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이 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내용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망 40일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는 화물연대 박종태 지회장의 문제를 놓고 오는 1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는 화물연대의 기자회견 자리였다.
차가운 냉동실의 박종태 지회장과 2600명 정리 해고를 앞두고 총파업을 20일 가까이 이어가는 쌍용차 노동자의 절망을 표현한 말이다. 실제로 노동계가 벼랑 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에서 앞서 이날부터 1000여 명의 간부 파업을 시작했다. 쌍용차도 976명 정리 해고의 법적 효력이 발생하는 이날 "정리해고 철회"라는 메아리 없는 외침을 이어갔다.
이런 흐름이 일사불란한 '반 이명박 전선'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민주노총의 '강력한 총력 투쟁' 계획은 여기저기서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밀어붙이기가 총노동의 대응을 부추기는 모양새다.
임성규 위원장은 이날 "민주노총이 정부에게 정책 기조 변화를 얘기해보자고 한 최종 시한이 하루 남았다"며 "그 시효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이명박 정부 퇴진 투쟁에 나선다"고 공언했다.
대한통운과의 비공식 교섭은 결렬…1000여 명 간부 파업
▲ 오는 11일부터 총파업에 들어가는 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장 김달식)는 이에 앞서 8일부터 1000여 명의 간부들이 파업에 들어갔다. ⓒ프레시안 |
화물연대는 "이번 총파업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단순히 일손을 놓는 투쟁이 아니라 항만을 봉쇄하고 고속도로를 점거하는 등 고강도 투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달식 본부장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종태 지회장의 요구가 무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다 알고 있다"며 "합리적인 해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며 인내해 왔지만 정부와 자본은 우리를 오히려 더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총파업의 정당성을 설명했다.
실제 지난 1일부터 화물연대는 대한통운 측과 교섭 아닌 교섭을 벌여 왔다. 그러나 지난 6일 어떤 성과도 내지 못한 채 대화는 최종 중단됐다. 김달식 본부장은 "대한통운은 겉으로는 대화하는 척 했지만 실제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양 측의 만남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화물연대 인정 여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통운이 교섭 상대로 화물연대가 아닌 '개인택배사업자 대표'를 요구했던 것이다.
976명 끝내 '해고자' 신분으로…노조 "정리해고 철회 없이 대화도 없다"
▲ ⓒ프레시안 |
이미 1500여 명이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난 상태에서 남은 900여 명의 정리 해고를 놓고도 노사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것이다. 쌍용차는 이 만남 뒤 노조에 "파업을 풀면 정리 해고를 유보하겠다"는 취지의 서면 중재안을 보냈지만, 노조는 8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 중재안에 대한 거부의 뜻을 공식 밝혔다.
쌍용차지부는 "파업을 풀기 위해서는 정리 해고 유예가 아닌 철회가 선행돼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 이와 덧붙여 정리 해고 직전 노조가 내놓았던 각종 자구안도 폐기한다고 밝혔다. 노조가 먼저 제안한 자구안에는 △1000억 원 담보 △비정규직 기금 12억 출연 △5+5로 근무체계 개편 등이 들어가 있었다.
한상균 쌍용차지부장은 "이 자구안은 총고용 보장을 전제로 작성된 안이었는데 이미 1700여 명이 희망 퇴직이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퇴직한 상황에서 쌍용차 회생을 위한 보증액과 비정규직 출연액 산출 근거가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로써 정리 해고 통보를 받은 976명은 이날부터 해고자 신분이 됐다. 쌍용차지부는 "최후의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날로 27일째 쌍용차 공장 내 70미터 굴뚝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3명은 전날부터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밖에서는 '반 이명박' 흐름 거세지는데, 노동계 내부는 여기저기 발이 묶여
화물연대는 "우리의 투쟁은 6월 민중 저항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능성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국의 흐름이 지원군이다. 대학 교수들이 곳곳에서 시국 선언을 하고 있다. 그 칼끝은 노동계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를 겨누고 있다.
진보정당도 속속 거리에 나서 행동에 들어갔다. 지난 4일부터 소속 이정희 의원이 서울 덕수궁 앞 대한문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민주노동당은 7일부터는 강기갑 대표가 청와대를 목표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진보신당도 이 대통령의 사과와 국정 기조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우선 노동계 자체의 힘이 미미하다. 비록 철도본부와 공항항만운송본부가 화물연대의 총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대체 수송을 거부하기로 했지만, 이것이 전부다.
게다가 기존의 총파업이 화물연대 소속이 아닌 비조합원의 참여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면, 이번엔 상황이 좀 다르다. 쟁점 자체가 예전과 달리 '노동권'과 '대한통운' 등으로 협소하기 때문이다.
조합원 외의 참여자가 어느 정도인지가 화물연대 총파업 '성패'의 중요 변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화물연대가 유례없이 나흘 앞서 먼저 간부 파업을 시작한 것도 '조직화' 및 '선전'의 필요성 때문이다.
▲ 화물연대는 "우리의 투쟁은 6월 민중 저항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하다. ⓒ프레시안 |
쌍용차지부가 속해 있는 금속노조의 최대 지부인 현대차와 기아차, GM대우차 등도 금속노조와 당초 협의했던 파업 일정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당초 5일 쟁의 조정 신청을 할 예정이었지만 임단협 지연을 이유로 하지 않은 것. 이들 3개 지부는 전체 금속노조 조합원의 60%가 소속돼 있다.
3개 지부는 일단 오는 12일 조정 신청을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조정 기간이 10일임을 감안하면 23일 이후에나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금속노조의 10일 2시간 부분 파업과 19일 하루 파업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비록 전체 사업장 가운데 250여 개 사업장이 파업 준비를 마쳤다지만, 핵심 동력이 발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총파업 중인 쌍용차지부는 '지원군'이 올 때까지 경찰병력 투입이 되지 않기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당연히 민주노총도 움직일 동력이 없다. 홀로 싸우고 있는 화물연대와 쌍용차 뿐 아니라 민주노총으로서도 "이명박 퇴진 투쟁"을 폭발시킬 외부의 힘을 기대해야 할 판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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