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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억으로 200조 재벌 삼킨 비결"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돌아보기

"200조 원 매출 재벌의 경영권 장악하면서 낸 세금은 고급 아파트 한 채 값."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관한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뜻하는 바를 짧게 요약하면 이렇다. 29일 최종심에서 무죄 판결이 난 이 사건은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삼성 그룹 경영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지난 2000년 법학자들의 고발로 소송이 진행됐고, 1·2심 법원이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최종심인 대법원은 결국 기존 판결을 뒤집었다. (☞관련 기사: "노무현 가던 날, 이건희 父子 웃었다", 盧에 침묵하던 재계, '삼성 무죄 판결'엔 일제히 "환영")

이재용이 '재테크 달인'이어서?…삼성 계열사의 조직적 뒷받침 때문

많은 이들에게 삼성에버랜드는 그저 놀이동산일 뿐이다. 이런 회사가 전환사채를 유난히 싸게 발행했다는 게 왜 삼성 그룹 경영권 장악에 관한 일인지를 알려면 잠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1995년, 당시 일본 게이오대 대학원에 다니던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아버지인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에게서 61억 원을 받았다. 어지간한 빌딩 한 채 값도 안 되는 돈이다. 그런데 이 전무는 이 돈을 밑천 삼아 200조 원 매출을 거두는 거대 재벌 삼성의 경영권을 장악했다. 이 과정에서 이 전무가 낸 세금은 증여세 16억 원에 불과했다.

이 전무가 '재테크의 달인'이었던 걸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재테크 실력만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일이라는 점. 삼성 계열사의 조직적인 움직임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움직임을 지휘한 것은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이었다. 이들의 지휘에 따라 이뤄진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12만 7750원짜리 CB를 7700원에 구입

▲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 그는 29일 대법원 판결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뉴시스
이 전무는 종자돈 45억 원(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서 받은 돈 61억 원에서 증여세 16억 원을 뺀 나머지)이 생기자마자, 삼성 계열사의 주식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방식으로 거침없이 불려갔다. 그리고 1년 뒤인 1996년 12월, 이 전무는 96억 2000만 원 어치 삼성에버랜드 CB를 사들였다. 당시 삼성에버랜드 CB의 세법상 평가액은 12만 7750원이었다. 하지만 이 전무가 구입한 가격은 7700원에 불과했다.

당시 삼성에버랜드가 CB를 기존 주주들에게 세법상 평가액의 6퍼센트에 불과한 금액에 발행했는데, 이를 인수한 주주들은 곧바로 실권한 뒤 이 전무에게 발행가만 받고 넘겼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CB, 즉 전환사채는 채권자가 일정 기간 내에 미리 정해진 조건으로 주식을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회사채를 뜻한다. 법률적으로는 채권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잠재적 주식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삼성에버랜드 CB의 가치를 산정하는 일은 간단치 않다. 주식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식 가격을 계산해야 하는데, 비상장 회사인 삼성에버랜드 주식의 정확한 가치는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CB 사건을 맡았던 1·2심 법원은 아무리 인색한 기준을 적용해도, 삼성에버랜드 CB가 1만 4825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재용 전무가 터무니없이 싼 가격에 삼성에버랜드 CB를 사들였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1·2심 법원은 삼성에버랜드 전직 사장이었던 허태학·박노빈 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회사의 재산을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넘겼으므로, 경영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배임죄'를 저질렀다는 것.

불법 논란 휩싸인 에버랜드는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 그룹 내에서 차지하는 독특한 위상 때문이다. 일반인들에게 에버랜드는 그저 놀이동산일 뿐이지만, 이건희 일가에게는 그렇지 않다.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로 돼 있는 삼성 지배구조의 핵심 고리가 삼성에버랜드다. 여기에는 사정이 있다. 이건희 전 회장은 한국 최고의 부자지만, 매출 100조 원 대의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를 장악하기에는 돈이 부족하다. 그래서 금융 계열사를 동원해 삼성전자를 장악해야 했다. 그리고 금융계열사는 다시 삼성에버랜드의 지배를 받도록 했다. 결국 삼성에버랜드만 확실히 장악하고 있으면, 삼성 계열사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재용 전무가 삼성에버랜드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일로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되면, 삼성 지배 구조 전체가 흔들린다. 삼성이 1990년대 후반 판·검사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경영권의 핵심인 삼성에버랜드를 불법 논란에서 건져내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삼성의 이런 노력은 성공했다. 29일 대법원은 10년 이상 논란이 돼 왔던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법적 걸림돌은 사라지게 됐다.

'주주배정 방식' 형식만 갖추면, 세금 부담 없이 경영권 장악 가능

하지만 삼성 밖으로 눈을 돌리면 문제는 널려있다.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이날 나온 대법원 판례가 두고두고 화근이 되리라는 주장이다.

삼성에버랜드가 헐값으로 발행한 CB를 인수한 것은 주주들이었다. 따라서 '주주배정 방식'이다. 그런데 CB를 인수한 주주들은 자발적으로 실권해 제3자인 이재용 전무에게 넘겼다. 이로써 이 전무는 세금 부담 없이 적은 돈으로 삼성에버랜드 대주주가 됐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날 '주주배정 방식은 무죄'라는 판례를 남겼다.

따라서 이재용 전무를 모방한 사례가 속출하리라는 게 시민단체들의 설명이다. '주주배정 방식'이라는 형식만 갖추면, 비상장회사 CB를 헐값에 넘기는 등 방법으로 세금 부담 없이 경영권을 획득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상장회사 주주들과 사전 계획을 세워둔 뒤, 이를 실행하기만 하면 된다.

'이재용 모델' 속출 우려…"신영철만 없었어도"

시민단체들은 이날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이 '6대 5'로 아슬아슬하게 대립한 배경에는 이런 우려감이 있다고 풀이한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역시 비슷한 걱정을 했으리라는 설명이다. 이들의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당시 CB를 인수한 주주들은 모두 당시 삼성 계열사였다. 삼성 비서실(훗날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개편)의 지휘를 받는 입장이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주주들의 실권이 일제히 일사분란하게 이뤄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입장에 힘이 실린다. 이렇게 보면,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실권했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힘들다. '주주배정방식'은 형식에 불과할 뿐, 사실상 '제3자 배정방식'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유죄가 성립한다."

결국 이런 입장은 한 표 차이로 소수 입장이 됐다. 이날 오후 대법원 근처에서 만난 한 경제학 교수가 "(촛불 집회 재판 개입으로 퇴진 압력을 받고 있는) 신영철만 없었어도"라며 한숨을 쉰 것도 이런 맥락이다. 단 한 표 차이로 세금 부담 없이 비상장 회사 경영권을 확보하는 '이재용 모델'이 널리 퍼지게 됐다는 아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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