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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진짜' 노무현 기념 사업을 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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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진짜' 노무현 기념 사업을 하고 싶다면…"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③]

"아르헨티나에서는 과거 군부에 희생된 이들의 어머니들이 매주 목요일 광장에 모여 침묵 시위를 한다. 이 단체의 원칙이 있다. '첫째, 사체 발굴을 하지 않는다. 우리 자식은 사체 속에 있는게 아니라 사회 운동 속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건물과 기념비를 세우지 않는다. 우리 자식들의 정신을 가둘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절대 보상을 받지 않는다. 죽음을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가 어느덧 한 달 남짓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 사회에는 그의 죽음이 몰고 온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각계각층의 지식인이 이명박 정부의 각성과 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문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무반응' 속에서 선언문에 담긴 분노의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노무현 대통령을 기념하는 움직임도 그치지 않는다. 시중에는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책도 속속 출간되고 있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차려진 시민 분향소도 49재를 맞는 오는 7월 10일까지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작은 비석 하나'를 세워달라는 그의 유언에 따라 '아주 작은 비석 건립위원회'가 구성돼 49재에 열리는 안장식에 맞춰 비석을 건립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말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일은 어떤 것일까?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기념 사업도 이와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월요민주주의 학교' 강연에서 손호철 교수는 "문제는 노무현 정신"이라며 "질 줄 알면서도 올바르다고 생각하면 부딪혔던 용기를 가진 제2, 제3의 바보 노무현을 양산하는 게 그 첫 번째"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가 꼽은 두 번째 노무현 정신이 있었다. 바로 지역주의 극복이다. 이는 이날 강연의 주제이기도 했다.

ⓒ프레시안

"지역주의의 압도적 우위와 민주-반민주 구도의 결합"

"한국의 정치는 기본적으로 1987년까지는 민주-반민주가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불행히도 지역주의가 전면화됐다. 민주-반민주 구도는 약화됐지만 사라지지 않은 채 이어졌고, 지역주의의 압도적 우위가 계속됐다. 거기에다 부상하고 있지만 자리잡지 못한 진보-보수 구도가 결합된 상태, 이것이 한국 정치다."

우선 손호철 교수는 1987년 양김(김대중-김영삼)의 분열을 꺼내며 "지역주의에서 양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이로써 민주화가 5년 늦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둘이 연합해서 민주화 운동을 해도 될까말까 했는데, 한 김이 군사세력과 연합해서 다른 한 김을 죽이는 3당 합당과 DJP연합이 나왔고, 결국 계속 캐스팅보드는 군사 세력이었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국 지역주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호남-영남의 대결이었다는 인식"이라며 "부마 항쟁만 보더라도 TK와 PK는 전혀 다른 세력이었고, 부산-경남과 호남은 저항적 지역주의를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양김이 분열하지 않았다면 민주-반민주의 구도로 TK 대 PK-호남의 대결이 치뤄졌을 것"이라고 "노무현의 비극은 이 속에 뿌리가 있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1987년 3김이 떨어져나오면서 4개의 지역당 구도가 나왔다.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민정당, JP를 중심으로 한 공화당, 이 두 개는 군사독재세력이었다. 그리고 YS와 DJ가 통일민주당과 평화민주당을 들고 나왔다. 호남과 PK는 저항적 지역주의였다.

그 지역구도 때문에 1988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가 일어나게 됐고, 노태우는 정계 개편을 해서 야당과의 연정을 시도한다. 그러나 원래 생각과 다르게 3당 통합이 이뤄졌다. 이는 결국 군사독재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의 연합이면서 지역 연합이었다. 호남을 소외시킨 나쁜 연합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이때 YS를 따르던 정치인 중 그를 따르지 않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노무현이 있었다"며 "또 제3의 길을 원하던 유권자들은 무주공산이 됐는데, 이들은 비호남 야성 유권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노(反盧)와 친노(親盧)의 뿌리는 거기에 있다"며 "제3후보의 가능성이 항상 남아있었고, 이는 1992년 정주영 이후 이인제, 노무현, 김두관, 유시민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문제는 이 유권자들이 지역구조의 우위 아래 민주-반민주를 선택했다는 점"이라며 "거기에서 열린우리당의 비극 등 모든 갈등이 시작됐다"고 덧붙였다.

"노무현 정신 실현, 진보정당이 현실적 답"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은 떠나고 부산의 정치인 이기택이 민주당을 이어받아 지도부를 했다. 당시 민주당의 탈지역화가 어느 정도 일어났다. 그러나 1995년 지자체 선거에서 김대중이 나오면서 탈지역주의는 깨졌고, 노무현은 부산시장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후 DJ가 새정치국민회의를 만들어 나올 때 또 안 따라간 이들이 노무현을 비롯한 몇몇 개혁후보였다. 노무현의 정신, 3김정치의 극복과 지역주의의 극복을 내건 그의 첫 실험이 이것이었다."


손호철 교수는 "1997년 대선에서 노무현은 정권교체를 위해 자신과 대립했던 김대중 진영으로 갔고, 이후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대선에서 당선됐다"며 "그러나 지역주의 극복은 그에게 버릴 수 없는 과제였고, 열린우리당을 통해 시도했지만 이루지 못한 꿈으로 남게 됐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아무리 지역주의를 욕해도 이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갈등구조가 생기지 않는한 이는 영원할 것"이라며 "2004년에는 탄핵과 반탄핵이라는 중요한 이슈가 있었고, 1987년 이전엔 민주-반민주라는 압도적인 구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 한국 정치는 초계급적 지역 연합이라고 생각한다"며 "그걸 깰 수 있는 방법은 거꾸로 가는 것, 바로 초지역적 계급 연합"이라고 말했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걸인'부터 '재벌'까지 자기 지역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계급적 지역연합이라면 지역을 넘어 노동자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초지역적 계급연합이다.

그는 "진보 정당이 크고, 한국 정치가 진보 정치로 가는 것만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노무현 정신을 실현하는 방법은 진보정당 키우는 것이 현실적인 답"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이 '이제는 진보 정당을 도와줘야겠다'고 말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딜레마는 지역주의를 깰 수 있는 강력한 해답이 진보정당인데, 다시 가장 커다란 장애는 지역주의라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전국 평균 3%를 얻었는데, 가장 득표율 낮은데가 대구가 아니라 광주였다. 그런 지역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한국 정치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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