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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퇴직금이 엉뚱한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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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퇴직금이 엉뚱한 사람에게"

건설일용직 퇴직공제제도 파행 심각

퇴직금이 없는 건설 일용노동자들을 위한 유사 퇴직금 제도로 '건설노동자 퇴직금 공제제도'가 도입된 지 이미 8년이 지났는데도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데다 노동부의 관리감독마저 형식에 그쳐 오히려 건설현장에서 노사갈등을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도입 후 8년이 지나도록 표류**

20일 민주노총 산하 건설산업연맹에 따르면, 2003년에 경기도 지역의 GS건설(당시 LG건설) 사업장에서 일하던 건설 일용노동자 100여 명이 퇴직공제 제도 적용을 요구하며 집단소송에 나선 데 이어 2004년에는 전주 지역 건설현장에서도 수십여 명의 건설노동자들이 퇴직공제 제도와 관련해 파업에 나섰다. 최근에는 벽산건설 현장에서 퇴직공제 제도와 관련된 분쟁이 발생해 노조가 집단소송을 제기해 현재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분쟁은 사업주가 △퇴직공제 제도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거나 △공제부금 납부를 꺼리기 때문으로 건설산업연맹은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노동부와 건교부가 퇴직금 공제제도와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드러났다.

최근 노동부가 열린우리당 김영주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5년 들어 퇴직금공제회에 신규로 가입한 사업장 수가 3542개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복지수첩을 발급한 사업장은 1706개, 공제부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업장도 1840개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표-1>

***퇴직공제금 편법수령 의혹도**

보다 심각한 문제는 건설 일용노동자에게 돌아가야 할 퇴직금이 엉뚱한 사람들에게 지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영주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전업주부'를 사유로 퇴직공제금을 받은 경우는 모두 353명에 이른다. 이들은 올해 들어 복지수첩을 신규로 발급받은 사람들인데도 그 가운데 수십여 명의 퇴직공제금 수령액이 200만 원을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공제금은 복지수첩에 부착되는 1장 당 2000원인 '공제부금 증지'의 매수로 결정되며, 1년 365일을 꼬박 일했을 경우에도 총 수령액이 73만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전업주부'라는 사유로 200만 원 이상을 퇴직수령금으로 받은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 의문이 든다.

이에 대해 김영주 의원의 보좌관인 조태상 씨는 "200만 이상을 받은 사람들은 과거에 일했던 사업장에서 공제부금 증지를 무더기로 발급받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건설산업연맹의 최명선 정책부장은 "1년도 채 일하지 않은 사람이 200만원 이상의 퇴직공제금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다"면서 "해당 노동자들이 사업주의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편법 증지발급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

이같은 의혹은 퇴직공제금을 수령한 이들 가운데 일부가 실제로는 신고된 사업장에서 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더욱 확대되고 있다. 이는 김영주 의원이 복지수첩 발급 사업장의 공사기간과 고용보험 기록을 비교분석한 결과 확인됐다.

예컨대 유 모씨의 경우 복지수첩에는 2001년 6월 11일부터 2002년 11월 26일까지 모 건설현장에서 일한 것으로 적시돼 있지만, 고용보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기간에 그는 다른 사업장에서 사무직원으로 일했다.

조태상 보좌관은 "퇴직공제금을 편법 수령한 것으로 추정된 몇 건의 사례들에 대해서만 표본조사만 했음에도 여러 건의 부당 수령자를 발견했다"며 "관계기관이 전면적으로 실태조사를 벌인다면 수백 명의 부당 수령자를 적발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표-2>, <표-3>

***노동부의 퇴직공제 제도 관리감독 부실이 원인**

건설 일용노동자들에 대한 퇴직금 공제제도가 도입된 것은 이들에게는 퇴직금이 없기 때문이었다. 퇴직금 제도가 1년 이상 근로를 전제로 하고 있어 건설현장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설 일용노동자들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래서 정부는 1998년부터 건설 일용노동자들에게 최소한의 소득보전과 복지혜택을 보장해 주기 위해 유사 퇴직금 제도인 '건설노동자 퇴직금 공제사업'을 진행해왔다.

퇴직공제기금은 일정 규모 이상의 공공 및 민간 건설사업에서 사용자(발주처 또는 시공사)가 '건설근로자 퇴직공제회'에 공제부금을 납부한 금액으로 조성된다. 그리고 고용된 일용직 노동자는 사용자로부터 매일 '공제부금 증지'를 발급받아 공제회가 발급한 복지수첩에 부착한 뒤 이를 근거로 퇴직공제금 수령사유가 발생했을 때 퇴직공제금을 신청해 지급받을 수 있다. 공제금 수령사유는 건설업에서 퇴직 또는 사망하거나 60세 이상 고령이 됐을 경우로 한정돼 있다.

처음에 이 사업은 임금이 전체 상용직 노동자 임금의 54%(통계청, 2004년 기준)에 불과하고 산재보험이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가입률이 현저히 낮은(고용보험 가입률 37.2%, 노동부) 건설 일용노동자들에게 생명줄 같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이 사업은 그동안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면서 긍정적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오히려 갈등의 불씨로 전락한 셈이다. 퇴직금 공제사업에 따른 노사갈등은 파업 등 집단 실력행사나 집단소송 등의 법정분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퇴직공제 제도를 관리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는 노동부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부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퇴직공제 제도와 관련한 실태조사에서 불과 9건의 법규위반 사례만 적발해 과태료를 물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노동부 관계자는 "2003년에 전면적 실태조사를 벌인 뒤에는 퇴직공제 제도에 초점을 둔 실태조사를 다시 하지 못했다"며 "그 이유는 퇴직공제 제도 적용 사업장은 여기저기 광범하게 산재돼 있는 반면 조사인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 있다"고 주장했다. 사업장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했다는 구체적인 제보가 있을 경우에만 근로감독관 등이 현장조사에 나가고 필요하면 조치를 취할 뿐이라는 것이다.

조태상 보좌관은 "노동부의 형식적인 관리감독이 퇴직공제 제도의 파행을 불러온 왔다"며 노동부의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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