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민심의 골격은 보다 확연히 드러났다. 정부가 그토록 부담스러워하는 '촛불민심'이 다시 켜진 듯 했다.
정동길, 촛불 다시 켜지고 토론 다시 '활활'
지난 28일 저녁 7시. 여전히 사람들은 정동길 뒤로, 언론재단 앞으로 이어지는 추모의 긴 줄을 만들어 놓았다. 영결식을 바로 앞둔 저녁이라 마지막으로 노 대통령을 조문하려는 사람들이 인산인해였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네 시간이 훌쩍 넘게 걸렸다. 장의위원회에 따르면 28일 새벽까지 전국 309개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432만여 명에 달한다.
서거 소식이 알려진 추모기간 초기와 이날 저녁 분위기는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달라져 있었다. 서럽게 우는 사람은 전보다 줄어들었고 사람들은 더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촛불의 수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뉴시스 |
둘러앉은 사람들은 재빠르게 이런저런 정보를 나눴다. 시민들의 목소리를 종합하면 29일 영결식은 서울광장말고 대한문 앞에서도 열린다. 정부가 마련한 영결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대한문 앞에서 따로 노 전 대통령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겠다는 뜻의 결과다. 추도사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씨가 맡기로 했다.
지난해 기억을 되짚어보게 만든 다른 이유도 있다. 촛불을 든 사람의 수가 눈에 띌 정도로 늘어났다. 이날 밤 11시 현재 약 700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은 활발하게 양초를 나눠주고 있었고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촛불을 다시 밝혔다. 정동길 곳곳이 촛불로 환하게 타올랐다.
추모를 위해 줄을 선 시민들에게 양초를 나눠주던 677번째 자원봉사자 서혜원 학생(고등학교 1학년)은 "노 전 대통령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6시쯤 왔는데 일손이 모자라다는 말을 들어 자원봉사를 한 후 인사드리려 한다"며 "노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기에 이런 일(자원봉사)을 마다하지 않는다. 검찰과 이명박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서거에 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심, 다시 대대적으로 타오를까
서 학생의 말에서 엿보이듯 시민들의 분위기가 바뀐 근본 원인은 현 정부에 대한 분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기폭제가 되면서 지난 1년 동안 쌓인 시민들의 각종 불만이 다시 터져나올 기세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결정이 비정규직 문제·대학 등록금 문제 등 각종 현안을 한꺼번에 촛불민심에 녹인 지난해와 같다.
실제 삼삼오오 둘러앉은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것 못지않게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을 토해냈다. 친구들과 가족 단위로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자영업자 김 아무개 씨(38)는 "이 정권이 지난 1년 동안 바뀐 게 뭐가 있느냐"며 "정부가 노동자를 죽이고 용산 시민을 죽이고 경찰을 동원해 시민을 두들겨 패더니 이제는 노 전 대통령마저 서거하게 만들었다. 정부를 바꾸지 않으면 이런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등록금 문제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대학생 사회도 같은 모습이다. 토론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대학생 김보아 씨(21)는 "시민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아니냐"며 "시민이 주인인 서울광장은 닫혀 있고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언론은 정부에 의해 장악되고 있다. 지금 한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촛불집회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작년 촛불집회의 연장선상에 이번 추모 열기가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노 전 대통령을 순수하게 추모해야 하는 자리가 정치적 움직임으로 변질된다는 우려를 보수층이 제기한다"고 묻자 "노 전 대통령 서거의 뒷배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정치적 구호가 나올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언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한문 앞에 모인 시민들의 바로 뒤에 자리잡았다. ⓒ뉴시스 |
만약 29일 영결식과 30일 열릴 범국민대회에서 어느 정도 통일된 움직임이 행동으로 이어질 경우 민심이 격하게 요동칠 기미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노무현의 사람들'은 이번 추모 정국 동안 다시 주목을 받았다.
지난 26일 리서치기관 리얼미터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주대비 3.5%포인트 떨어진 23.2%를 기록, 지난 1월 9일(22.5%)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로 확인된 것, 역사의 퇴행?
이처럼 민심이 요동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쩔 수 없이 꼽게 되는 하나로 여전히 지금 한국이 과거 80년대 당시처럼 '민주 vs 반민주'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이날 밤 10시경 정동길에서 시민들을 찾아 인사를 나눈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노 전 대통령 당시 '다시는 논란할 일이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권위주의 리더십, 관료를 동원한 시민·사회단체 옥죄기가 새 정부 출범과 동시에 되살아났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한국 사회를 퇴화시켜버렸다. 다시 한국은 민주-반민주 시대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 2003년 11월 당시 원로지식인 13명을 초청해 연 간담회에서 말했던 "새로운 시대(진보 vs 보수)의 맏형이 되고 싶었는데 구시대(민주 vs 반민주)의 막내가 되는 것 같고 구시대의 막차를 탄 것 같다"는 말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시민들도 이와 같은 의견에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직장인 김재환 씨(31)는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나왔지만 사실 그의 보수적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았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확인한 것은 그가 민주화 운동의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했다. 김보아 씨 역시 "노 전 대통령의 모든 정책을 찬성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어느 누구(고종석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추정)의 말처럼 여전히 민주화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뽑힌 것만으로 의미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언급했다.
시민들의 이처럼 역동적이고 자발적인 추모 열기가 여전히 한국 사회가 '더 많은 민주화'에 목말랐다는 사실을 입증해버리는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만약 이와 같은 논란이 확산될 경우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권 대립 구도에도 적지 않은 충격파를 미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가보안법 폐지를 결사반대하던 논리인 "대한민국의 법질서가 야만의 시대냐"(박근혜 의원)는 주장은 곧 '반민주'가 되어버리고, 민주화 시대 이후 진보정치의 도약을 꿈꾸는 진보정당으로서는 설 장소가 좁아지기 때문이다.
▲28일 새벽 12시. 시민들이 노란풍등을 띄우고 있다. 마치 지난 2002년 노사모 열풍이 재현되는 듯한 느낌마저 드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
죽은 노무현과 산 이명박의 싸움
밤 12시. 대한문 앞에는 수백 개의 노란 풍등이 일제히 하늘 위로 치솟았다. 봉하마을과 대한문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분향소에서 동시에 기획한 행사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2002년 대선후보 당시 '상록수'를 부르던 광고영상이 나오고 시민들은 일제히 이 노래를 따라불렀다.
안전을 우려해 대한문 쪽 시민들이 도로가로 나아가자 분위기를 깨는 목소리가 나왔다. "남대문 경찰서장입니다. 시민 여러분, 그 동안 질서를 잘 지켜주셨는데 차도로 나오시면 안 됩니다. 풍등은 화재 위험이 있습니다."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경찰버스로 막아놓아 인도(서울광장) 대신 차도를 걷게 만든 건 경찰"이라며 맞받아쳤다.
정동길 곳곳에는 노 전 대통령을 기리는 각종 영상물이 흘러나왔다. 영상 위로 5.16쿠데타, 부마사태, 광주민주화항쟁, 6월의 봄 등 민주화운동시대를 되짚는 화면이 지나갔다. 노 전 대통령은 이들 운동에 대해 일일이 그가 생각하는 의미를 이야기했다. 시민들은 집중했다.
현 정권이 노 전 대통령을 그토록 거칠게 몰아세운 것을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과 그를 따르는 민심을 이명박 대통령이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인식할 경우, "죽은 노무현이 산 이명박을 놀라게 한 것"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제 단순히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 아니라 '반민주'적인 인물이 되어버린다. 이미 대부분 시민은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그런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