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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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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아직

[별, 시를 만나다]

'2009 세계 천문의 해'를 맞아 이미 연재 중인 '문화, 우주를 만나다'에 이어 '별, 시를 만나다'를 '2009 세계 천문의 해' 한국조직위원회가 운영하는 웹진 <이야진(IYAZINE)>과 공동으로 연재한다.

그간 한국 시단을 대표하는 시인 50인이 별, 우주를 소재로 한 신작시 50편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한 편씩 선보였다. 신작시 연재는 나희덕 시인의 시로 끝을 맺는다.

어둠이 아직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에도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 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와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알 수 없기에 두렵고 달콤한 어둠,
아,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은



사실 우리에게 익숙한 눈에 보이는 (어느 파장 영역에서든) 물질들의 질량을 모두 더해도 빙산의 일각이라는 사실은 우리를 무척 당혹스럽게 한다. 별들, 수천억 개의 별들이 모여 있는 은하들, 이런 것들을 모두 더해봐야 그저 그렇다는 얘기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중력적으로는 작용을 하는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열 배 정도가 된다. 대부분의 중력 작용이 암흑물질의 소관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눈에 보이는 물질과 암흑물질을 또 모두 합쳐봐야 우주 전체 에너지 (물질은 즉 에너지 이므로) 중 30% 정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나머지는 암흑에너지라고 불리는 아직은 정체불명의 것이다. 요약하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 중 70% 가량이 암흑에너지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암흑물질이고 눈에 보이는 별들, 은하들은 그저 몇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는 암흑물질의 어두운 세상일테고 더 큰 진실은 암흑에너지의 세상이라는 것이된다.

하지만 암흑에너지의 정체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다. 암흑물질의 정체도 일부는 밝혀졌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너무 어둠을 두려워 하거나 지레 어둠 찬가를 부르지는 말자. 법 보다는 주먹이 먼저라고, 국부적으로 우리들의 일상에 영향을 주는 것을 우리 눈에 보이는 그 하찮은 것들일테니까. 그런 것들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우자.



천문학에서는 은하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을 '암흑 물질(dark matter)'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겸허한 긍정이나 고백인 셈이다. 알 수 없음에서 출발해 미지의 어둠을 항해한다는 점에서 시인과 천문학자는 비슷한 운명이다. 그나마 어둠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하늘에 드문드문 빛나는 별이 있기 때문이다. 별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어둠이라는 배후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존재라는 점에서 더욱 빛난다. 인간이여, 끝내 알게 되지 않기를. 암흑 물질이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는 세계에 대하여. 별은 그 탕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영원히 빛날 것이니!

나희덕은…

1966년생.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야생사과>, <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 <사라진 손바닥> 등. 김수영문학상(1998), 현대문학상(2003), 소월시문학상(2007)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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