 세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CSR이 SR로 된 거지요.

지난 80년대 이후 자유에 대해 "모든 규제가 필요없다"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가 일어났지요. 이제 앞으로는 '책임'이 더 강조될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페러다임이 바뀌는 아주 중요한 사건입니다.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CSR 워크숍에는 각계각층의 많은 이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연합뉴스

"SR 총회 여는 나라가 SR에 반대해서 부끄럽네요"

프레시안 : 얼마나 구속력을 가질지 의문입니다. 개별 국가의 각기 다른 법률을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로 ISO26000이 강제력을 갖고 있습니까?

김영호 : "강제조항이 아니다"라고 ISO26000이 딱 명시하고 있습니다. 안 지켜도 돼요. 환경파괴하고 싶은 나라, 기업은 이 조항 신경쓰지 말고 이전에 하던 대로 계속 하면 됩니다.

그런데, 교통질서 지키기를 예로 들어보지요. 옛날에 교통규범이 생소할 때는 무단횡단이나 과속행위 같은 것들 안 지키는 사람이 많았어요. 점차 안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돼 가고 있지요. ISO26000도 마찬가지예요. 점차 이 규범을 안 지키면 지구에서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기 힘든 상황이 옵니다.

사회 책임을 지는 좋은 기업에 투자하자는 사회책임투자(SRI)가 대표적이지요. ISO26000에 대비해 기업들이 보고서를 내고 있어요. 작년말에는 75개 정도가 나왔지요. 그런데 이를 참고해서 투자의사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기업에만 투자하겠다는 돈이 있다는 거지요. 이 돈의 규모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현재 SRI 펀드 규모가 5조 달러 정도 됩니다. 헤지펀드보다 더 많아요. 이렇게 많은 돈이 기업들 보고 "사회적 책임을 다 하시오"하면서 감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야지요.

프레시안 : 한국은 올해 3월 열린 ISO 국제표준에 대한 초안을 결정하는(DIS) 온라인 투표에서 미국, 중국 등과 함께 반대표를 많이 던졌습니다. 이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사회적 책임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국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당장 지난 대선에서도 일부 보수적 대권후보들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인식을 보였고요. 기업들 역시 '기업의 본업은 최대한의 이윤 추구'라는 이유로 사회 책임에 부정적인 인식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적 책임이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회의적인데요.

김영호 : 그런 경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지난 총회에서 한국의 6개 집단 중 4개 집단이 온라인 찬반 투표에서 반대표를 행사했지요. 제가 지난 시드니 총회에서 교토의정서처럼 서울의정서를 만들기 위해, 곧 서울선언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는데요, 당시 의장이 저한테 이메일로 항의를 하더라고요. "아니, 총회까지 유치하려는 나라에서 반대를 하면 어떡하느냐"고 하는데 얼굴이 벌개지더군요.

안타까운 부분이에요. 벌써 일본과 비교가 되지요. SRI 펀드가 일본에는 계속 유입이 되는데 한국에는 안 들어옵니다. 이미 들어온 SRI 펀드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한국 기업을 보면 불투명하고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요. 아직은 발등의 불이라는 생각이 안 들 수 있겠지만 머잖아 우루과이 라운드보다 더 큰 문제가 될 겁니다.

기업인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사회 책임이 이윤을 배격하고 자선사업이나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걸 이윤창출의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해야 해요. 당장 사회 책임에 보면 이윤창출도 중요한 항목으로 꼽혀요. 앞으로는 경제적·사회적·환경적 책임을 모두 지는 기업만이 지속가능한 시대가 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이제 환경에 대한 책임을 기업이 져야 합니다. 저탄소배출 제품을 만들어야 팔리니까요. 소비자들도 이걸 더 평가해줘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잘 팔리는 물건을 만드는 기업에 자본이 투자되겠지요. 그 뿐입니까. 정부도 조세 혜택을 주고 연구개발을 지원해주지요. 이처럼 사회적 책임을 지는 기업에 유리하도록 환경이 조성되니까 참여하시라는 겁니다.

"CSR은 이윤 창출의 새로운 방식"

프레시안 : 과연 정말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기업에 투자를 하려고 할까요? 같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이 둘 있다면 당연히 열악한 노동조건과 환경을 오염시키는 공정을 가졌더라도 최소 비용으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투자하는 게 자본으로서는 합리적 의사결정인 것 같은데요.

김영호 : 노르웨이를 한번 예로 들어볼까요. 그 나라 연기금 전체 규모가 2000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런데 이 돈 전체를 SRI펀드로 돌려버렸어요.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기업에만 투자하겠다는 거지요. 연기금처럼 큰 손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감시하는데 기업들도 당연히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 하려고 하겠지요. 한국도 오는 2012년부터 국민연금이 SRI로 갑니다. 한국의 투자환경도 바뀌는 겁니다.

