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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짜, 일주일만에 감독 되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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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초짜, 일주일만에 감독 되다 (1/2)

[Film Festival] 인디포럼 + 미디액트의 영화제작 워크숍 밀착취재기

인디포럼은 매년 개막 한 주 전에 미디액트와 함께 일주일간 '독립영화제작 쪼인트 클래스'를 연다. 일주일간 10분 내외의 독립 단편영화를 만들어보는 일종의 '단기 속성' 체험 프로젝트다. 첫 날이 주로 오리엔테이션으로 진행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주어진 시간은 단 5일. 영화작업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초짜들도 많은 만큼 카메라 다루는 법과 편집에 대한 속성 강의도 곁들여진다. 5명에서 7명이 한 조를 이루고 여기엔 이미 활동중인 독립영화 감독들이 강사로 배정된다.

올해도 어김없이 쪼인트 클래스가 5월 18일부터 23일가지 1주일간 미디액트에서 열렸다. 3회째를 맞은 쪼인트 클래스에서 극단편 네 팀이 꾸려졌다. 여기에 올해에는 특별히 다큐멘터리 팀도 만들어졌다. 프레시안이 일주일간 다큐멘터리팀과 동행해 그들의 영화만들기 체험을 지켜보았다. 극영화보다 오랜 프리 프로덕션이 필요한 다큐멘터리인 만큼 영화를 만들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여기에 참여한 이들의 열정은 다른 팀에 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은 5일만에 결국 <못 만날 것 같아서>라는 제목의 근사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들어냈다.

독립영화,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

미디액트 대강의실에 서른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처음 모인 날. 이들의 눈은 열정과 호기심으로 반짝이지만 아무래도 첫날인 만큼 수줍음과 겸연쩍음을 감추긴 힘들다. 인디포럼 작가회의의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이송희일 감독의 강연과 조를 정하고 조별 첫 모임을 갖는 것이 이 날의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이번 쪼인트 클래스를 맡은 인디포럼의 신이수 감독과 미디액트 창작지원실의 김수경 씨가 능수능란한 진행 솜씨로 인디포럼 워크샵 신청자들을 환영해준다. 특히 김수경 씨는 독립영화계의 각종 크고작은 행사들의 사회자로 곧잘 불려다닐 만큼 진행과 사회 솜씨가 뛰어나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 개막식도 진중권 교수와 그녀가 함께 사회를 봤다.

▲ 이번 쪼인트 클래스를 담당한 미디액트 창작지원실의 김수경 씨(왼쪽)와 인디포럼 신이수 감독(오른쪽). 신이수 감독은 <나를 떠나지 말아요>, <구보씨일보> 등의 단편 독립영화들을 만들었다.ⓒ프레시안

이송희일 감독의 강연은 한국에서 독립영화란 무엇인가, 에 관한 것이다. 자본과 검열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며 한국독립영화협회가 결성되고, 이를 중심으로 감독들이 모이며 고민을 나누고 투쟁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역사가 바로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 독립영화 1호는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이다. <워낭소리>의 성공 이후 '상업적 가능성이 있고 약간 색다른 저예산 영화' 정도로 여겨지곤 하는 '독립영화'란 것이 진정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이다. 혹자들은 한국의 독립영화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국 독립영화의 역사는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시작된 역사다. 검열이 (형식상) 철폐된 이후로는 거대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창작자의 예술적 자유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 됐다. 한국의 독립영화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언제나 배고플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강연이 끝나고 조 추첨이 시작됐다. 강사를 맡은 감독들을 놓고 수강생들이 어느 감독의 조로 갈지 결정을 하는 것이다. 올해 강사는 모두 여섯 명. <네 쌍둥이 자살>, <팡팡퀴스죠 커플예선전> 등을 연출한 강진아 감독, 이번 인디포럼 상영작인 장편 <이상한 나라의 바툼바>를 연출한 김동명 감독, <낙타는 말했다>의 조규장 감독, 그리고 <아이들>, <여행극> 등을 만든 윤성현 감독이 극 단편 네 팀의 강사로 투입됐다. 또한 최근 개봉한 <할매꽃>의 문정현 감독과 <길>의 김준호 감독이 다큐멘터리 팀을 함께 맡게 된다. 역시나 김수경 씨의 절도 있으면서도 효율적인, 그러면서도 수강생 한 명 한 명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는 매끄러운 진행 솜씨로 조가 짜여진다. 수강생 중 단편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 1/3쯤, 나머지는 모두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생초짜들이다. 대체로는 자신이 본 적 있는 영화의 감독들을 선택하지만 웬만한 배우만큼 잘생긴 윤성현 감독이 가장 인기가 많다. 다큐멘터리 팀은 이제 갓 스무 살의 대학 신입생부터 마흔 살의 목사님까지, 여자만 다섯 명으로 팀이 짜여졌다.

