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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짜, 일주일만에 감독 되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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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짜, 일주일만에 감독 되다 (2/2)

[Film Festival] 인디포럼 + 미디액트의 영화제작 워크숍 밀착취재기

인디포럼은 매년 개막 한 주 전에 미디액트와 함께 일주일간 '독립영화제작 쪼인트 클래스'를 연다. 일주일간 10분 내외의 독립 단편영화를 만들어보는 일종의 '단기 속성' 체험 프로젝트다. 첫 날이 주로 오리엔테이션으로 진행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단 5일. 영화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초짜들도 많은 만큼 카메라 다루는 법과 편집에 대한 속성 강의도 곁들여진다. 5명에서 7명이 한 조를 이루고 여기엔 이미 활동중인 독립영화 감독들이 강사로 배정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쪼인트 클래스가 5월 18일부터 23일가지 1주일간 미디액트에서 열렸다. 3회째를 맞은 쪼인트 클래스에서 극단편 네 팀이 꾸려졌다. 여기에 올해에는 특별히 다큐멘터리 팀도 만들어졌다. 프레시안이 일주일간 다큐멘터리팀과 동행해 그들의 영화만들기 체험을 지켜보았다. 극영화보다 오랜 프리 프로덕션이 필요한 다큐멘터리인 만큼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이들의 열정은 다른 팀에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5일만에 결국 <못 만날 것 같아서>라는 제목의 근사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어냈다.

카메라, 롤!

목요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했는데 하필 촬영하기로 한 날의 날씨가 이렇다니. 비는 하루종일 왔고 오후에도 개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은혜 씨와 통화를 해보니 탑골공원에서 촬영중이고, 곧 신길역 근처로 이동할 예정이라 한다. 다큐멘터리 팀에는 카메라가 두 대 배당된 만큼 팀을 다시 두 팀으로 나누어 찍고 있다고 했다. 탑골공원 팀은 김준호 감독과 은혜, 혜민 두 사람. 그리고 문정현 감독과 나머지 세 사람 세례, 문영, 경현 씨들은 강남에서 촬영중이라 했다. 아마도 성형외과 병원에서 찍는 것이리라. 그리고 신길역 근처에서 5시경에 팀원이 모두 모이기로 한 것이다.

문영 씨의 교회가 신길 역 근처에 있었다. 이곳에서 일정 부분을 촬영을 하자고 한 건 문정현 감독의 아이디어다. 여성에 대해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기독교에서 문영 씨의 위상은 흥미롭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의 감리교는 전세계에서 여성에게 가장 먼저 목사 안수를 준 곳이라 한다. 심지어 미국의 감리교도 한국의 예를 따랐다고 했다. 기독교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장로교가 워낙 절대다수인 만큼, 팀원들 모두가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 목사로서의 문영 씨의 삶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교회 안 십자가를 배경으로, 은혜 씨와 경현 씨가 은영 씨의 인터뷰 장면을 찍기로 한다. 은영 씨는 특유의 똑 떨어지는 말투로 여성 목회자로서 겪는 어려움, 그리고 교회 안에서 일반적인 남녀차별의 풍경을 담담히 전해준다. 하지만 나중에 최종 편집 때 이 인터뷰 씬은 결국 통째로 잘리고 말았다.

▲ 교회에서 인터뷰 씬을 촬영하기 위해 김준호 감독이 카메라를 세팅해 주고 있다. 이들은 인터뷰 씬을 찍은 후 수다 씬을 찍기 전 팽팽한 의견대립을 겪기도 했다.ⓒ프레시안