통계가 이미 나와 있어요. CSR을 잘하는 기업의 수익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일반 투자회사들도 ESG, 곧 환경과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가 투명하게 잘 유지되는가를 투자 기준으로 넣는 곳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한국거래소에서도 이번 9월부터 ESG 원칙을 적용하지요. 관련 지표(SRI Index)를 만드는 작업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프레시안 : 기업인들은 당장 "반기업정서부터 좀 없애달라"고 정부에 호소할 것 같은데요.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국민들의 반기업정서가 너무 강해서 문제라는 말씀들을 실제로 기업 현장에 계신 분들께서 많이들 하십니다.

▲ 김 총장은 한국의 '반기업 정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게을리한 기업의 문제라고 진단했다. ⓒ프레시안
김영호 :
우리나라에 반기업정서가 높은 이유가 이제껏 사회적으로 져야 할 책임은 안 지고 돈벌이만 해서 그런 겁니다. 이병철·정주영 식의 자본주의가 그 동안 한국에서 굉장히 성공했는데 이 자본주의는 사회적 책임은 안 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자는 거였어요. 이게 반기업정서를 키운 겁니다.

이제는 이런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자본주의로 전환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기업사랑 정서를 얻어야지요. 저는 이런 새 자본주의를 '흥부자본주의'라고 부릅니다.

프레시안 : 일각에서는 지금처럼 경제위기 상황에 사회적 책임 운운하는 건 너무 태평한 소리 아니냐는 불평도 있습니다. 당장 살아남는 게 급한데 언제 사회적 책임까지 지냐는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 것 같은데요.

김영호 : 그런 소리가 있지요. 제가 금년 초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했는데 거기서도 "지속성(Sustainability)보다 생존(Survivability)이 더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일단 생존을 위해 지속가능성을 버리자는 거지요.

그런데 지금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이 정부 돈은 납세자에게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 생존의 대가로 기업이 납세자에게 책임을 더 많이 져야 맞는 거지요. 이제 앞으로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나면 기업이 납세자에게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합니다.

"지금은 번지점프 직후 튀어오르는 시기"

프레시안 : 경제위기 얘기를 조금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비관적인 전망을 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영미식 자본주의는 이제 끝났다"는 말도 나왔지요. 하지만 최근 회복기미가 보이자 어느새 반성의 목소리는 완전히 사라진 느낌입니다.

김영호 : 제가 흔히 '번지점프 모델'을 자주 설명드리는데요, 지금 상황이 이와 같아요. 지금은 바닥을 본 후 약간 튀어오르는 시기입니다. 곧 다시 추락하지요.

1929년 대공황 때는 이런 오르내림이 네 번 있었어요. 적은 규모의 위기가 와도 한 두 번은 이런 모습을 보입니다. 저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앞으로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또 자본주의의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점차 더 힘을 얻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프레시안 : 대공황에 비해 각국 정부가 빠른 대응을 했고, 공동으로 재정정책을 과감히 했기 때문에 더 이상 큰 위기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은데요.

김영호 : 실물부문에서 회복된 게 전혀 없잖아요. 이제까지 정부가 그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게 금융부문이에요. 아직 신규투자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어요.

말이 나온 김에 최근 위기 판단에 대해 아쉬운 부분을 조금 얘기하도록 하지요. 요즘 언론 보도를 보면 최근 위기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없어요. 전부 '미국의 전문가 누구가 이렇게 말하더라'는 소리밖에 없지요. 남의 말만 듣고 따라가기만 해서는 안 돼요.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위기를 판단해야지요. 그래야 우리 정책이 설 자리가 있어요.

스티글리츠, 크루그먼 등 세계 유수의 경제학자들이 현 위기에 대해 실물경제와 금융경제 사이의 관계에 주목해 '이중의 위기'로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는 경제위기는 기본적으로 △자연환경이 담을 수 있는 경제 △자연법칙을 넘어선 실물 경제 △실물경제가 수용할 수 없는 금융 경제 이렇게 세 가지 사이의 관계로 나눠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실물경제가 자연이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폭발할 때, 여기에 실물경제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금융경제가 발달해 버려 현재의 위기가 왔다는 것이지요. 지금 경제위기를 두고 파생금융상품을 들면서 실물경제를 금융경제가 너무 앞서나가 버렸다는 점만 다들 꼽고 있는데요, 실물경제가 자연환경을 파괴시킨 측면도 봐야 합니다. 그래야 위기의 진짜 치유책이 나오지요.

▲ 김영호 총장은 현 위기의 주범으로 미국, 종범으로 중국과 일본을 지적하면서 '사회책임 자본주의'를 그 대안으로 꼽았다. ⓒ프레시안

"사회책임투자를 강화해야만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어"

프레시안 : 현재 금융위기의 해소 전제로 많은 전문가들이 세계의 생산기지인 중국의 회복, 그리고 이를 소비해줄 미국의 회복을 중요한 전제로 꼽고 있는데요. 교수님 말씀을 들으면 이 '자연스러운 경제' 파괴 매커니즘을 세계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모델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인가요?

김영호 : 나는 이번 금융위기 주범은 미국이라고 봐요. 그리고 미국이 생산은 안 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돈을 준 중국과 일본은 종범이지요. 저는 지금 위기의 대안이 결국 사회책임 자본주의라고 봐요.

