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재로 스러지던 5월 29일은 이건희·이재용 부자(父子)에게 잊을 수 없는 날이 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이날 삼성 그룹 3세 총수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 (☞관련 기사: 이건희 수사와 박연차 수사, '극과 극')
이재용의 삼성 3세 총수 자격, 법적 인정 받아
대법원은 이날 오후 2시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관련 기사: "61억으로 200조 재벌 삼킨 비결", 노무현과 이건희…법치의 '윗목과 아랫목', 盧에 침묵하던 재계, '삼성 무죄 판결'엔 일제히 "환영")
이 사건은 삼성 경영권 승계과정에서 불거진 대표적인 불법 사례로 꼽혀왔다. 실제로 에버랜드 전직 사장들인 허태학·박노빈 씨가 이 사건으로 기소돼 1·2심 법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이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결정했다. 또, 조준웅 특별검사에 의해 같은 사건으로 기소됐던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이날 오후 2시 30분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의 삼성 에버랜드 대주주 자격을 둘러싼 법적 논란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삼성 에버랜드는 '이재용 → 삼성에버랜드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카드 →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의 핵심 고리다. 사실상 이재용 전무가 삼성 계열사 전체를 장악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물론, 이는 법적인 부분에 한해서다. 이 전무가 이건희 전 회장의 뒤를 이어 삼성 그룹의 총수가 되려면, 넘어야 할 장애물이 아직 많다. 경영 능력에 대한 검증, 경쟁자인 동생들과의 관계 설정 등이 그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6대5'로 에버랜드 사건 무죄 판결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삼성 비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 대법원에 올라왔다. 하나는 지난 1996년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법학자들이 제기한 소송이다. 이 소송의 결과, 에버랜드 전직 사장들인 허태학·박노빈 씨가 1·2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나머지 하나는 지난 2007년 10월 삼성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인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통해 공개한 다양한 비리다. 이렇게 드러난 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꾸려졌다. 조 특검은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 김인주 전 삼성 전략기획실 사장 등 삼성 수뇌부를 기소했으나 1·2심 법원은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29일 오후 2시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전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2시 30분에 나온 대법원 소부 판결은 후자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은 이 두 판결에서 모두 다뤄졌으며, 이 사건에 연루된 이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찬성 6, 반대 5'로 1·2심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던 허태학·박노빈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용훈 대법원장과 안대희 대법관은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각각 삼성 측 변호인과 검사를 맡았던 까닭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빠졌다. '촛불 재판 외압'으로 사퇴 촉구를 받고 있는 신영철 대법관을 비롯해, 양승태, 김지형, 박일환, 차한성, 양창수 대법관이 무죄 판결에 찬성 의견을 냈으며, 김영란, 박시환, 이홍훈, 김능환, 전수안 대법관이 반대 의견을 냈다. 다만, 양승태 대법관은 결론적으로 찬성 의견이되, 다수 의견과 다른 이유를 제시했다.
오후 2시 30분에 열린 대법원 소부 판결에는 양창수, 양승태, 김지형, 전수안 대법관이 참여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이건희, 이학수, 김인주, 유석렬(현 삼성토탈 사장, 전 삼성카드 사장), 현명관(전 삼성물산 회장)에게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했다.
'주주배정 방식=무죄, 제3자 배정방식=유죄'…"SDS BW 헐값 발행은 유죄"
대법원이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유는 간단하다. "주주배정 방식이 분명하고 기존 주주가 스스로 CB의 인수청약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CB 저가 발행으로 에버랜드가 손해를 입지 않았다"라는 것.
반면, 전원합의체에서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의 논리는 "형식적으로는 주주배정 방식이지만, 사실상 제3자 배정 방식"이라는 것. 주주가 아닌 제3자에게 배정한 방식이라면, 명백히 유죄라는 점에는 다른 대법관들도 동의했다.
'주주배정 방식=무죄, 제3자 배정방식=유죄'라는 논리는 이날 판결 전체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날 삼성SDS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헐값으로 발행해 이 전 회장이 자녀 등에게 최대 지분을 사도록 해 회사에 1540억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에 대해 원심을 파기 환송한다고 결정했다. 이 혐의에 대해 원심은 무죄로 판결했었다. 따라서 대법원은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서는 '유죄' 취지로 결정한 셈이다.
대법원은 이날 "삼성SDS의 BW 발행은 제3자 배정방식이 분명하고 행사가격이 시가보다 현저히 낮다면 이는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배임죄를 저질렀다고 봐야 한다"며 "BW 행사가격이 공정했는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SDS 손해액 50억 원 넘는지'가 관건
파기 환송심에서 손해액을 다시 산정해 손해액이 50억 원을 넘으면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가 적용돼 유죄가 확정되지만 1심 판결처럼 50억 원 미만이면 업무상 배임 혐의가 적용되면서 공소시효 만료로 면소 판결이 난다.
원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이 선고된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는 유죄가 그대로 인정되지만 경합범(한 사람이 여러 개의 죄를 저지른 경우) 관계인 삼성SDS의 원심을 파기함에 따라 형량이 다시 정해져야 한다며 역시 파기환송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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