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쌍용차 비극, YS가 씨앗 심고 MB가 꽃피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쌍용차 비극, YS가 씨앗 심고 MB가 꽃피워?

[건망증 한국경제⑧] '경제'보다 '정치'가 앞선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부도는 절대로 더 이상 안 된데이."

1997년 1월 한보철강에 이어 3월 삼미그룹이 무너지자 김영삼(YS) 대통령이 강경식 경제부총리에게 지시했다. YS의 '부도 노이로제'는 김영삼 정부가 그해 4월 '부도유예협약'을 내놓은 가장 큰 이유였다. 진로그룹에 처음으로 적용됐던 부도유예협약은 기업 부실을 금융기관 부실로 전가시켜 오히려 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97년 5월 대농, 6월 한신공영 등 대기업의 부도는 이어졌다. 급기야 97년 7월 재계 8위인 기아자동차가 부도유예협약 대상으로 지정됐다. 그해 10월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아차는 98년 현대차에 인수됐다.

쌍용차로 끝났던 자동차산업 구조조정, 쌍용차로 다시 시작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간 잊고 지냈던 구조조정이 다시 한국경제의 화두가 됐다. 구조조정은 과잉투자를 해소하기 위한 자본과 노동의 재편 과정을 말한다. 과잉투자로 인해 누적된 부실을 처리하는 과정은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 고통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 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김영삼 정부가 부도'유예'협약을 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피하고 싶다고 다 피할 수는 없다. 과잉, 중복투자로 인한 부실은 제거돼야 한다. 처리를 미루면 미룰수록 고통은 커진다.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고통의 공평한 분담이 중요하다. 구조조정은 경영진, 노동자, 채권단 등 각 주체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2009년 구조조정의 태풍은 자동차산업에 먼저 불어 닥쳤다. 쌍용차는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지난 1월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6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97년 기아차를 시작으로 현대차, 대우차, 삼성차를 거쳐 2004년 쌍용차를 중국 상하이차가 인수함에 따라 일단락되는 듯 했던 한국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쌍용차 사태로 다시 촉발되는 모양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은 세계 자동차시장 구조조정의 일환이다.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가 지난 1일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등 세계 자동차업계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여파로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쌍용차 문제가 터졌다.

현재 쌍용차 노사는 극한 대립 상태다. 노조는 20여 일째 총파업 중이고, 사측은 구조조정만이 살길이라고 고집하면서 정부에 '공권력 투입' 요청하고 나섰다. 사측은 전체 고용인원의 40%에 가까운 2600여 명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미 파업 과정에서 2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오는 16일 파업 중인 노동자들을 제외한 생산직 노동자, 사무직 노동자, 임원진 등이 '출근 투쟁'을 하겠다고 밝히는 등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쌍용차 사태의 해결 방법을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가로 젓는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상당기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세계 자동차시장은 이미 과잉상태다. 일시적 국유화 상태로 들어간 GM에 대해 "오바마 정부의 늪이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GM본사가 저 지경이니 GM대우의 앞날이 불투명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쌍용차를 둘러싼 이처럼 복잡한 국내외 상황은 쌍용차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다.

'쑤실 데는 다 쑤셔' 탄생한 삼성차, 재앙의 씨앗

쌍용차 사태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정부의 산업정책 부재다. 한국 경제의 주력산업 중 하나인 자동차산업이 재벌들의 각축장이 되는 과정,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 등을 볼 때 정부가 산업정책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갖고 문제를 처리했다고 보기 힘들다. 시장경제원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섰다.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입과 퇴출은 '정치'가 어떻게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망쳤는지 잘 보여준다.

▲ 처음에는 삼성차를 완강히 반대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성차 인가의 명분을 '세계화'에서 찾았다. 사진은 삼성차를 방문해 둘러보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연합뉴스
삼성의 자동차 산업 진출은 잘 알려지다시피 이건희 전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 전 회장은 자동차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또 87년 그룹 경영권을 승계 받은 이건희 전 회장은 신규사업을 통해 '물려받은 황태자'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오너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싶어 했다.

하지만 정부의 허가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상공부는 과잉 중복투자를 막기 위해 업종전문화정책을 내세우며 재벌그룹마다 3-4개 업종으로 그룹을 재편할 것을 요구했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진출은 상공부의 이런 정책에 배치되는 것으로, 주무부처인 상공부는 당연히 불허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삼성은 정관계를 대상으로 '전방위 로비'에 나섰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룹의 한 임원은 "쑤실 데는 다 쑤셨다"고 당시 로비에 대해 증언했다.