촬영중에도 우리는 싸운다

잠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나중에 교회로 합류하기로 한 세례 씨와 경현 씨를 기다리는 와중, 멤버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전날 촬영계획을 짜면서 약간의 오해가 생긴 모양이다. 그리고 그 오해에 따라 문영 씨는 이미 머릿속에 인서트 컷을 포함해 최종 편집본의 콘티가 완전히 잡힌 뒤였다. 하지만 은혜 씨와 혜민 씨가 듣기엔 은영 씨가 얘기해주는 화면이 너무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은영 씨에 비해, 은혜 씨와 혜민 씨는 처음엔 이의를 제기하면서도 소극적이었다. 지켜보는 입장으로서는, 엄연히 '팀 작업'인 만큼 서로가 합의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한 사람의 주장이 관철될 경우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은혜 씨나 혜민 씨가 이제 20대인 만큼, 가장 맏언니에 목사님이기도 한 은영 씨에게 자칫 기가 눌려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피력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곧 흥미로운 광경이 이어졌다. 혜민 씨와 은혜 씨가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곧 팽팽한 의견대립이 이어졌다. 양쪽 모두 물러설 기미가 아니었다. 불꽃이 튀는 듯했을 정도다. 하지만 '싸운다'는 말은 좀 과장이다. 이들의 대립은 불꽃이 튈망정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았고, 이것이 개인 작업이 아닌 팀의 작업이란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대립은 어디까지나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게다가 서로 대립하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영화에 다루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쏟아져 나오며 순식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졸지에 이들의 논쟁이 여성의 몸에 대한 이견차로 넘어갔다. 그 순간, 만약 내가 다큐멘터리 감독이었다면 바로 이 장면이 영화의 좋은 장면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깨달은 건 나만이 아니었다.

문영 씨와 혜민 씨, 은혜 씨가 동시에 외쳤다. "차라리 이 장면을 카메라를 돌리고 찍었어야 했는데!" 이 상황은 논쟁 와중 여러 번 반복됐다. 그리고 거기에서 문영 씨가 고집을 꺾었다. 결국 이들은 문영 씨 교회의 거실 식탁에 둘러앉아 (앞에 간식거리를 잔뜩 쌓아놓은 채) 한쪽에 카메라를 켜놓고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다. 카메라를 설치하는 와중에도, 영화 속에 담긴다면 정말 좋을 법한 장면이 계속 연출된다. 나이와 경험이 모두 다른 만큼, 여성의 몸과 사회적 지위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문정현 감독이 도착했다.

관찰하던 기자, 졸지에 출연자 되다

문정현 감독이 카메라를 설치해주고 옆방으로 빠진 새에, 이들은 수다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사진을 찍고 취재를 하고 있던 나를 이들이 부른다. "기자님도 같이 하셔야 돼요." 하긴, 20대 여성들과 40대 여성이 있으니 그 사이에 내가 30대 여성으로 중재자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졸지에 관찰자에서 참여자, 출연자가 되어 이들의 수다에 함께 하게 됐다.

카메라가 켜진 상황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아까 벌이던 논쟁의 분위기만 못하다. 모두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데에 와서는 조심스러워진다. 나 역시 갑자기 출연자가 돼서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풀어도 될까 고민한다. 뒤이어 경현 씨도 세례 씨도 속속 도착하고 이야기는 점점 중구난방이 된다. 생리에서부터 임신의 공포, 출산,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 그리고 각자 생각하는 그런 구조적 차별의 이유와 가부장제의 모순까지. 어느 순간 세미나 분위기까지 띄게 된다. 하지만 나와 문영 씨를 놀라게 했던 사실이 있다. 20대인 멤버들은 모두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받아들이는 차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오랫동안 억울해했던 나로서도, 살아온 시간만큼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은 차별을 받았던 문영 씨도, 모두 놀랐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점점 나아지고 있단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시간의 격론 끝에 촬영이 끝났다. 은혜 씨와 혜민 씨는 역시 카메라를 돌리기 전, 문영 씨와 논쟁하면서 나왔던 얘기들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옆방에서 수다를 듣고 있던 문정현 감독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밤늦게 닭갈비 집에서 늦은 식사를 하면서 문정현 감독은 여자들의 난상수다가 충분히 재미있고 때로 쇼킹했다고 했다. 문영 씨는 여전히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혜민 씨는 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찍기 위해 학교 주변에 이미 친구들을 모아둔 상태라 급히 카메라를 들고 그곳으로 향한다.

