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가들이 '릴레이단식'을 하고 있다.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법 등 정부가 밀어붙이는 노동관계법을 막기 위해서다. 단식에 들어가며 이들은 "법률가는 법률의 정함에 따라 사회관계를 인식하고 행동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프레시안>은 일주일에 두 번, '사회적 정의와 양심'을 위해 단식에 참여한 법률가들의 글을 싣는다. |
오늘 법률가 릴레이단식 64일째에 참여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전화 한통을 받았는데 추적60분팀에서 국회 앞 1인시위를 촬영하러 온다니 촬영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얼굴 찍고 뭐 그런 것은 괜찮은데 인터뷰도 할지 모른다니, 하필이면 내가 할 때에,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사무실에 들어와서는 가거든 무슨 말을 할까 무엇을 가지고 갈까 생각하며 컴퓨터를 뒤졌다. 두 개의 문서를 뽑았다.
•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학교법인 명지학원 부당해고구제신청 판정서 (2009. 4. 22.)
• 국가인권위원회의 비정규직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의견표명 보도자료 (2009. 6. 10.)
그리고 그 문서에 몇 단어 적기도 했다.
• 과거 형식적인 계약기간 간주 법리, 갱신기대권 법리 존재 - 일부나마 계약직 보호
• 기간제법 시행, 최장 계약기간 2년 조항 등장
• 기간제법(특별법) 폐지, 근기법 사유제한
명지대학교에서는 지난해 9월과 지난 2월에 형식적인 계약기간을 둔 조교 120여 명을 모두 해고했다. 대학에서 일반조교, 행정조교, 학사조교 등으로 불리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공부를 하면서 짬짬이 학사업무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일반직원과 똑같이 학사업무를 하지만 조교로 불릴 뿐이다. 사립학교법에서의 사무직원이자,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에서의 노동자다.
이들이 해고된 이유는 직제개편 또는 계약기간 만료였다. 그 해고에 앞서 학교는 올해 7월 기간제법 시행을 앞두고 여러 차례 세미나 또는 설명회를 연 뒤 내린 결정이었다.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이들의 문제에 대해 "2년 이상 고용할 경우 정규직 전환의 의무를 회피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했다. 그들을 해고한 후 명지대는 가칭 행정보조원 제도를 만들어 최장 2년으로 계약기간을 정한 노동자로 다시 고용했다.
이 사례는 기간제법이 기간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사용자에게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계약기간을 정했더라도 형식적인 계약기간 간주 법리 등으로 계약직 노동자들이 보호될 수도 있었으나 기간제법이 시행되면서 그런 법리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줄곧 기간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는 사유를 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귀 기울여야 하는 주장이다.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 단식을 하면서 내가 들었던 피켓에는 "올바른 비정규직법의 입법을 촉구한다"고 썼지만, 나는 비정규직법을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프레시안 |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자본가는 거품 물고 난리를 치는데, 노동자들이 생산과정에 결합하지 않으면 자본 스스로는 아무런 가치를 생산해 낼 수 없으므로 결국 자본가는 아무 것도 가져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자본가는 생산의 주체로서 노동자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법 또한 그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자본가와 법뿐이던가. 정치권력, 언론권력, 사법기관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나선다).
비정규직법은 자본으로 하여금 더 많은 자본을 합법적으로(!!) 축적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일 뿐이다. 법률에 정한 노동기준을 합법적으로(!) 피할 수 있고, 중간에서 노동력을 사고팔며 합법적으로(!) 착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비정규직법이라고 할 때, 지금 비정규직법은 아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법이었다.
그래서 비정규직법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이런 의미에서도 비정규직법은 폐지되어야 하는 법일 뿐이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법은 자주 족쇄가 되니 어쨌든 법을 들먹이며 먹고 사는 사람들 중 한명으로 취급되는 나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법을 말하는 것이 늘 미안하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할 국회를 향해 소리치며 투쟁하는 노동자에게, 그와 내가 다시는 이런 곳에서 만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마저 법을 말하는 순간 그에게 어떤 힘도 되지 못할까봐 두렵다. 그래서 먼저 자리를 뜨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만을 되풀이하며 돌아서야만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