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또 하나의 가짜문제 -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은 지구상에서 손꼽히는 반공국가였고, 지금은 거의 독보적인 지위를 자랑한다. 미소 냉전이 끝나기 전 1986년에는 국회의원이 "반공 말고 통일이 국시"라고 발언했다가 징역을 살아야 했다. (이 사건의 주인공 유성환 의원은 86년 1심에서 징역1년과 자격정지1년을 선고받아 복역했고, 1991년 항소심과 1992년 상고심에서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김영삼이 1990년 삼당합당으로 민자당 총재가 된 뒤의 일이다. 유성환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미소 냉전은 끝난 지 20년이 다 되고, 한반도 냉전도 끝나가는 듯 하더니 최근에는 다시 냉랭해졌다. 그런데 이런 나라인데도 도처에서 "좌빨"들이 설치는 듯하니, 과연 공산주의자를 뿌리 뽑기는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자들이 홍길동처럼 둔갑술을 익혀서가 아니라, 아무에게나 기분만 나빠지면 공산주의자라고 뒤집어씌우는 변덕에서 비롯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본주의라는 말은 어떤가? 자본주의에 여러 가지 약점과 폐해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분업과 기계문명으로 말미암은 소외, 자본주의라는 구조가 조장하는 탐욕과 착취, 그런 자본의 앞잡이가 되어 착취를 영속화하기 위해 봉사하는 언론과 정치 등이 대략 자본주의의 커다란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을까? 앞에서(제1부 제4장 제1절) 자유와 평등이 대립항일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명목척도보다 순서척도를 통해 사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듯이(제1부 제3장 제2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도 순서척도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립항일 필요가 없다. 자유와 평등이 단선적 모순이라기보다는 복합적 균형의 문제이듯이, 성장과 분배도 복합적인 균형의 문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라고 우리가 흔히 일컫는 체제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축복과 자유를 갖다 준 것도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분업과 기계문명이 소외를 초래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분업과 기계문명 덕분에 인류는 풍요와 편리를 누린다. 자본주의의 탐욕과 착취란 자유와 창의성을 장려한 부작용이며, 언론과 정치가 자본에 봉사하는 경향은 바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시민들의 지성과 덕성에 의해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다수에게 참을 수 있는 정도로 관리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의 보통 사람들에게 자주 발견되는 부동산 투기욕심이 자본주의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인간성에 내재하는 본성에 기인하는지는 논의할 생각이 없다. 단, 그런 두 입장 사이의 이론적인 경합은 아마 내가 죽은 후에도 언제 끝날지 모를 정도로 오래 계속되리라는 전망은 아주 자신 있게 할 수 있다.
비정규직, 도심 재개발, 지역균형발전, 언론계의 질서, 집회 및 시위의 권리에 관한 논쟁, 경부대운하 또는 4대강 정비, 등등, 수없이 산적한 정책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탐욕의 원인이 자본주의에 있는지 인간본성에 있는지에 관한 이론적인 논쟁의 결말을 기다려야 한다고 볼 사람이 있을까? 이 점만 보더라도 체제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사회주의로 대체한다는 발상은 어리석고 편협한 망상이지 책임감 있는 정치적인 구상이 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극우파가 아무나에게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듯이, 좌파들은 보기 싫은 상대를 "자본주의"라고 부르는 언어적 분풀이에 불과한 면이 분명히 있다. 이는 다른 각도에서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와 체제 차원에서 대척되는 사회주의란 소련, 중국, 북한, 쿠바 등지에서 20세기에 실험된 유형을 빼면 주로 푸리에나 오웬, 카베, 프루동 등의 발상을 계승한 소박한 공동체 밖에는 없다.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이 체제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점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소박한 자발적 공동체라는 형태는, 비록 내가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기는 한다. 