▲ 편집과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왼쪽 가운데는 김동명 감독 조. ⓒ프레시안

피말리는 편집과 보충촬영

금요일, 오후에 미디액트로 향하니 다들 편집기 앞에서 무언가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촬영한 분량을 확인하거나 자신이 맡은 부분의 내레이션을 쓰고 있거나. 한쪽에는 영화 인트로에 쓸 종이인형 꼴라쥬를 위해 잡지를 오린 종이들이 널려 있다. 같은 방에는 김동명 감독의 조원들도 후반 작업을 하고 있다. 저마다 모니터를 쳐다보며 열중하다가 각자 쓴 내레이션을 갖고 문정현 감독과 상의를 하거나, 갑자기 미디액트 건물 계단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아 보충촬영을 하기도 한다. 둘이 혹은 셋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하다 헤어지고 다시 다른 멤버와 머리를 맞대고. 편집실 안의 온도는 서늘한데 열기만큼은 뜨겁다. 다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긴긴 밤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결국 혜민 씨와 문영 씨는 편집실에서 밤을 샜다. 문영 씨의 교회에서 찍은 수다 씬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골라내는 작업. 이 날 두 사람은 많은 속 얘기를 하면서, 수다 씬을 찍을 때 부딪히긴 했지만 별다른 생각의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다고 한다. 또한 실제 그 날 무슨 이야기를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했는지와, 이것이 카메라에 찍혀 이미지로 제시되었을 때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도 눈으로 확인했다. 문영 씨는 수다 씬을 보고 자신이 그렇게 고집이 세고 독선적인 사람인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혜민 씨는 "내가 저런 말을 왜 했지?" 스스로 당황해했다. 그리고 이것은, 실은 문정현 감독의 배려였다.

▲ 미디액트 건물 계단과 주변 편의점에서 보충촬영을 하는 중. ⓒ프레시안

마침내 영화가 완성됐다

마침내 워크샵 마지막 날인 토요일. 모든 팀들이 영화를 완성하고 함께 모여 시사를 갖는 날이다. 시사가 예정된 시간보다 두 시간 먼저 미디액트에 도착해보니, 각 조마다 마지막 후반작업에 여념이 없다. 다큐멘터리 팀은 팀원들이 각자 자신이 찍은 분량을 가편집한 뒤, 이것 전체를 모아 세부편집을 하던 중이었다. 문정현 감독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혜민 씨와 문영 씨는 아침 9시에야 집에 갔다가 오후에 왔고, 다른 멤버들은 새벽 일찍부터 편집실에 도착해 작업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 문정현 감독의 입에서 "드디어 완성!"이라는 말이 터져나왔다. 모두들 박수를 쳤다.

미디액트 강의실에 하나둘 조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첫날엔 다들 그리도 어색해하더니, 이제는 알아서 조별로 모여앉아 웃고 떠들고 난리가 났다. 카메라를 들이대도 이제는 척척 포즈까지 취해준다. 마침내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됐다.

▲ 영화 완성 후 시사를 위해 대강당을 모여든 사람들. 각 팀의 강사로 참여한 감독들은 영화상영 후 <영화의 주먹>에서 나왔던 특유의 손가락 주먹을 들어보이며 환호했다. ⓒ프레시안

에필로그

한 편의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겠지만, 또 누군가에겐 낯선 이들과 함께 모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움직이며 교류를 한다는 것과 같다. 문정현 감독과 김준호 감독에 의하면, 다큐멘터리를 만든다는 것은, 찍히는 대상은 물론 찍고 있는 자신에 대해 더욱 잘 알게 된다는 말과 같다. 단 5일간, 다큐멘터리 팀의 다섯 여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 부대끼며 열정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수줍게 웃으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쳐내고 같이 공동작업을 하면서 이들이 얻은 것은 단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냈다는 성취감만은 아니다. 영화 작업을 하며 몰랐던 자신에 대해 알게 되고, 새로운 도전을 경험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반대해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는 방법, 자신의 주장을 말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방법, 부딪히는 의견들 사이에서 서로 설득하고 타협하는 방법. 또는, 다큐멘터리에 다른 이의, 그리고 자신의 사적 경험과 프라이버시를 어디까지 풀어낼 것인가에 대한 윤리적인 고민과 과제도. 그렇기에 좌충우돌하면서 만든 다소 서툴고 아쉬움 많은 영화라도, 그들에겐 소중한 데뷔작으로 남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팀이 만든 <못 만날 것 같아서>는 물론이고, 극영화 팀들이 만든 <두 명>(강진아 감독 팀), <영화의 주먹>(김동명 감독 팀), <보고 있다>(조규장 감독 팀), <성년 땅괴물>(윤성현 감독 팀) 역시 초보들의 영화치고 훌륭한 완성도와 유머를 자랑한다.

이 작품들은 인디포럼 폐막일인 금요일(5일) 오전 11시에 인디스페이스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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