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지난 3일 삼성그룹의 차명계좌를 개설, 운영해왔던 삼성증권 등 10개 금융기관에 대해 금융실명제법 위반 등으로 징계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차명계좌를 공개한 지 1년 8개월, 지난해 4월 삼성 특검이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했을 때부터는 1년 2개월만에 나온 이번 징계조치에 대해 4일 주요 언론은 보도하지 않거나 짧은 단신으로만 처리했다.
삼성증권에 대해서는 기관경고, 우리은행, 굿모닝신한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3개 기관에 대해서는 기관주의라는 징계수위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언론들은 '침묵'하고 있다.
MBCㆍSBS 보도 안해…KBS "무더기 중징계"
방송 3사 중 메인뉴스에 이 소식을 보도한 것은 KBS뿐이었다. KBS는 3일 '9시 뉴스'에 "'삼성 차명계좌' 금융기관 임직원들 중징계"라는 제목으로 이번 조치를 다뤘다. KBS는 "삼성 비자금 조성에 연루된 금융회사 임직원들을 금융감독원이 무더기 중징계했다"며 금융회사 임직원들의 징계에 초점을 맞췄다.
KBS는 금융위가 삼성증권 등 금융기관들에 대해서는 "조직적 개입 여부는 판단 내리기 어렵다"며 기관경고, 기관주의 등 '솜방망이 처벌'을 내린 것에 대해선 보도하지 않았다. 다만 "조사의 핵심을 비껴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MBC <뉴스데스크>, SBS <뉴스8>은 기사를 내지 않았다. 또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언론도 4일 아예 보도를 하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이날 22면에 '금융위, 삼성증권ㆍ굿모닝신한증권 등에 경고ㆍ주의'라는 제목 하에 200자 정도의 짧은 '브리핑' 기사로 다뤘다. <매일경제> 등 경제신문들은 짧은 단신기사로 다뤘다.
반면 <한겨레>는 이날 2면에 "'삼성비자금 사건' 삼성증권도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비중있게 다뤘다. <경향신문>은 이날 경제면인 16면에 관련기사를 배치했다.
"삼성 눈치보기로 감독 책임 내던진 금융위"
한편 경제개혁연대, 참여연대, 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4일 공동성명을 내고 금융위의 징계 결정에 대해 "재벌의 눈치를 보느라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금융감독기관의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행태에 공분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재벌 총수 일가의 세금포탈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중대 범죄를 저지른 삼성증권과 이에 연루된 우리은행 등 금융기관들에 대해 형식적인 경징계로 면죄부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관련 사건 형사재판의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치를 취하는 '눈치보기' 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삼성증권 등 금융기관의 책임을 사실상 묻지 않은 금융위 결정에 대해 "삼성특검의 수사결과 차명계좌로 확정된 것만 총 486명 명의의 1199개 계좌에 달하며 그 중 상당 수가 삼성증권 계좌로 확인되면서, 삼성증권이 삼성그룹의 조직적인 차명계좌 개설.관리에 깊숙이 관여한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징계수위에 대해서도 이들은 "당연히 인가취소나 최소한 영업점 폐쇄 등 엄정한 제재조치를 통해 법령의 엄중함을 확인하고 훼손된 금융질서를 바로 잡아야 했음에도 금융감독 당국은 또 한번 삼성 앞에서 작아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스스로 존재근거를 부정했다"며 "공적자금이 투입된 우리은행 등 이 사건에 연루된 다른 금융기관들이 금융기관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법령 준수의무를 저버리고 위법행위에 연루된 것에 대해서도 경징계에 그쳤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판의 목소리에 대해 대다수의 언론이 침묵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