청와대, 경제기획원, 재무부를 구워 삶아 삼성차를 반대하는 상공부를 정부 내에서 고립시켰다. 몇몇 교수들에게 부탁해 삼성차 진입 허용을 촉구하는 글을 신문에 기고하도록 해 여론을 조성했다. 삼성차가 들어설 부산 민심을 동원하기도 했다. 부산지역 국회의원들을 접촉하고 김영삼 대통령 경남고 3회 동기 모임인 삼수회에도 로비를 했다. 부산 민심은 YS의 약한 고리이기도 했다.

YS는 처음에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안 된다"고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서서히 입장이 바뀌었다. YS는 94년 11월 호주 시드니에서 새로운 국정지표로 세계화를 제시했다. 귀국 비행기 안에서 그는 한이헌 당시 경제수석에게 "국경 없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삼성의 승용차사업을 허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어떻소"라고 물었다. YS는 94년 12월 삼성의 승용차 사업 진출 허용을 지시했다.

이처럼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은 삼성의 전방위 로비와 YS의 '정치적 판단'의 합작품이었다.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고려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삼성차, 대우차, 빅딜

'전방위 로비'를 통해 이건희 전 회장의 숙원사업인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삼성이 SM5 시리즈 생산을 시작한 것은 98년 3월이었다. 안타깝게도 외환위기 직후로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을 때였다. 삼성차는 광고 공세를 퍼부었지만 판매는 저조했다. 또 초기 시설.기술투자비용 등으로 삼성차는 1대 팔 때마다 적자가 나는 구조였다. 97년 누적적자액은 이미 자본금(8054억 원)을 거의 잠식한 상태였다.

외환위기 직후 집권한 김대중(DJ) 정부는 삼성에 자동차산업 포기를 종용했다. 하지만 '계열사 욕심' 많기로 유명한 이건희 전 회장은 98년 2월 25일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 삼성의 신차 SM525V를 타고 등장했다. 자동차 산업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 호남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DJ 정부는 부산지역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DJ정부도 YS정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고려'를 앞세웠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구조조정이 아닌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아이디어였던 '빅딜'을 수용한 것. 삼성과 대우가 삼성차와 대우전자를 맞바꾸자는 방안이었다. DJ는 98년 4월 부산을 방문해 삼성차 부산공장을 우수공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시장원리에 따른 인수합병(M&A)이 아니라 기업을 통째로 맞바꾸는 '빅딜'은 처음부터 성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삼성과 대우의 협상은 깨지고, 삼성차는 99년 6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SM5 생산을 시작한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DJ정부의 '해외매각 우선론'과 대우차

DJ정부가 삼성차를 떠안기려고 했던 대우차도 사정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경영'이 절정이던 97~98년 대우차는 "동유럽에서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절반은 대우차"라고 자랑할 정도로 신흥시장 개척에 적극적이었다. 문제는 대우가 이같은 시장 개척 비용의 대부분을 해당국 정부 보증 차입 등 '빚'으로 충당했다는 점. 외환위기를 맞아 김우중 식의 '외상경영'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대우차는 98년 2월 GM과 전략적 제휴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청와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미국 GM본사와 70-100억 달러 규모의 외자유치 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고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미국 순방 중 디트로이트까지 찾아가 잭 스미스 GM 회장에게 대우와 협상을 조기에 끝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대우차를 헐값에 인수하기 위한 GM의 시간 끌기 전략이 본격화됐다. 장기간 실사를 통해 대우차의 부채를 확인한 GM은 98년 9월 대우와 '결별'했다. 대우그룹이 99년 7월 부도가 나고 대우차가 워크아웃을 거쳐 법정관리 하에 놓이자 GM은 대우차와 그해 8월 양해각서를 재체결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배타적 협상기한이 종료될 때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대우차 채권단은 공개입찰을 통해 포드를 우선매각 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하지만 포드도 3개월 뒤인 2000년 9월 대우차 인수 포기를 선언했다.

