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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자살'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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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은 '자살'하지 않았다"

[김기협의 '페리스코프'] 10년 전으로 : '죽을 권리'를 찾는 사람들

'죽을 권리'를 찾는 사람들

한 달 전 CNN에서는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언의 '자살 방조' 장면을 방영,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자살 방조는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범죄로 규정돼 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이 '품위 있게' 생을 마감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자살권' 운동이 인터넷을 매개로 활발해지고 있다. 케보키언은 이 권리를 분명히 확립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금까지 수십 명의 자살을 도와준 사실을 밝히고 자살 방조 장면의 녹화를 방영에 제공한 것이다. 그는 당국에 자신의 체포를 요구하며, 체포될 경우 단식에 들어가겠다고 하고 있다.

'자살권' 문제는 법률적으로 예민한 문제다.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자살 방조는 암암리에 꽤 널리 행해져 온 것으로 추정된다. 혐의가 있는 경우라도 열심히 기소하려 들지 않고, 증거가 명백해 부득이한 경우라도 실형까지 언도하는 일은 거의 없다.

3년 전 뉴욕에서 63세의 작가가 부인의 자살 방조 혐의로 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지 딜루리라는 이 작가는 최후에 이르는 몇 달간의 곡절을 일기로 남겼고, 재판 과정에서 이 일기를 출판할 뜻을 밝혔다. '직업적 이득'을 취하려는 욕심이 자살 방조에 개입됐다는 점이 실형 선고의 한 이유가 됐다. 그가 감옥에서 정리해 이듬해 출판한 이 책에는 의식이 약해져 자살 의지마저 오락가락하는 아내를 놓고 갈등을 일으키는 저자의 마음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어, 자살 방조와 자살 교사(敎唆)의 경계선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일으켰다.

오리건 주에서는 재작년부터 자살 방조 합법화의 길을 열어놓았다. 엄격한 절차에 따라 의사의 극약 처방을 허용한 이 제도는 자살을 가장한 범죄의 예방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로마제국 말기에 자살을 금지하는 법령이 생긴 것은 노예의 자살로 노동력이 줄어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명권에서는 종교적-도덕적 이유로 자살을 금기로 삼았다. 이 금기가 세속법에도 반영돼 있다가 1789년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살미수자를 처벌하는 법 조항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살 방조는 살인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쓰일 위험 때문에 아직도 합법화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안락사 문제가 근년 심각하게 제기되는 까닭은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 주력이 되면서 가치관의 전환을 일으키는 데 있다. 더 기본적으로는 의학의 발전과 사회의 안정이 어느 수준에 이른 덕분에 '죽을 권리'까지 따질 수 있게 된 셈이다. 김훈 중위 사건을 비롯해 '의문사'를 '자살'로 처리하는 의혹이 남아있는 우리 사회로서는 부러운 일이다.

▲ "그의 뛰어난 투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다른 점을 짚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유머 감각'을 힘의 원천으로 생각해 왔다. 보통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좌절을 거듭거듭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승부의 고비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담대함은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 왔다." ⓒ프레시안

'존엄사' 판결 뉴스를 보고 그에 관한 글을 쓸 생각이 나서 위키피디아의 "suicide" 조를 펼쳐놓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노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뉴스를 켜놓고 한참 멍하니 앉았다가 책상에 돌아와 펼쳐놓았던 화면을 들여다봤다. "자살에 대한 관점은 종교, 명예, 그리고 삶의 의미 등 존재론적 주제에 대한 문화적 관점의 영향을 받아 왔다."

기독교에서는 자살을 죄악시해 왔다. 신의 섭리에 대한 저항으로 본 것이다. 기독교권에서는 중세 이래 자살을 법률적으로도 범죄시했다. 위 글에서 밝힌 것처럼 프랑스대혁명 이후 자살 처벌법이 철폐되기 시작했지만 영국에는 1961년까지 그런 법이 남아있었다. 이슬람교, 유대교등 다른 유일신교도 마찬가지로 자살을 죄악시했다.

자살을 명예롭게 여긴 문화권들도 있다. 일본의 '세푸쿠(할복)', 인도의 '수티'(남편의 화장에 미망인이 함께 타죽는 풍습)가 잘 알려진 사례들이다. 세푸쿠나 수티나 실제로는 강압을 통해 행해지는 일이 많았지만, 그 원리는 명예의 자발적 추구에 있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의 '카미가제' 전술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불교의 윤회 사상 등 죽음을 궁극적 종말로 보지 않는 관점에서는 자살을 비교적 관용적으로 본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16세기 말 중국에 온 가톨릭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일의 하나가 사람들이 쉽게 자살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더욱더 야만적인 풍습은 자살을 하는 것인데,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거나 큰 불행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것보다도 더욱 어리석고 더욱 비겁한 동기는 미워하는 사람을 골탕먹이기 위해 제 목숨을 끊는 일이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해마다 몇천 명의 사람들,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까지, 자기 손으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고 한다. 공적인 장소나 증오하는 상대의 집 문앞에서 목을 매다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그밖에는 강물에 뛰어들거나 독약을 먹는 것이 많이 쓰이는 방법이며, 이유는 별별 사소한 것들이 다 있다."