▲ ⓒ프레시안

너무 수줍은 그녀들, 말문을 열다

아직 초면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큐멘터리 팀의 다섯 여자는 처음에 모두 수줍음이 너무 많고 소심해 보였다. 자기소개도 서로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거나 취재 카메라에 쑥쓰러워 얼굴을 가리기도 하고, 심지어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얼굴 안 나오게 해주시면 안 돼요?"라며 부탁할 정도였다. 과연 이 사람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이 될 정도였다.

오리엔테이션 이후 뒷풀이 자리에서 술을 한 잔씩 마시면서 조금씩 긴장이 풀리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교회의 담임목사인 선우문영 씨는 다른 멤버들이 '목사님'이라 부르는 것을 어색해했다. 같은 목적으로 모인 같은 사람들인 만큼 그냥 편한 호칭을 해주십사, 말한다. 취업준비생인 박경현 씨는 어릴 적부터 동물 다큐멘터리를 너무 좋아해 앞으로도 다큐멘터리스트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방송국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박혜민 씨는 원래 극단편 팀으로 가려다가 인원이 부족한 다큐팀에 나중에 합류했다. 대학 새내기인 조은혜 씨는 중학교 때부터 다큐멘터리에 반해 다큐멘터리를 하기 위해 대학도 영상과로 진학한 케이스다. 황세례 씨는 동아리에서 처음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막연한 호기심 때문에 수강신청을 하게 됐다고 했다. 결국 은혜 씨가 영상 전공이란 이유로 만장일치로 조장으로 결정됐다.

조용하고 수줍었던 이들이 확 말문을 열고 심지어 토론 분위기까지 가도록 만든 계기가 있었다. 바로 '종교' 얘기였다. 이건 목사인 선우문영 씨가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참 재미있게도 이 팀에는 3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종교적 갈등과 방황을 겪으면서 종교가 가하는 억압이나 배타성에 비판적이었다. 3대째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황세례 씨는 그래서 한때 개명을 고려한 적도 있다고 한다. 선우문영 씨 역시 보통 목사님은 아니었다. 목사라면 당연히 이런 주제엔 보수적이겠지, 싶었던 편견들을 하나하나 남김없이 깨주었다. 게다가 알고 보니 문정현 감독도 신학대학을 다닌 전력이 있다. 각자의 경험이 하나씩 둘씩 풀려나오자 다같이 '맞아 맞아' 분위기가 됐다. 인간이 만든 시스템의 불합리함 때문에 종교적 체험이나 믿음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말라는 선우문영 씨의 근심어린 조언이 이어졌다. 수줍어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이들을 보며, 처음의 걱정이 사라졌다. 이 팀이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는 게 너무도 명확해졌다.

드디어... 결정했어!

수요일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미디액트에서 카메라 조작법과 간단한 편집에 대해 창작지원실의 김수경 씨와 장은경 씨의 강의가 있었던 날이다. 조별 모임은 오후 늦게서야 시작된다. 이 날이야말로 시나리오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촬영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다. 저녁 늦게 조장인 은혜 씨에게 전화를 하니 이미 모임이 끝난 뒤였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여성의 몸'을 중심으로 생리와 임신, 흡연과 다이어트, 성형 같은 주제를 다루기로 했다는 것이다. 우엥? 종교에 대한 그 열정적이던 비판의 한목소리는 어디로 사라진 거지?

팀원이 모두 여성인 만큼, 해볼 만한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여성의 몸에 대해서는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이미 나와 있다. 만약 이를 피상적으로 다룰 경우엔 이제껏 만들어졌던 무수한 다큐멘터리들과 별다르지 않는, 새로울 것 없는 식상한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 이 팀은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려는 것일까. 어쨌든 은혜 씨는 다음 날인 목요일에 바로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알려줬다.

(2부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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