포드와 협상 실패는 대우차의 시장가치를 더 떨어뜨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또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의 계기도 됐다. 2000년 11월 대우차는 최종부도 처리됐다. 부평공장은 전면 가동이 중단됐고, 구조조정 동의서에 노사가 합의해 1750명의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그러자 GM이 다시 나섰다. GM은 2001년 다시 인수협상을 시작해 2002년 4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협상을 마무리 짓고 대우차를 헐값에 인수했다. 매각 대금은 12억 달러지만, GM이 가져온 현금은 4억 달러에 불과했다 초기에 최대 100억 달러까지 호가했던 매각대금은 4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쌍용차 비극, GM대우의 전초전"

▲ GM대우를 방문해 자동차 조립라인을 둘러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워크아웃 이후 대우차가 GM에 인수되기까지 무려 2년 8개월이 걸렸다.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대우차의 부실은 계속 심화되고 기업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당시 가장 큰 논란이 된 지점은 해외매각이었다.

대우차 노조와 시민사회에서는 해외매각을 반대하고 공기업화를 주장했다. 오바마 정부의 GM 처리 방법처럼 국가가 일시적으로 국유화 했다 정상화 되고 나면 M&A시장에 내놓아 새 주인을 찾아 주면 된다는 얘기다.

반면 정부와 채권단에서는 해외매각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봤다. 물론 산자부 등 정부 일각에서도 자체 정상화와 공기업화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해외매각을 주장하는 재경원과 금감원 등의 파워에 밀렸다.

또 DJ 정부는 '외환위기 조기 졸업'이라는 목표 때문에 외자유치에 집착했었다. 은행을 포함해 외환위기 이후 상당수의 기업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것은 DJ 정부의 이런 정책적 의지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정부 입장에서는 공기업 보다는 해외매각이 훨씬 손쉬운 방법이었다. 매각 이후에는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당시 정부가 해외매각 원칙을 서둘러 결정하고 이에 집착함에 따라 초국적 기업의 교섭력만 강화시켜줬다"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삼성차와 대우차 처리 과정에서 계속 나타난 주무부처인 산자부의 배제 현상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경제팀 내에서 재정-금융라인의 독선에 기반한 잘못된 판단이 결과적으로 자동차산업을 망쳤다는 것이다.

"당시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대우차의 해외매각을 반대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해외매각시 국가의 산업정책을 펼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었다. 초국적 기업에 대해 한국정부가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산업 차원의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다. 초국적 기업은 자기들의 헤드쿼터의 결정에 따를 뿐이다. 여기에 정부, 시민사회, 노동자의 개입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동차산업은 국가기간산업이고 전후방 연관효과가 매우 크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DJ정부에서 GM이 대우차를, 노무현 정부에서 상하이차가 쌍용차를 인수했다. 해외매각의 문제가 쌍용차에서 먼저 터졌을 뿐이다. GM대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MB정부, 정리해고 선례를 남기려 '뒷짐'?

쌍용차 사태로 2차 자동차산업 구조조정에 돌입한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과연 '산업정책'이라는 큰 틀에서 이 문제를 고민하고 해법을 찾고 있을까?

현재까지 행보를 보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여당은 쌍용차 문제에 대해 '노사 자율 합의가 우선'이라면서 중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조 교수는 "정부가 GM대우가 GM 본사 파산 과정에서 '굿GM으로 편입되면서 일단은 살아남게 되니까 지나치게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의도에 대해 좀더 적극적인 해석도 있다. 쌍용차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주채권은행이 산업은행이고, 산업은행의 실소유주는 정부라는 점에서 "결국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은 정부의 의지"라는 주장도 나온다. 노중기 한신대 교수는 "노동부나 경제부처가 쌍용차 사태에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 상황으로 몰고 가는 것은 정부가 아니냐"면서 "이명박 정부는 쌍용차 사태를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의 선례를 남겨 현대차 등 강성 노조를 길들이겠다는 게 진짜 목표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라디오 주례연설에서 "지금이 구조조정과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적기"라면서 "또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는 한시도 늦출 수 없는 우리의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 정문이 굳게 닫혀 있는 쌍용차 평택공장. 이명박 정부가 (해외) 매각을 전제로한 무조건적인 인력 구조조정 이외의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프레시안

[건망증 한국경제] 연재 바로 보기

①이명박 "stupid" 모하메드 "crazy"…노무현 "기죽어"

② '7%의 추억'…대박 쫓다 쪽박 찰라

③이재용의 삼성 VS 삼성의 이재용 …최종 결론은?

④동시다발 FTA 추진, OECD 조기가입…닮았네!

⑤ 노무현 보면서도 '비즈니스 프렌들리' 고집하나?

⑥ 조였다 풀었다 양도세, 임대소득세로 '이제 그만'

⑦ YS나 MB나…"경제위기는 DJ-盧-勞 탓"?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