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의 20대들은 철저한 이념 논리로 무장한 채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늘 자신들의 영웅을 만들어내곤 했다. 1990년대의 20대들은 선배들의 사상 강요를 지겨워하며 보디가드 커피숍에서 서태지와 김동률을 듣곤 했다. 80년대 학번들은 90년대 학번들을 물질주의에 물든 유약한 세대로 치부했다. 90년대의 20대들은 자신들만의 영웅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1990년대는 낀 시대였다. 이념과 민주화 같은 이전 시대의 가치는 퇴색했지만 새로운 가치들은 돋아나지 못했다. 90년대 학번들은 스스로를 내던질 가치를 구하기도 전에 물질에 현혹됐고 이내 엑스세대나 오렌지족으로 매도됐다.
16대 대통령 선거는 2002년 20대 후반 전후쯤 됐던 1990년대 학번들에게 비로소 세대의 영웅을 세워볼 기회였다. 흔히 16대 대선을 반미 촛불 시위와 월드컵과 인터넷의 포퓰리즘에 20대 젊은이들이 현혹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틀린 말이다. 당시 20대들은 자기 세대의 영웅을 세우고자 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의 20대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이 국부이자 독재자였던 것처럼, 1980년대의 20대들에게 DJ와 YS가 민주화의 상징이었던 것처럼, 1990년대의 20대들도 정치적 영웅을 원했고, 2002년이 돼서야 결국 영웅을 찾았고, 그를 지지했을 뿐이었다. 노무현 후보는 강요하지 않았다. 산업화 세대나 386세대나 모두 이익이든 이념이든 하나의 가치를 강요한다는 점에선 보수적이었다. 둘 다 아래 세대에게 조직 문화의 획일성을 요구했다. 90년대의 20대들은 이익에도 이념에도 조직에도 획일에도 무심한 개인주의적인 세대였다. 탈권위적이며 비주류였던 노무현 후보는 그런 젊은 세대의 영웅이었다.
▲ ⓒ프레시안 |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한때 20대였고 지금은 30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세대의 영웅을 잃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잊고 지냈던 2002년 12월 18일을 기억하게 한다. 어떤 가치를 믿고 그 가치의 대변자를 상징으로 세웠던 한 표의 경험을 되새기게 한다. 시인 테니슨은 말했다. "권력은 죽어가는 왕을 망각한다." <JFK>의 저자 짐 게리슨이 케네디 암살을 다루면서 인용한 말이다. 권력은 망각해도 우리는 기억한다. 살면서 몇 번의 대통령 선거를 더 경험할 테고 운이 좋다면 한두 명의 영웅을 더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 영웅에게 투표를 할 때마다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것의 참된 의미를 처음 일깨워준 누군가를 기억할 거다. 노무현이란, 내 인생의 첫 번째 대통령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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