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 긴장 국면 속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의원 워크숍을 연 4일 모두 북핵 문제와 관련 초청강연을 열었으나 분위기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나라당 초청 강사인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객 수 부풀리기' 등의 막말을 쏟아내 당 내 일부 의원들로부터 "북핵 얘기나 하라"는 항의를 받으며 소동이 벌어지는 동안, 민주당에서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 등 장관급 인사들 사이의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정세현 "냉각기 지나면"
정세현 전 장관은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 초청 강사로 초빙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진단과 대안'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정 전 장관은 최근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준비 정국과 관련해 "냉각기가 조금 지나면 미국이 대화를 시작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부시의 압박 전술로는 안 된다는 걸 아는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이 북한을 끌어안는 식으로 6자 회담이 부활할 것"이라며 "미국이 대화 국면으로 나갈 때 이명박 정부가 허겁지겁 주섬주섬 따라가지 않고 같이 갈 수 있는 정책 전환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관은 '북한의 버릇을 고친다'는 것인데,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당이 고쳐줘야 한다"며 "6월 국회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중국의 대북정책 재검토' 보도에 대해서도 "압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중국마저 북한에 돌아서면 북한이 무슨 선택을 할지 모르고, 그렇게 되면 동북아 정세가 복잡해지기 때문에 곧 태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송민순 "MB정부의 위험한 꽃놀이 패"
정 전 장관의 다소 낙관적인 전망에 대해 강연을 청취하던 송민순 의원은 비관론을 제기했다. 송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계속 압박하면 북한이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는 방식으로 가고 있다"면서 "과거에는 일본이 대북정책에 가장 강성이었지만 지금은 한국이 더 강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이어 "한국과 일본이 뭉쳐서 미국을 압박해 한미일 3국이 북한 압박 공조를 취하고 있는 형국"이라며 "이로 인해 만약 북한이 무릎을 꿇으면 '강하게 나가면 북한 버릇 고칠 수 있다'라고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 의원은 특히 "북한이 굴복하지 않더라도 남북간 긴장을 조성하면 국내 정치적으로도 현 정부와 한나라당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는 계산을 하고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대북 압박을 강화해 북한이 물러서면 '강경 원칙 관철'이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고, 북한이 문을 닫아버려도 정치적으로 보수층의 결집을 꾀하는 성과를 얻는 '꽃놀이 패'라는 것이다.
"풍선효과"…"명불허전"
송 의원은 그런데 "제3의 시나리오가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이와 같은 대북 정책 기조를 밀어 붙일 경우 북한이 계속 압박만 받고 있겠느냐는 것이다. 송 의원은 이를 '풍선효과'라고 표현했다. 핵 실험, 미사일 실험 등 긴장 정국이라는 풍선에 계속 바람이 들어가 있고, 결국 풍선이 견디지 못하고 도발이라는 형태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송 의원이 손을 들고 질문하려 하자 "초청해 놓고 이런 게 어딨느냐"고 긴장한 정 전 장관은 송 의원의 '풍선효과' 지적에 "역시 명불허전"이라며 추켜세웠다.
정 전 장관은 다만 "북한이 무모한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역시 낙관적 전망을 유지했다. 그는 "1994년 북폭 위협이 커지던 순간에도 김일성 주석은 카터 전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카드를 성사시켜 위기를 피해갔다"며 "당시 '대단하다. 저런 식으로 살아남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이어 "위기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다가도 결정적 순간에 돌아서는 것은 김정일 위원장도 아버지 못지 않은 날카로운 면이 있는 것 같다"며 "김 위원장이 건재하다면 그런 선택(도발)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부재한 집단지도체제 같으면 대책 없는 강경론이 정책으로 확정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또 "미국과 중국 모두 동북아에서 리더십과 발언권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까지 가게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꽃놀이 패' 지적에 대해서도 정 전 장관은 "현 정권이 '국민총화'로 몰고 가 지방선거, 총선에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국제 정세상 미국과 중국이 수수방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와 상관없이 북미간의 화해 국면이 도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피스 키핑', 통일부는 '피스 메이킹'"
강연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논란에 대해서도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다. 육군 대장 출신의 서종표 의원이 전작권 및 대북정책과 안보 사이의 가중치 등에 묻자, 정 전 장관은 "국방부는 '피스 키핑(Peace Keeping)'하는 곳이고, 통일부는 '피스 메이킹(Peace Making)'하는 곳"이라고 일갈했다.
정 전 장관은 "0.001%의 전쟁 가능성을 막기 위해 통일부 예산의 30배에 달하는 국가예산의 10%를 국방비로 지출하는데, 예를 들어 한일관계에는 '피스 키핑'만 하면 되지만, 북한과의 관계에서는 동족이기 때문에 '피스 메이킹'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은 '전작권 환수' 논란에 대해서도 "미군은 전략적 유연성 확보 차원에서 신속기동군으로 개편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 전작권을 돌려주겠다는 것"이라며 "부시 정부 말기에도 럼스펠드가 선을 그었듯이 미국이 전작권 환수를 백지화할 리가 없다"고 말했다.
전작권 환수 문제에 깊이 개입했던 송민순 의원도 "우리도 안보 능력이 있고 미국과 함께 포괄적 안보 평가를 한참 동안 같이 논의 해 결정한 것"이라며 "지금 재논의 하는 것은 국가이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심지어 일본도 고종 서거 애도하는 우리 백성 막지 않았다"
한편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의 발언에 대해 "분노를 넘어 '우(牛)하하'이다. 소가 웃는 소리"라며 "당론이 아니라 송 소장의 사견일 뿐이라는 사족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착각했는가"라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 워크숍에서는 한홍구 교수는 '고종황제 서거 당시 일본도 슬퍼하는 우리 백성을 막아서지는 않았다'고 일갈했다"며 "전경버스로, 곤봉으로, 방패로 막아질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급한 망언으로 덮어질 국민의 슬픔과 분노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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