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를 들고 박종태 지회장이 목숨을 끊은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까지 가겠다고 경찰과 곳곳에서 충돌했던 그날의 비는 분노였다. 사람이 목숨을 내던진 지 보름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리고 20일 다시 비가 내리던 그곳. 사망 50일을 넘겨 치르는 박종태 지회장의 영결식에 내리는 비는 통탄이었다. 비록 78명의 대한통운 택배기사는 그의 죽음으로 일터로 돌아갔지만, 그는 보내야만 했다.
▲ 20일 다시 비가 내리던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사망 50일을 넘겨 치르는 박종태 지회장의 영결식장에 내리는 비는 통탄이었다. ⓒ프레시안 |
"78명의 복직, 그 일이 끝내 사람을 죽이고야 되는 일이었습니까.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었습니까."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추도사에 영결식에 참석한 이들의 눈물이 내리는 빗줄기와 함께 굵어졌다. 그간 마음껏 슬퍼할 수조차 없었던 이들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일이 되어서야 통곡을 했다.
그렇게 지난 4월 30일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박종태 지회장이 영면했다.
"우리가 함께 싸웠다면 그가 목숨을 바쳐야 했을까" 후회와 반성의 눈물
▲여덟 살 아들과 열 살 딸 아이는 아빠의 영결식 장에서 아빠의 사진이 담긴 유인물을 바라보기만 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영결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조용하던 딸 아이는 눈물을 쏟아냈다. "나 꽤 괜찮은 사람이지" 물었다는 남편을 잃은 부인 하수진 씨의 품에 안겨 딸 혜주는 그렇게 울었다.
▲ 영결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아빠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하자 조용하던 딸 아이는 눈물을 쏟아냈다.ⓒ프레시안 |
혜주의 눈물은 사랑하는 아빠를 잃은 슬픔이었지만, 1000여 명의 영결식 참석자들의 눈물은 반성이었다.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 78명의 택배 노동자를 외면한 것은 세상만이 아니었다. 전국 곳곳에 기막힌 사연이 너무 많아, 노동계도 그의 죽음 이전에 그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싸웠다면 그가 목숨을 바치지 않아도 78명 동지들 복직되었을 것 아니냐"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은 무심한 세상보다 곳곳에서 잘려 나가는 사람에 무감각했던 노동계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었다.
그가 죽어서야 노동계는 움직였다. 그가 그토록 기다렸다던 사람들이 수도 없이 대한통운 대전지사 앞에 모여들었다. 화물연대는 사상 처음으로 단일 안건으로 총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총파업을 통과시켰다.
세상도 그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갑작스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화물연대의 투쟁은 뒤로 미뤄졌다. 닷새의 총파업, 그리고 얻어낸 해고자의 복직. 그러나 끝내 '화물연대' 이름은 얻지 못했다.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강경한 태도 때문이었지만, 그런 정부를 이겨내지 못한 것은 턱 없이 부족했던 힘 때문이었다.
▲ 1000여 명의 영결식 참석자들의 눈물은 반성이었다. ⓒ프레시안 |
"죄송합니다" 죽어서도 끝내 얻지 못한 것들
▲ 추도사를 읽으며 오열하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프레시안 |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소망도, 끝까지 싸워 반드시 이겨달라는 부탁도 아직 다 이뤄내지 못한 우리는 모두 한없이 못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달식 화물연대본부장은 "고인이 우리에게 요구했던 것이 '화물연대 사수'였기에 더 피눈물이 난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 하수진 씨도 "남편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의리를 지켜줘 고맙다"면서도 완전히 이루지 못한 남편의 유지를 남겨두고 그를 보내야 하는 안타까움을 얘기했다. 하 씨는 "아직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세상이 바뀌지 않는 한 남편의 죽음을 가슴에 묻고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중가수 지민주 씨도 생전에 박 씨가 좋아했다는 노래 '민들레처럼'을 부르기에 앞서 "입관식에서 고인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다"며 "그 눈물의 이유를 그가 사랑했던 여러분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시인 오도엽 씨도 추도시에서 "'기득권을 버리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당신의 간절한 부탁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날 영결식이 끝난 뒤 일부 화물연대 조합원들이 지도부를 향해 "헌화할 자격이 없다"며 "총사퇴"를 촉구했다. 자신이 화물연대 대경지부 대의원이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총파업이 안 되면 2단계, 3단계 대비책이 있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신을 괴롭혔던 분노와 슬픔, 그대로 돌려주겠다"
52일 만에 그를 보내며 노동계가 다시 "반(反) 이명박 투쟁"을 다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가진 자들 배를 더 채워주기 위해 노동자 목숨 따위야 안중에도 없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며 "동지를 괴롭혔던 분노와 슬픔, 그만큼 그대로 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김달식 본부장도 "우리 힘이 모자라 피눈물을 흘리며 열사를 보내지만 반드시 되갚아 줄 것"이라고 굳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도 얻지 못한 것들이 그를 보내는 이들의 마음을 여전히 아프게 하고 있었다.
스스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불렀던 박종태를 보내고 민주노총은 7월 대정부 총력 투쟁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악착같이 싸워 사람대접 받자"던 그를 편안히 쉬게 할 수 있을까.
▲스스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라 불렀던 박종태를 보내고 민주노총은 7월 대정부 총력 투쟁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악착같이 싸워 사람대접 받자"던 그를 편안히 쉬게 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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