미래의 바람직한 사회생활의 형태를 모색하는 데, 자발적 공동체의 실험들은 대단히 심중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단, 현재 어떤 형태의 생태공동체라고 할지라도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생태공동체의 실험들은 모두 유사시 기존 자본주의의 생산력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실제적이고 심리적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다양한 생태공동체들의 실험이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성공을 전체 사회구성원들에게 적용하게 된다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철폐하는 정도가 아니라 수선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협동을 아무리 강조하더라도 경쟁의 요소가 없어질 수도 없고, 없애는 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 누차 말했듯이 탐욕이나 이기심을 없애야 한다고 보는 제일층위의 발상에서 벗어나, 탐욕이든 이기심이든 일단 인격적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존중하는 위에 어디서부터가 넘지 말아야 할 한계인지를 명시하고 관리하는 제이층위의 사유가 중요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국가들이 무너진 이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은 현저하게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유럽 사회주의의 경우 에두아르드 베른슈타인, 장 조레스, 레옹 블룅 등과 같은 현실감각을 갖춘 지성인 지도자들에 의해 이미 20세기 초반에 마르크스 식의 "혁명"이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깨달았다. 유럽보다 훨씬 인식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실용주의에 익숙한 영국과 미국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을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으로 바꾼다는 마르크스의 발상은 애당초 진지한 정치적 대안이라는 지위조차 얻은 적이 없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는 1980년대까지 미개한 정부권력이 이른바 "빨간 책"을 금지했던 여파로, 아직도 마르크스 아류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진보의 의미를 규정하는 사춘기적 향수가 여러 곳에 강고하게 남아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대개는 바로 그런 향수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란 일차적으로 1980년대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으로 대표되는 정책노선을 가리키는 정치적 용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때로 네오콘, 즉 신보수주의라고도 불린다. 내용은 자유시장, 자유경쟁, 자유무역을 골조로 하는 고전자유주의와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용어가 현재의 한국에 대해 가지는 함의의 무게를 달아보려면 맥락적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에서 레이거노믹스에 이르는 정치경제이론의 흐름을 요약해서 살펴보자.
앞에서(제1부 제3장 제2절) 언급했듯이 레세-페르(laissez-faire)라는 용어는 17세기 중엽에 프랑스 중농주의자들이 즐겨 사용하던 구호였다. 그들은 남을 찍어 눌러서 자기가 올라가는 방식 말고, 각자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사회를 위해 절대국가의 간섭을 배제하는 의미에서 레세-페르를 외쳤다. 자기가 일한 만큼 자기가 취할 수 있도록 한다면 모두 열심히 일할 테니까 전체의 부도 증진된다는 발상은 16세기초 마키아벨리도 역설했던 번영의 기본원리로, 18세기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데이비드 흄과 아담 스미스에 의해서 영국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그들의 정신을 이어 제러미 벤담, 제임스 밀, 존 브라이트, 리차드 코브덴, 존 스튜어트 밀 등이 자유주의 정치경제학을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주장하고 전파했다.
그런데 이런 이론이 19세기 영국정치에서는 주로 누구의 자유를 지향하느냐에 따라 두 갈래의 함축을 가졌다. 지주귀족으로 대변되는 전통적 지배계층에 대한 상공인 계급의 자유를 가리킬 수도 있었고, 노동자와 농민계급을 가리킬 수도 있었다. 현실정치에서 후자의 자유는 19세기 말엽까지 주요 의제의 지위에 오르지 못해, 전자의 자유에 부수되는 의제로 영국자유당에 의해 대변되었다. 하지만 1884년 노동자들이 참정권을 쟁취하고 1902년 노동당이 창설되면서, 자유당 지지층 가운데 상대적 좌파들이 노동당으로 급속히 편입되었다. 그리고 1920-30년대를 지나면서는 노동당이 보수당의 상대역으로 떠올라, 자유당은 제3당으로 전락했다. 그렇게 되자 자유당 우파마저도 다수가 보수당으로 들어가서 자유당은 존폐의 위기까지 몰린다.
