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을 보고야 말겠다는 기세로 검찰이 수사를 한정 없이 이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러다가는 일 나지. 혹 노 대통령이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뇌리를 스친 적이 있습니다.
머릿속을 얼핏 스쳐간 생각이 눈앞의 현실이 되어버린 지금, 놀람과 안타까움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서, 당신께 담배 한 대 드리고 술 한 잔 올리는 심정으로 이 글을 씁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는 당신이 어떤 세상을 그리고 계신지 직접 여쭤본 적은 없습니다만, 당신이 취하신 정책과 당신이 보여주신 삶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할 수는 있습니다.
당신은 반칙과 특권과 불로소득이 사라지고 국민 모두가 균등한 기회를 보장받는 정의로운 사회, 서울과 지방이 고르게 발전해서 지방이 이유 없이 차별받지 않는 균형발전 사회, 분배와 성장이 상호촉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동반성장의 사회,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참된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보려고 애쓰셨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이런 사회가 바로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믿었겠지요.
노무현 대통령님,
이런 사람 살만한 세상 만들어보려고, 당신은 (제 관심 분야 정책만 열거하더라도) 행정수도 건설, 혁신도시 건설, 보유세 강화 정책 추진, 부동산 시장 투명화, 공공임대 주택 공급 확대, 복지지출 확대 등 기념비적인 경제정책들을 추진하셨습니다. 이런 정책들을 펼치실 때, 저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그 정도 정책은 다 수행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정책의 부족한 부분이 드러날 때 기본 방향에 동의하면서도 야멸친 비판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책은 당신처럼 이 땅을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려는 소명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당신이 퇴임하신 후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값없이 우리 국민들에게 선물하신 자유와 민주주의도,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종부세를 도입해서 보유세 강화라는 오랜 숙원을 이루고자 했을 때 이 땅의 부동산 권력들의 저항을 지켜보시면서 얼마나 답답하셨습니까? 그들이 조작해낸 '세금폭탄론'이 일반 국민들에게까지 먹혀드는 것을 지켜보시면서 얼마나 안타까우셨습니까? 역대 정부 최고의 부동산 정책을 시행하고도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고 고백해야만 했을 때는 또 얼마나 억울하셨습니까?
이 땅의 기득권층은 물론이고 중산층과 서민, 그리고 지방 주민들까지 매몰차게 당신과 참여정부를 외면할 때 얼마나 참담하셨습니까? 멀쩡한 경제를 살리겠다고 나선 대통령 후보에게 몰표를 안겨주고, 뉴타운 건설해서 투기 조장하겠다는 국회의원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는 국민들을 지켜보시면서 얼마나 실망하셨습니까? 이명박 정부가 보유세 강화 정책이나 지방 균형발전 정책 등 참여정부 핵심 정책을 모조리 뒤집어 버릴 때 얼마나 분노하셨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우리가 당신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죽음과 함께 '사람 사는 세상'의 꿈도 죽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음은 곧 대한민국의 죽음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면 절망감이 눈앞을 가리지만, 부디 이 죽음 이후에 우리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정의, 기회 균등과 약자 보호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당신이 이 땅의 대통령이셨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 일이 없이는 기득권층과 일반 국민 모두에게 외면당한 당신의 아픈 마음이 어떻게 위로받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님,
그 동안 정말 애쓰셨습니다. 이제 평안히 쉬십시오.
전강수 배상
* 필자는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투신자살에 의한 돌연한 죽음이었습니다.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고 민주주의와 진보와 정의를 추구하며 생전에 늘 논란의 중심에 섰던 그가 자신을 놓음으로써 한국 사회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계승해야 할 그의 자산은 무엇이었으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그의 한계는 무엇이었을까요? 이제부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서로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봅시다. 기고를 다음 메일로 보내주십시오. 보내주신 글은 편집 과정을 거쳐서 <프레시안>에 게재됩니다. (tyio@pressian.com / onscar@pressi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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