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되돌아보면 선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 두산중공업은 노조탄압을 위해 무차별적인 손배·가압류와 함께 단체협약을 일방 해지한 바 있다. 이에 맞선 노조의 투쟁 과정에서 배달호 열사가 돌아가셨다. 배달호 열사의 죽음으로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단협의 일방해지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함께 해결돼 상대적으로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지만, 역시 당시의 주요한 쟁점이었다.
그런데 최근 일방해지에 따라 단체협약이 효력을 잃은 동명모트롤이 08년 3월 두산에 인수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새삼 다시 두산중공업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동명모트롤은 지난 4월 16일 단체협약이 해지됐다. 이후 사측은 전임자에게 현장복귀를 명령하고, 간부 활동의 대부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응하지 않았고 노사협의 준비활동도 안 된다고 했다. 교섭위원의 활동 시간에는 임금을 주지 않았고 노조 사무실은 퇴거를 요청했다. 심지어 현수막과 게시판을 철거하라는 요구까지 했다. 두산은 이미 전과가 있다!
또 다른 사례로 공공노조 의료연대지부 동아대의료원분회가 있다. 지난 2007년 병원 측은 교섭에서 단협 개악안을 제시하고 안 받으면 노조요구안을 심의하지 않겠다고 억지를 부리다가 일방해지를 통보했다. 결국 지난해 5월 단체협약은 해지됐고 현재까지 단체협약이 없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후 사실상 노조 일상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전임자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조합비를 일괄적으로 공제하는 조항이 없어지면서 조합원 개인으로부터 자동이체 등을 통해 조합비를 걷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단체협약해지 이후 조합원수가 3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임금을 비롯한 노동조건은 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정하고 있다.
사실 노동조건이나 노조 활동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단협이 해지되면 노조의 경영 참여가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한 마디로, 정책 참여 길이 막힌다. 강원도교육청 사례가 그렇다.
강원도교육청이 단협해지의 이유로 밝힌 것은 이렇다. "노조 과다지원 논란", "학교장 기관운영사항", "교육정책 사항." 이른바 인사, 정책사항에 대한 노조 개입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겠다는 의도를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는 이들 조항들이 무력화되면 전교조 활동 축소 외에도 많은 문제점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비민주적 인사관행이 부활하고 특기적성 위주의 방과 후 활동이 부활해 계층 간 위화감이 다시 형성된다는 우려다. 또 학업성취도 평가에 대해서도 전교조가 제어할 수 있는 장치가 사라진다.
결국 결론은 간단하다. 노조는 무력해져서 식물조직이 된다. 그리고 사측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단체협약 일방해지는 이명박 정부가 취임 이후 보여준 노조 무시, 경영권 우대 정책의 연장선이다. 특히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조를 구조조정 대상 1순위로 규정한 정책의 연장이다.
▲ 사회공공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공공노조 정책국장 유병홍. ⓒ프레시안 |
이제까지 공공부문 노조는 단지 노동조건에 국한한 투쟁이 아니라 기관민주화를 통한 사회민주화, 정책참여를 통한 공공성증대와 시민참여 단초 마련을 위해 노력해왔다. 이것마저도 지키지 못한다면 공공부문 노조가 설 땅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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