이런 과정에서 19세기 중엽 이후 자유주의를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해석하는 이론가들이 나타났다. 토마스 힐 그린(1836-1882), 레너드 홉하우스(1864-1929) 등이 그들로, 이들의 이론을 고전자유주의와 구분해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불렀다. 존 스튜어트 밀(1806-1872)은 스미스와 리카도의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의 연결고리에 해당한다. 이 의미의 신자유주의는 사회적 자유주의라고도 불리며, "곤들매기의 자유는 붕어의 죽음"이라는 상식을 받아들여, 노동자들이 정치투쟁을 통해 자본의 권력에 저항할 권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누진세와 공공교육 및 공공의료 등 일련의 사회적 입법을 통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물론 이것은 오늘날 한국의 진보파에서 반대하는 신자유주의와는 다르다. 그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를 계승하고 있는 흐름을 neo- 말고 new를 써서 신자유주의(new liberalism)이라고 구분하는 사람도 있다.
오늘날 자주 언급되는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란 멀리는 프랑스의 프레데릭 바스티아(1801-1850)에서 기원을 찾을 수도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히틀러를 피해 미국과 영국에 정착한 미제스와 하이에크의 정치경제학을 가리킨다. 이들의 이론에 신(新, neo-) 자가 붙은 사연도 역사적 우연이다. 대공황을 예견하고 뉴딜 정책에 도움을 준 케인스경제학은 제2차세계대전 후 브레튼 우즈 체제의 근간이 되었다. 이 체제는 각국 통화 사이의 환율 변동을 일정 범위 안에 고정하고, 각국 정부는 완전고용, 경제성장, 복지를 지향하면서, 필요하다면 시장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때문에 러기(John Ruggie)는 이를 "고착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 체제는 안에서 삐꺽거리다가 마침내 1971년 미국이 달러 가치와 금의 연동을 해제함으로써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불붙은 "자유시장"와 "정부개입" 사이의 논쟁은 1980년 레이건의 당선으로써 미제스-하이에크-프리드먼-노직 계열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그리하여 민영화, 규제완화, 재산권 강화, 감세, 복지예산 삭감, 균형재정, 국제자본거래 자유화, 무역장벽 철폐,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가 세계를 주름잡게 되었다. 이는 정치적으로도 노동계의 파업이나 일반적인 항의시위를 "법과 질서"라는 이름으로 진압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포함한다. 종전의 케인스판 자유주의, 또는 "고착된" 자유주의에 비해서 이것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좀 장황하지만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된 두 갈래의 맥락을 정리한 목적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사용하는 방식에 충실하게 우리도 그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따위에 있지 않다. 영국이든 미국이든 유럽이든 현실정치의 공방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사용될 때에는 단순히 민영화, 규제완화, 복지삭감, 등등의 항목으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얼마나 민영화하고 어떤 규제를 어떻게 완화하느냐고 하는 구체적인 정책대안들과 함께 논의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1980년의 레이건이나 2000년의 조지 W. 부시가 "신자유주의"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이 아니고, 1992년의 클린턴이나 2008년의 오바마도 "신자유주의 반대"를 공약으로 들고 나오지 않았다. "신자유주의"란 닉슨-레이건 이래 공화당이 시도한 일련의 정책들을 뭉뚱그려 비판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사적인 조어라고 보는 것이 더욱 온당하다.
물론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에는 수사적인 조어라고 하더라도 위에 간략하게 제시한 이론적, 정치적, 경제정책적 맥락이 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라는 말 안에 구체적이며 실질적인 내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말이 별로 구체적인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용어가 맥락적인 차원에서 진짜 문제에 관한 정책적 대안을 담고 있지 못한 채, 선험주의적인 이상형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한미 FTA와 이른바 "3불정책"의 예를 들어 내 의미를 부각하고자 한다.