대공황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면 대략 세 가지 면에서 큰 변화가 왔어요. 체제의 변화, 새로운 산업의 등장, 그리고 전쟁입니다.

먼저 대공황에 대한 반성으로 수정자본주의가 대두했지요. 그리고 대공황 말기에 전자산업과 엔진기술부문에서 혁명적인 변화가 도래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가 있습니다. 전쟁이에요. 2차 세계대전이 미국이 대공황 후유증을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지요.

지금 위기에 한번 대입시켜 보지요. 수정자본주의 논의는 지금 활발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새로운 산업은 곧 사회 책임을 지는 저탄소 산업, 즉 녹색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전쟁을 보면 현재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요. 공황 연구자들의 시각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이 터지면 세계 반도체 과잉문제가 단박에 해결됩니다. 핸드폰과 자동차 부문도 마찬가지지요. 저는 사회책임투자를 강화해야만 전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봐요.

내가 옛날에는 앞서 말한 '흥부'를 죽이는 데 앞장섰어요. 흥부가 부잣집 아들이면서도 놀부한테 재산을 다 뺐겨서 멍청하다고 욕했지요. 그런데 지금은 흥부를 살리자고 앞장서고 있습니다. 제 실수에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흥부는 젊을 때부터 동네 굳은 일을 다 도맡아서 하던 사람의 전형이에요. 지역사회에 책임감을 가졌던 사람이지요. 사회적 책임이라는 게 이런 겁니다.

앞으로 착한 돈이 오는 시대가 열립니다. 착한 기업이 좋은 물건을 생산하고, 여기서 나오는 세금은 착한 소비자가 메워줍니다. 그리고 착한 노동이 들어서고 착한 정부가 이들을 살펴줍니다. 착한 돈을 번만큼 배당은 더 많아지지요. 이게 21세기 새로운 시장경제가 될 겁니다. 저는 그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더이상 형식적 겉치레가 아니다"

'경제위기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 워크숍 참가자들은 19일 '서울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현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자본의 무책임성'을 지적하면서 이는 단기적 성과주의와 주주가치 자본주의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단기적 경제성과가 최우선 순위에 놓이면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은 부차적 가치로 전락했고 주주가치 중심의 일방적 논리는 이해관계자 가치를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격하시켰다"면서 "이제 무책임성에 기인한 경제위기는 기업의 책임성의 복원을 통해 근본적으로 극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게 형식적 겉치레가 아니라, 실천적 과제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며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가치가 단기적 경제성과의 부속물이거나, 수단의 범주에 머무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금융위기를 불러온 투자은행들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사람, 환경, 이익의 가치가 동시에 존중되는 기업문화를 발전시킬 것을 촉구했다.

다음은 서울선언 전문.

서울선언

미국 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미증유의 경제 공항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철학과 원칙에 주목한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복잡다기한 원인들의 근원을 파고들면 우리는 '자본의 무책임성(Irresponsibility)'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투자은행 등의 탐욕적이며 단기적인 이익추구는 탐욕의 확대 재생산 기제를 강화시킨 반면, 사회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 대한 책임성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무책임한 행동'은 경제적 단기업적주의 및 주주가치 논리와 결합하면서 정당화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단기적 경제성과가 최우선 순위에 놓이면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들은 부차적 가치로 전락했고, 주주가치 중심의 일방적 논리는 이해관계자 가치를 목적달성의 수단으로 격하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 전세계는 혹독한 경제사회적 시련을 겪고 있다.

이제 '무책임성'에 기인한 경제위기는 '기업의 책임성(Corporate Responsibility)'의 복원을 통해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때다. 경제의 패러다임이 크게 변모하는 가운데 우리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중심이 되어 제정을 목전에 두고 있는 'ISO26000'이라는 새로운 가치의 등장을 직시해야 한다. 또한 이제 더 이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에게 형식적 겉치레가 아니라, 실천적 과제의 문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즉 기업의 환경적, 사회적 가치가 단기적 경제성과의 부속물이거나, 수단의 범주에 머무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환경 및 사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도모하며, 다양한 이해관계자 이익을 배려하는 행동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의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며, 경제적 성과의 견인차가 될 것임을 믿는다. 또한 그것이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인식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금융위기를 불러온 투자은행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환경, 사회, 경제의 세가지 축이(TBL·Triple Bottom Line) 조화를 이루는 사회, 사람. 환경. 이익(3Ps; People, Planet, and Profit,)의 가치가 동시에 존중되는 기업문화를 창조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자 목적임을 자각해야 할 것이다.

이에 금번 CSR 워크샵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다음 다섯 가지 가치의 실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선언한다.

1.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구현하기 위해 환경 및 사회와의 공존공영을 추구한다.

2.환경 및 사회에 대한 조화로운 추구가 기업 경쟁력의 원천임을 확신한다.

3.법과 게임의 룰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경제적 가치의 최적화를 모색한다.

4.단기적 결과와 업적 중심에서 장기적 원칙과 프로세스를 중시하는 기업경영을 실천한다.

5.주주이익을 중시하되, 주주이익이란 이해관계자 이익과 조화를 이룰 때 더욱 확대된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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