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조문객들에게 추모뿐만이 아니라 어두운 길을 밝게 비추는 조명 노릇을 톡톡히 했다.
분향소에서 임시주차장으로 가는 버스를 탈수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약 1km. 이곳 봉하마을 길가에 50m마다 세워져 있는 가로등은 추모를 위해 줄서 있는 시민들과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을 밝게 비추기엔 역부족이었다. 가로등 근처가 아니면 서로 간 얼굴조차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촛불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나는 길을 밝게 비춤과 동시에 조문객들의 분향소를 오가는 길을 환하게 했다.
▲ ⓒ프레시안 |
"니가 지금은 모르겠지만 난중엔 이해할끼다"
엄마: '안녕히 가세요'라 캐라.
아빠: 너 단디 들으라. 이거 까먹으면 안된다.
엄마: 지금은 니가 잘 모르겠지만 난중에 이해하게 될끼다. 와 이카는지.
촛불을 사이에 두고 엄마와 아빠가 6살 된 아이에게 당부했다.
30대의 남성인 박모 씨는 "아들이 우리나라에 이런 대통령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곳에 왔다"며 "이후 자란 뒤에 아들이 노무현 대통령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9시 인천에서 출발해 10번 가까이 차를 갈아타고 저녁이 되어서야 도착했다는 30대의 여성인 김모 씨는 5살과 4살의 딸아이와 함께 왔다. 그 역시 아이들과 촛불을 마주보고 한창 대화를 했다.
아이: 엄마, 이제 촛불 갖고 놀기 싫어.
엄마: 그럼 이 곳에다(길보도 위를 가리키며) 놓아.
아이: 놀다 싫어지면 이곳에 놓는거야?
엄마: 그게 아니라 대통령님을 추모하며 이곳에 놓는거야.
아이: 불면 안돼?
엄마: 생일초가 아니라니깐. 추모의 초야.
그는 "어린 딸아이에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설명하며 '지도자'라는 단어를 썼는데 아이가 '지도자는 지도를 잘 많이 가진 사람'이라고 주장했다"며 웃음을 보였다. 그 역시 "이제 겨우 한글을 뗀 아이가 뭘 알수 있겠는가"라며 "하지만 지금의 순간을 나중에 기억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시 한번 추모하는 날이 올 것이다"고 말했다.
▲ ⓒ프레시안 |
"알면 알수록 그렇게 떠난 그가 안타깝다"
분향소 입구에도 촛불이 켜졌다. 노사모에서 준비한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이 상영되고 있었다. 분향을 마친 시민들은 다들 손에 초를 들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상에는 과거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때부터 야 3당 합당을 반대하며 국회를 박차고 나온 장면, 연거푸 부산시장에서 떨어진 일 등이 담겨 있었다. 또 대통령 취임 이후 탄핵 정국과 퇴임 이후 손녀와 다정하게 자전거를 타고 봉하마을을 달리는 영상도 있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그런 영상을 보며 눈물을 훔쳤다. 김해에서 수업을 마친 뒤 곧바로 왔다는 고등학생 김유미 양은 "평소 잘 알지 못했는데, 여기와서 영상을 보고 어떤 분인지 알게 됐다"며 "알면 알수록 그렇게 떠난게 안타까워진다"고 말끝을 흐렸다.
김 양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촛불을 들고 그를 추모하는 일 밖에 없다"며 "하지만 그가 말하고 행동했던 것은 꼭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촛불은 이렇게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시민들에게 그를 떠올리고 기억하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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