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문제는 '노빠'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문제는 '노빠'다"

[노무현을 기억하며] 추모와 열광 사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향년 62세. 요절은 아니었으나, 안타까운 죽음임에는 틀림없다. 온 나라가 애도의 물결에 뒤덮였다. 전국 각지에 고인의 넋을 기리는 분향소가 차려졌다. 각 방송사는 주말 오락 프로를 모두 편성에서 제외해 망자에 대한 예의를 갖췄다. 정계, 재계 가릴 것 없이 애도의 성명을 발표했다. 지지자들은 하나 둘 봉하 마을로 모여 눈물로 하루를 보냈다.

온라인에서도 추모의 물결은 이어졌다. 제법 사람들이 모이는 포털사이트나 커뮤니티라면 어디든지 망자에 대한 애도의 글과 생전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영상 등이 게시됐다(물론 이 와중에도 '노무현 잘 죽었네' 하며 낄낄거리는 족속들이 존재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자기 부모가 죽어도 그럴 것이므로 논외로 치기로 하자). 그렇게 사람들은 어제 하루 동안 전직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젖어 있었다.

나 역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어제 하루 침묵으로 애도를 대신했다. 그런데 점점 이상한 심상찮은 기류를 느낀다. 온·오프라인에서의 사람들의 이 기이한 열기가 단지 추모와 애도의 그것을 넘어서서, 추앙과 숭배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아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지금 과민반응하고 있는 걸까?

인터넷을 보자. 노무현에 대한 사진, 영상 등이 쏟아지고 있다. 가히 홍수와도 같다. 물론 그 중 상당수는 그의 과거 행적과 대통령답지 않게 소탈했던 모습 등이 담긴, 추모와 애도를 위한 것들이다. 인권 변호사 시절 노동자의 편에서 권력에 항거했던 모습, 5공 청문회 시절 모습, 삼당합당에 당당히 반대하며 거수했던 모습, 퇴임 후 마치 시골 촌부와도 같은 결코 전직 대통령답지 않았던 모습 등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개중에는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거나 작은 것을 크게 부풀려 그를 한껏 띄워주는 성격의 것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를 띄워주는 게시물일수록, 그 과장의 정도가 심할수록 뭇 누리꾼으로부터 굉장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사실이다.

가령 '노무현의 업적'이란 제목의 글을 보자.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고와 싸운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지난해 촛불정국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당시 反이명박 정서를 타고 누리꾼의 인기를 끌었다. 노무현과 이명박을 비교해놓은 이 짤막한 글에 담긴 내용은 간단하다. 노무현은 잘했고, 이명박은 못한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천하에 둘도 없는 훌륭한 대통령이었고, 이명박은 만고의 역적이라는 것이다.

이명박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국민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이고, 잘못한 것을 찾는 것보다 잘한 것을 찾는 게 빠를지 모른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이명박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은근슬쩍 노무현을 포장하는 것, 그리하여 현재의 이명박의 대안은 과거의 노무현이라고 말하는 것, 바로 이것이 '노무현의 업적'과 같은 것들을 만들고 퍼 나르는 사람들의 의도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노무현은 없다. 이것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이미 노무현은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이었고, 또 한 차례 들불처럼 퍼지고 있는 지금은 고인이 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이명박의 대안이 과거의 노무현이라고 해도, 그것은 그저 한낱 외침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게 떠돌까? 한마디로 비웃고 싶은 것이다. '훌륭한 우리 노무현님을 외면한 너희 대다수 국민들'에게 노무현 지지자들, 노무현의 열성 지지자들, 이른바 '노빠'들이 퍼붓고 조롱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노빠들은 말한다. 노무현 시대에는 살기 좋았는데 이명박 시대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맞는 말이다. 이명박 시대에서 1년 반을 살아보니 새삼 노무현 시대가 얼마나 살기 좋았는지 느껴질 때가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이 헌법 위에 존재하는 후안무치한 정권에 비해 노무현 정권은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노무현 시대의 빛은 딱 거기까지였다. 신자유주의 드라이브 가속화, 이른바 좌파들로부터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했다'는 노무현 정권의 경제 기조는 경제 기반을 무너뜨리고 중산층의 파괴를 가져왔다. 노빠들은 말한다. 이 수많은 경제지표들을 한 번 보라고.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단연 (노무현이) 돋보이지 않느냐고 말이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나날이 살기 힘들어졌을까? 대체 무엇 때문에?

노빠들은 말한다. 보수 세력의 견제 때문이라고. 그들의 딴죽 탓에 제대로 해보지도 못했다고 말이다. 그러나 경제 운용에 있어 노무현 정권에 보수 세력이 훼방을 놓았던 적은 그리 많지 않다. 보수 세력에서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일컬어 '잃어버린 10년', 혹은 '좌파집권 10년'이라고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경제 운용 기조가 좌파적이었던 적은 없다. 김대중으로부터 노무현, 그리고 이명박까지…, 멈추지 않는 신자유주의 노선만 존재했을 뿐이다.

신자유주의를 맹신했던 노무현 정권은 결국 지난 수십 년 간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중산층을 무너뜨렸고, 전형적인 양극화 현상을 불렀으며, 청년 고용 악화(20대 비정규직화), 자영업자 붕괴 등의 도미노 현상을 낳았다. 세계적인 경제 호황 속에 원화의 상승과 달러의 하락, 저금리 기조 덕분에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노무현이 그토록 바라던 '2만 달러 시대'를 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민생은 파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인터넷에선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이 당선된 것에 대해 '국개론'이라는 것을 들먹이며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들을 싸잡아 비난했지만, 이명박을 당선시킨 건 유권자도 누구도 아닌 바로 노무현 그 자신이었다. 범여권이 대선 기간 내내 'BBK 사건'을 마치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처럼 붙들고 있었던 것은 지난 2006년 16대 대선에서 배운 학습 효과 때문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큰 착각을 한 셈이 됐다.

이미 국민들에게는 BBK고 뭐고 간에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범여권이 지난 16대 대선에서 상대 후보의 도덕성, 위법성을 물고 늘어지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면, 국민들은 마찬가지로 도덕성, 개혁성 따지다가 경제에 무능력한 사람 뽑으면 안 된다는 것을 배었다. 바로 노무현을 통해서 말이다. 결국 범여권의 맹공격에도 '경제 대통령' 이미지를 잘 포장한 이명박은 당선됐고, 보다시피 나라는 요 모양 요 꼴이 됐다.

현재의 이명박의 대안은 결코 과거의 노무현이 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명박은 노무현의 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거했고, 우리는 애도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현재의 이명박의 대안은 과거의 노무현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노빠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투신자살에 의한 돌연한 죽음이었습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고 민주주의와 진보와 정의를 추구하며 생전에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자신을 놓음으로써 한국 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계승해야 할 그의 자산은 무엇이었으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봅시다.

기고를 다음 메일로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신 글은 편집 과정을 거쳐서 <프레시안>에 게재됩니다. (tyio@pressian.comonscar@pressian.com)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