1960년대에 베트남의 고 딘 디엠 정권에 항거하는 승려들의 분신 시위가 서방 세계를 경악시킨 것은 문화적 충격도 겹쳐진 일이었다. 자살이란 것이 서양인에게는 상상도 못할 극단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근년에는 이스라엘의 극한적 탄압에 저항하는 '인티파다' 전사들이 자살폭탄 등 목숨을 던지는 전술을 채택해 왔다. 이슬람교에서 자살을 금지하지만 알라를 위한 일이기 때문에 허용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과정의 여러 고비에서 자살을 통한 극렬한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유럽사의 투쟁과 혁명 속에서는 자살의 사례가 거의 없었다. 북아일란드에서 1981년 보비 샌즈가 이끈 단식 투쟁으로 열 명의 투쟁가들이 목숨을 끊어 유럽을 뒤흔든 일이 있었던 정도다. 그러나 단식은 절명의 확실성이 덜하다는 점에서 분신이나 투신보다 온건한 방법이다. 그 사태로 영국 정부가 국내외의 지탄을 받은 것은 투쟁가들의 목숨을 건질 방법이 있는데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계적으로 해마다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 그 대부분은 위키피디아에 나열된 이런 이유들에 인한 것이다. "자살의 이유에는 우울증, 수치심, 죄책감, 절망감, 신체적 고통, 정서적 압박, 걱정, 돈 문제 등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들을 포함하여 여러 가지가 있다." 텔레비전의 해설에도 노 대통령의 투신 이유로 검찰 수사를 둘러싼 이런 요인들을 엮어보려는 사람들이 보인다. 뭐 눈엔 뭐만 보이는가 싶다.

자살을 처음 체계적으로 탐구한 에밀 뒤르켕은 <자살론>(1897)에서 자살을 (1)과도한 개인주의가 사회와의 유대감을 약화시킨 결과로 나타나는 '이기적 자살', (2)사회에 대한 과도한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이타적 자살', (3)사회의 기준과 가치관 혼란에 기인하는 '아노믹 자살', 세 범주로 분류했다. 노 전 대통령 경우는 (2)와 (3)의 사이에서 생각할 문제로 보인다.

노무현은 지지자들에게나 반대자들에게나 '투사'로 인정받아 온 사람이다. 그의 뛰어난 투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다른 점을 짚을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유머 감각'을 힘의 원천으로 생각해 왔다. 보통사람들이 견디기 힘든 좌절을 거듭거듭 겪으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 그리고 승부의 고비에서 본질을 파고드는 담대함은 자기 자신을 관조하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봐 왔다.

그런 투사, 그런 유머리스트가 검찰이 들볶아댄다고 해서, 아끼는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해서 맥을 놓아버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가 퇴임할 때까지 그의 '지지자' 노릇을 한 일이 없다. 그러나 이번 검찰 수사의 방법이 억지스러운 것은 혐의 내용이 부실하기 때문이라고 봤고, 그래서 그의 지도력이 역경으로 보이는 상황을 통해 증폭될 것을 예상했다. 투사로서 그의 면모가 되살아날 기회가 무능한 정권에 의해 주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뉴스를 듣고부터 열다섯 시간 동안 생각에 잠겨서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일이다.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본다는 유서의 말씀, 투철한 유머리스트에게 기대할 만한 말씀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권 여사한테 그럴 수 있나?

대통령 되기 이전의 그의 행적에서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배운 반면 대통령으로서 노무현에게서는 사람들의 배우려는 자세가 줄어들었다. 내가 보기엔 같은 사람이 같은 태도로 일한 것인데 왜 그런 차이가 생겼을까? 대통령 되기까지는 '승리의 길'이라 해서 사람들이 우러러보고, 대통령 된 뒤에는 '권력자'라 해서 질시의 대상이 된 것일까?

재임 중 어느 고비에서 자신이 계몽주의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고 반성의 마음을 토로했다는 노 대통령. 그렇다 그는 국민을 다스리기보다 가르치려 한 사람이다. 대통령 자리에서 국정을 이끌어본 그가 하나의 세력을 일으키는 투쟁의 길에 흥이 나겠는가? 차라리 탁 놓아버림으로써 대통령으로서도 펼치지 못했던 하나의 큰 가르침을 던진 것 아닐까? 승리에만 집착하는 이 사회, 전술-전략에만 몰두하는 이 사회에 철학적 반성을 일깨운 의미를 두고두고 파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자기 희생'의 의미를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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