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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는 무죄, SDS는 유죄'…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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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랜드는 무죄, SDS는 유죄'…이유는?

"안전한, 너무나 안전한 판결"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은 닮은꼴이다. 사건의 배경과 목적, 결과가 거의 같다. (☞CB, BW 용어 해설)

비슷한 사건, 다른 판결…이유는?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삼성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을 돕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들이다. 또, 삼성 비서실(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개편)이 마련한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일어난 사건들이다. 회사의 재산을 시중가격보다 훨씬 싼 가격에 이재용 전무에게 넘겼다는 사건 내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법원은 29일 판결에서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은 무죄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은 유죄를 선고했다. 이유가 뭘까.

대법원이 이날 제시한 논리에 따르면, 이 두 사건은 차이가 있다.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은 주주배정방식이고, 삼성SDS BW 사건은 제3자 배정방식이라는 것. 그리고 '주주배정방식은 무죄, 제3자 배정방식은 유죄'라는 게 대법원의 입장이다.

대법원 "주주에게 신주 발행 시, 반드시 시가대로 할 이유 없다"

대법원이 '주주배정 방식은 무죄'라고 판시한 이유를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회사가 신주를 유상으로 발행할 경우에는 회사는 그 인수대금만큼 자본 및 자산이 늘어나서 혜택을 입는다. 반면, 주주가 주식을 사들인 이후 추가적인 출자를 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회사가 무상으로 신주를 발행하는 것도 허용된다. 이런 점을 고려해보면, 회사가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발행할 때 반드시 시중가격대로 발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시중가격보다 낮게 발행가격을 정해서 회사가 주주들로부터 가능한 최대한의 자금을 유치하지 못했다는 점이 배임죄의 구성요건이 될 수는 없다. 경영진이 회사의 재산보호 의무를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3자에게 신주 헐값 발행하면 회사는 손해"

이어 대법원이 '제3자 배정방식은 유죄'라고 판시한 이유를 풀어 설명하면 이렇다.

"기존 주주가 아닌 제3자가 신주를 인수할 경우, 제3자와 회사의 관계를 기존 주주와 회사와의 관계와 동일하게 취급할 수는 없다. 제3자에게 시중가격보다 낮게 신주를 발행하면, 시중가격으로 발행한 경우와의 차액만큼 자산을 늘릴 기회를 회사가 일부러 포기한 셈이 된다. 이 경우는 회사가 손해를 본 것으로 보는 게 옳다. 기존 주주들 역시 손해다. 기존 주주들이 갖고 있는 주식의 실질적 가치가 희석되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손해는 구별돼야 한다."

기존 판례 벗어나지 않으려다 보니, 부자연스러운 판결 나와

이런 설명을 접하면, 의문이 든다. 회사의 손해와 주주의 손해를 구별한다면, 회사가 기존 주주들로부터 가능한 최대한의 자금을 유치하도록 노력하는 게 옳지 않을까. 그리고 회사 경영진이 이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소극적인 의미로나마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만약 이런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면,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은 무죄"라는 논리를 삼성SDS BW 사건에도 연장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실제로 오랫동안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은 무죄"라고 주장했던 한 변호사는 같은 논리에 따라 삼성SDS BW 사건 역시 무죄로 보는 게 옳다고 말했다. 요컨대 이 두 사건이 모두 무죄가 되거나, 모두 유죄가 되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자연스러운 결정이 나온 배경에는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무시할 수 없었던 사정이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01년 CB를 헐값에 발행해 임직원들에게 배당한 뒤 되파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을 챙긴 맥소프트뱅크 사건에서 배임죄를 인정했다. 이런 판례는 삼성에버랜드 사건으로 기소된 허태학·박노빈 씨 사건(삼성에버랜드 전직 사장들) 재판을 진행한 1·2심 재판부가 유죄를 선고한 근거가 됐다. 이런 판례에 따르면,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신주를 발행한 사례에 대해서는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에버랜드는 '주주배정방식'" 논리, 실효성 있나?

결국 대법원은 기존 판례와 크게 상충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삼성 측에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는 삼성 지배 구조에서 핵심 고리 역할을 하는 삼성에버랜드에 대해서는 법적 걸림돌을 치워주되, 삼성SDS 등 다른 사건에서는 기존 판례를 따랐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주주배정방식'과 '제3자 배정방식'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논리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29일 대법원 판결 직후,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이 "대법원이 안전한, 너무나 안전한 선택을 했다"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리고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에서 이런 구분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삼성 문제를 오랫동안 다뤄왔던 학자들의 판단이다.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당시 '주주배정방식'을 취한 것은 형식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CB를 인수한 주주들은 곧바로 실권해 이재용 씨에게 넘겼으며, 이런 작업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삼성에버랜드 주주들이 당시 삼성 계열사였으며, 이들은 모두 삼성 비서실(구조본)의 통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29일 판결이 나온 뒤,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 그룹은 비서실이 통제하는 사실상 하나의 회사라는 점을 간과한 판결"이라고 말한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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