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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마지막 슬프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봉하 지키는 일손들 "고인 찾아 온 손님들을 소홀히 할 수 있나요"

27일 김해 봉하마을에 차려진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 한 쪽에서는 10여 명의 여성들이 분주히 그릇을 씻고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조문객들이 먹을 돼지고기국밥에 들어갈 무 다듬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이 정도로는 모자라는구만"
"아우, 나 손목 아파 죽것어. 요것만 끝내면 난 갈끼여"


한창 칼로 무 껍질을 벗기고 있던 50대의 박아무개 씨는 짐짓 피곤하다는 듯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옆에서 함께 일하던 50대 김아무개 씨가 "갈려면 가. 촌녀가 그거 가지고 힘드나…"라고 면박을 주었다. 박아무개 씨는 짐짓 화가 난 말투로 "그럼 촌녀는 갈란다"라고 말하며 자리를 일어나자 함께 무를 깎던 여성들은 일제히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이들 옆에는 무채와 콩나물 꾸러미가 어림잡아 20여 가마니나 있었다.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은 "이것도 국 한 번 끓이면 끝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빈소를 찾은 시민들에게 음식을 접대하기 위해 마련된 식당에는 3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분주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잠시도 엉덩이 붙일 틈 없이 일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밝았다.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성희 진영농협 주부대학 동창회 부회장은 "힘들어도 고인을 찾아온 손님을 소흘히 할 수 없어 이렇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며 "고인의 마지막이 슬프지만 힘든 내색하지 않고 열심히 하려 한다"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에 쓸 무를 깎고 있다. 이들 뒤로는 깎을 무와 깎은 무들이 즐비했다. ⓒ프레시안

자원봉사단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 아닌가"

분향소에서 마련한 음식은 돼지국밥, 떡, 김치, 물 등이다. 이 음식들은 하루에 얼마나 나갈까. 실제 하루에 얼마나 많은 양이 나가는지 아는 이는 없었다.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곳인지라 정확한 통계를 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대략 하루 분량으로 쌀 3000되(60가마)를 주문한다. 이 정도면 7만 명에서 8만 명 정도의 사람이 식사할 수 있는 분량이다. 고기나 무, 콩나물 같은 부식은 그때그때 추가적으로 주문을 하고 있다.

김치 같은 경우는 배추를 주문해 분향소에서 즉석으로 만든다. 음식과 관련해 총 책임을 맡고 있는 심귀숙 진영농협 여성복지 팀장은 "진영 농협 여성 주부대학, 새마을부녀회, 산악회 등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이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을 사용하는 비용에 관련해서는 "쌀 등은 봉사자들이 각출해서 사고 있다"면서도 "이외에도 전국 곳곳에서 음식들을 보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21일 분향소가 차려진 이후로 전라도에서 무 농사를 짓는 사람이 용달차 두 차 분량을 이곳에 기증했을뿐만 아니라 어떤 스님은 직접 만든 묵을 가져오기도 했다. 밤 10시 이후에 나눠주는 빵과 우유 역시 기증 받은 음식이다.

여기저기서 기부한 국화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꾸며

"언니야, 딱 보고 짧은 것부터 솎아내라. 꽃 모양이 흐트러진 것도 빼내뿌라. 너무 시든 것도 안된다"

김해에서 온 40대의 여성인 김아무개 씨는 국화를 만지는 손만큼 입도 빠르게 움직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전에 시민들이 놓은 국화를 수거해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작업 중이었다. 국화꽃은 자원봉사자들이 분향소 옆에서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1시간마다 꽃을 바꿔주는 김 씨는 "힘들지 않으면 거짓말"이라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았다. 평균 백 명씩 1분간 조문을 하니 대략 6000송이의 국화꽃을 다듬어야 한다. 교체된 국화는 밑 부분을 잘라 얼음물에 담궈 놓는다. 김 씨는 "그래야만 국화꽃이 시들지 않고 싱싱함에 오래 지속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국화꽃을 다듬고 있는 자원봉사자들. 다듬은 국화꽃은 얼음물 속에 넣어져 보관된 뒤 다시 쓰인다. ⓒ프레시안

그가 한 번 쓴 국화꽃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다듬은 다음 다시 쓰는 이유는 국화꽃이 시중에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돈 때문에 사기도 여의치 않다. 그나마 여기저기서 기부로 들어오는 국화꽃으로 조문객을 맞이 할 수 있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인 21일에는 1만 송이의 국화꽃이 기부됐다. 다음날인 22일에도 4000송이가, 26일에는 한 시민이 1톤 봉고차 한 대에 국화꽃을 가득 싣고 오기도 했다. 그는 "졸업식 시즌도 아니라 국화꽃 얻기가 어려운데 이렇게 여러 분이 도움을 준다"며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힘"이라고 칭송했다.

봉화마을 진입로 1km구간 500여 기의 만장 세워져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가라"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당신은 홀로 우뚝 선 소나무였습니다"


27일 새벽 5시에는 노사모 회원과 경남 화포천 지킴이, 문예총 회원 등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리는 만장 500여 기를 봉하마을 분향소 진입로에 설치했다. 약 1km나 되는 진입로를 빽빽이 채운 만장은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노란색 천으로 만들어졌다.

노사모 회원인 이무진 씨는 "만드는 데 약 이틀 정도 걸렸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고 기리는 마음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렇듯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는 노무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회 이외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돕고 있었다. 한명숙 공동 장의위원장은 27일 오전 기자들에게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시민 분향이 큰 물결이 이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고 있다"면서 또한 "자발적으로 이렇게 힘들게 수고하시는 자원봉사 여러분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 자봉단이 준비한 돼지국밥을 먹고 있는 조문객들. ⓒ프레시안

▲ 분향소 앞에서부터 노 전대통령 사저까지는 그를 추모하는 글이 담긴 노란색 천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 ⓒ프레시안
▲ 조문 후 자원봉사자들에게 음식을 받고 있는 시민들.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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