한미 FTA를 한국에서는 진보파에서 반대하고 미국에서는 민주당이 반대한다. 그런데 매개되지 않은 시각에서 보면 반대의 이유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상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반대라고 하지만 실제 대응하는 행동방식은 크게 다르다. 미국 민주당은 전통적으로 보호무역의 입장이면서 동시에 대자본의 이익보다는 소자본 또는 무자본의 이익을 옹호한다. 그러나 보호무역이란 국제적으로 자국이 비교우위를 가지지 못하는 산업분야에 대한 이야기지, 자국이 비교우위를 가지는 분야에서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혹시 지구상에 있는지는 몰라도 별로 성공한 축에 끼지는 못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 민주당도 소고기의 한국수출은 강력하게 지지하면서 한국자동차의 미국유입에는 뭔가 제동장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반면에 한국진보파는 이런 선별의 안목 자체를 백안시하면서 일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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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적인 선호가 분명하기 때문에 미국 민주당의 반대는 결사적으로 추구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미국 의회는 당론보다 의원 개인의 판단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각 의원이 자신의 맥락에서 시의적으로 균형점을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의회에서 토론을 통한 조사와 연구가 행해지는 것이다. 개별 의원들이 나름대로 충분히 따져서 실상을 확인했다고 판단하는 시점에서 표결이 이뤄지고 결정이 내려진다. 반면에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는 각 의원들 자신이 이런 통상문제에 관해 나름대로 판단할 만한 구체적 맥락이라는 것과 접촉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당론 또는 진보진영의 여론에 의해,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 반대"라고 하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이념적인 차원에서 결정된 노선을 무책임하게 따라가게 된다. 그래서 성공하면 "나도 한 몫 꼈다"고 생색을 내고, 실패하면 "나는 그냥 따라 갔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전혀 다르지 않다. 참여정부에서 장관까지 지낸 사람들이 바로 그 정부가 추진하는 일을 단식투쟁으로 반대하는 사태가 그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비교우위가 낮은 부문의 손해를 높은 부문의 이익으로 어떻게 보전할 것인지,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양보를 얻어낼 지점은 무엇인지, 외교 관료들이 비밀주의로 일관해서 어떤 비효율이나 부패가 생길 수 있는지, 등등, 실질적인 문제제기를 통해서 조건부 반대를 표시했어야 한다.
"본고사,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를 허용할 수 없다는 이른바 삼불 원칙 역시 신자유주의적 신분세습은 안 된다는 추상적인 교조에서 비롯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교육이 신분제의 사슬이 된다면 물론 크게 우려할 일이다. 그러나 정책판단이란 신분제냐 아니냐는 추상적 이분법에 따라 이루어지면 안 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신분제를 유지 강화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는 정도에 비해서, 본고사나 기여입학제나 고교등급제를 허용한다고 했을 때 신분제의 정도가 얼마나 심해질지를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교육을 통해 신분이 세습되는 고리를 끊을 방법이 있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만약 현재의 세습고리를 다른 방법으로는 끊을 수가 없고, 오로지 신분세습의 일시적 악화를 통해 일반 시민들 사이에 강고한 각성과 반감이 발생해서 힘을 모아줘야 끊을 수가 있다면, 오히려 신분세습을 일시적으로 허용하는 것이 그것으로 확실히 끊는 길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해봤더니 신분세습보다는 기회균등이 이뤄지거나, 아니면 신분세습이 일어나더라도 사람들이 대개 꾸역꾸역 견디고 산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다.
삼불정책을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경험주의적 실태검증 절차에 따라 자유로운 논의가 일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경험주의적 실태검증 절차에 대한 합의가 없어서 양쪽 진영에서 근거로 삼는 실태가 서로 다르다면, 그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찾아야 한다. 나는 특히 이와 같은 실태확인을 위한 방법에 관한 합의가 우리사회 모든 영역에서 가장 절대로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방향의 구체적인 고려와 논쟁을 거쳐서 각자 내린 판단들이 집약된 공론을 찾아가려고 하지 않고, 논쟁 자체의 시작점에서부터 결과를 의심하고 원천봉쇄를 시도하는 것은 교육문제를 논의해서 개선책을 찾자는 태도가 아니다. "신자유주의"라는 선험주의의 도깨비를 가짜문제인 줄도 모른 채 두들겨 패기만 하면 교육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자신을 기만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요컨대 어떤 정책도 "자본주의-반자본주의", "신자유주의-반신자유주의"라는 이분법에 따라 비판하거나 옹호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선택이 그렇게 거칠기 짝이 없는 이념의 잣대로 이뤄진다면 교육과 같은 미묘한 영역에서 정책이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편적 원칙보다는 가능한 한 개별적이고 세부적인 사정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는 사례 위주의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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